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휴일을 보람있게 보내는 방법의 하나다. (더구나 밖은 무척 덥다는데 불편한 몸으로 나들이하기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늘은 러셀 크로우가 「워싱턴 글로브」지의 중견 사건기자로 출연하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라는 2009년 작 정치·범죄 스릴러물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발생한 몇 건의 살인사건에 대해 취재를 시작한 러셀 크로우는 이것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전직 군인들이 창설 운영하는 한 사설 용병보안업체가 미국의 NSA 도청, 테러범 관리 등 국가 안보시스템 자체를 민영화시켜 막대한 이익을 얻으려는 음모와 연결돼 있다고 의심하게 된다.

영화는 스릴러물답게 마지막 한 차례 반전을 거쳐 결국은 이 살인사건의 범인은 용병보안업체가 아니라 하원의원 벤 애플렉의 사주를 받은 그의 이라크전쟁 전우인 것으로 드러난다.

기자 러셀 크로우는 전도양양한 정치인 벤 애플렉의 절친이지만 (또 취재 과정에서 그의 많은 도움을 받은 처지이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건의 전모를 보도한다.

스토리가 스릴있게 전개되면서 특종에 목매다는 신문사 실정, 설익은 취재를 당장 기사화하라는 편집국장의 안달,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오히려 취재원을 협박하는 장면들이 등장해 현실감을 높인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로 닉슨을 쫓아낸 미국 언론은 그럴지 몰라도 오늘의 한국 언론 상황에서는 전혀 현실감이 없는 설정이다. 한국의 이른바 주류 언론에서는 심층보도, 탐사보도라는 것이 없다. 대신 출입처와 기자단이란 것이 있어서 출입기자들이 기자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출입처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나 빨대들이 의도를 갖고 슬그머니 흘려주는 피의사실들을 가공하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그렇게 권력과 결탁하는 것이다.

그나마 취재랄 것도 없이 남의 기사를 토씨만 다르게 베끼면서 ‘단독’ ‘특종’ 등을 붙인다. 심지어 “기사 쓰는 것이 바빠 취재할 시간이 없다”는 농담같은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지 않는가.

나는 취재 현장을 떠난 지 오래여서 요즘 기자들이 정말 취재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지 모르겠지만 기자회견장에서 질문할 기회가 생겨도 꿀먹은 벙어리 노릇만 하는 기자들은 눈앞에서 봤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에게 “기자들 망신주려고 그랬다”고 대드는 기자들을 보며 언론계 선배로서 두 배, 세 배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기자들이 등장하는 외국 영화를 보면 늘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기분이 안 좋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 등장하는 몇몇 대사들 들으면서도 그랬다.

“그래, 넌 늘 진실을 찾지 (절친인) 내겐 관심도 없지?” - 벤 애플렉 
“난 나쁜 놈이야. 내게 화가 난 건 알겠지만 나도 모든 것을 걸고 취재하는 거야.” - 러셀 크로우

‘진실’이나 “모든 것을 걸고 취재한다”는 것이나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대사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독자는 진정한 기사와 쓰레기를 구분할 수 있어.” - 러셀 크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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