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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가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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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가버린 사랑
  • 김덕권
  • 승인 2021.06.03 0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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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정(情)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미워하지만 정 때문에 살고, 살다 보니 정이 생긴다고 하지요. 오래도록 살아가는 동안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고비를 모두 잘 넘기고 깊이든 정이 ‘미운 정 고운 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情)이 없다면 그처럼 삭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수 태진아님의 노래 <가버린 사랑>이 있습니다. 하도 가사와 노래 소리가 절규(絶叫)에 가깝게 들리기 때문에 혼자 감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슬그머니 우리 집사람 사랑초 정타원(正陀圓)이 다가와 느닷없이 자기가 죽거들랑 49재 종재식(終齋式)에 이 노래를 틀어 달라는 주문을 하였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했습니다. 언제나 제가 먼저 간다고 생각했거든요. 참으로 사람이 남남으로 만나 이 나이까지 해로(偕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 노래를 한 번 감상해 보시지요!

<가버린 사랑>

백년해로 맺은 언약/ 마음속에 새겼거늘/ 무정할 사 그대로다/ 나 예두고 어디 갔나./ 그대 이왕 가려거든/ 정마저 가져가야지/ 정은 두고 몸만 가니/ 남은 이 몸 어이 하리

백년해로 맺은 언약/ 마음속에 새겼거늘/ 무정할 사 그대로다/ 나 예두고 어디 갔나./ 그대 이왕 가려거든/ 정마저 가져가야지/ 남은 이 몸 생각 말고/ 만수무강 하옵소서.

우리 민족의 ‘정(情)’이라는 개념은 생활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정이란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 원(元)나라 문인 ‘원호문’은 「만약 정이 없다면 짝 잃은 기러기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있을 수 없고, 맹강녀(孟姜女)의 울음소리에 장성(長城)이 무너져 벽돌 속에 겹겹이 쌓인 백골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여 정만이 지극하여 하늘에 닿는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중국 명(明)나라 사람 ‘탕현조’는 그의 대표 희곡 ‘모란정’ 서문에서 「정은 어디서 생기는 줄 모르지만, 한 번 주면 깊어지니 정이 있으면 산 자도 죽을 수 있고,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다. 살아서 죽어보지 못하고 죽어서 살아나지 못한다면 지극한 정이라 말할 수 없다.」

17세기시대 네덜란드인 ‘하멜“이 쓴 「하멜 표류기」에서 우리 민족의 정(情)을 「여행자들이 하루 묵을 수 있는 여관이 없다. 여행자들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양반집이 아니더라도 어느 집이든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자기가 먹을 만큼의 쌀을 내 놓는다. 그러면 집 주인은 이 쌀로 밥을 지어 반찬과 함께 나그네를 대접한다. 어느 마을에서나 나그네를 맞이하는데 이에 군소리가 없다.」

조선 선조 때 재상을 지낸 ‘심희수(沈喜壽)’는 금산군수로 있을 때 기생 이었던 ‘일타홍’이 죽자 수레에 관을 싣고 나룻배로 금강을 건너면서 처량하게 만시(輓詩)를 읊은 것이 있습니다. 일타홍은 난봉꾼이던 심희수를 공부시켜 진사 시험과 별시 문과에 합격하게 하게 만든 장본인이지요.

「一朶芙蓉載輀車(일타미용재이거) 한 떨기 고운 꽃이 상여에 실려/

芳魂何事去躊躇(방혼하사거주저) 향기로운 혼이 가는 곳 더디기만 하네./

錦江秋雨丹旌濕 (금강추우단정습) 금강에 가을비 내려 붉은 명정 적시니/

疑是佳人別淚餘(의시가인별루여) 그리운 내 임의 눈물인가 보다.」

강태공이 문왕에게 정(情)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샘이 깊으면 물이 잘 흐르고, 물이 잘 흐르면 물고기가 살게 되는 것인바, 이것이야말로 정(情)입니다. 뿌리가 깊으면 나무가 잘 자라고, 나무가 잘 자라면 열매를 맺는 것이 정입니다. 군자가 그 뜻이 맞으면 가깝게 화합하며 마음이 화합하게 되면 일을 해낼 수 있는 것, 이것이 정이지요.」

진(秦)시황 때 맹강녀(孟姜女)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신혼 초에 남편 범기량(范杞良)이 만리장성 공사에 끌려가게 되었지요. 맹강녀(孟姜女)는 엄동설한에 남편이 입을 옷을 지어 몇 달을 걸려 만리장성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미 죽었고 더군다나 남편의 시신도 장성(长城) 성벽 밑에 묻혀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맹강녀가 대성통곡을 하자 성벽 800리가 무너져 내리며 수많은 유골들이 드러났습니다. 그녀는 각각의 유골에 손가락을 깨물어 핏방울을 떨어뜨려 마침내 남편의 시신을 찾아냅니다. 이때 진시황이 맹강녀의 미모를 보고 그녀를 후실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맹강녀는 진시황이 친황다오(秦皇島)에 가서 남편 범기량(范杞良)을 위해 상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 줄 것을 요구하였지요. 진시황이 이에 응하며 범기량의 제사를 마치자 맹강녀는 남편의 시신을 받쳐 들고 현재 맹강녀묘(廟)가 위치한 산하이관(山海关) 앞의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참 무서운 것이 정이지요.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정을 주고. 정이 들며, 정을 두고 떠나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정든 사람끼리 이렇게 정을 나누다가 떠날 때는 착(着)없이 하직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6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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