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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신언서판(身言書判), 정치인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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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신언서판(身言書判), 정치인의 품격
글씨로 드러낸 세대차이, 정치인의 덕목은 ‘애민정신’에 있어
  • 이창은
  • 승인 2021.06.16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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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프리존] 고대 국가에서는 왕을 대신해 백성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관료의 선발과 충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장 제도화된 정책인 과거제(科擧制)는 중국 수나라(581-618)에서 처음 시도되었다가 송나라 때 관리선발의 기준이 되어 고려 조선 등 동아시아 국가의 기준이 되었다.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당나라(618-907)는 과거제 대신 신언서판(身言書判), 몸[體貌]·말씨[言辯]·글씨[筆跡]·판단[文理]을 관리임용 시험의 기준으로 삼았다.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당서(唐書)] <선거지(選擧志)>에 따르면 신(身)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말로 신분고하 또는 재주의 유무와 상관없이 첫눈에 풍채와 용모가 바르지 못하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풍채와 용모가 훌륭해야 한다고 보았다.

언(言)은 사람의 말솜씨를 이르는 말로 사람이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아도 이를 전달하는 말에 조리가 없고 분명하지 못하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따라서 조리 있는 좋은 말솜씨가 요구되었다.

서(書)는 글씨를 가리키는 말로 예로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한다고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 데에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아름다운 글씨를 가진 사람을 높게 평가하였다.

판(判)은 사람의 판단력을 이르는 말로 곧 사물과 세상의 이(理)를 폭넓게 이해하여 일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사람이 아무리 인물과 말솜씨가 좋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 하였다.

1400여 년 전의 관리임용 시험 기준은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적이지만 기준은 애매하다. 무엇보다 면접관의 기준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힘든 제도였다. 당나라의 대문호이자 시인이었던 한유(768-824) 조차도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여러번 낙방했을 정도이다.

아주 오래된 관리임용 제도인 신언서판이 정치권에 갑자기 소환됐다. 발단은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가 14일 취임 첫날 일정으로 대전국립현충원을 방문, 방명록에 남긴 글씨를 두고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준석 대표를 혹평했기 때문이다.

민경욱 전 의원이 '신언서판'에 빗대 이준석 당대표의 방명록 글씨를 혹평,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 민경욱 전 의원 페이스북 캡춰
민경욱 전 의원이 '신언서판'에 빗대 이준석 당대표의 방명록 글씨를 혹평,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 민경욱 전 의원 페이스북 캡춰

민 전 의원은 이준석 대표의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은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씨(체)와 내용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옛 선조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사람이 쓴 글씨를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세번째 기준으로 쳤다. 디지털 세대, 컴퓨터 세대들의 글씨체는 원래 다 이런가요?”라면서 “대한민국을 주어로 썼는데 그런 어법은 외국을 방문한 대통령쯤이 쓰는 어법”이라며 “지금 이 젊은이는 자신이 대통령이라도 된 것으로 아는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즉흥적인 30대 젊은이의 가벼운 언행을 보인다면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큰 실수들이 나오게 될 것이고 그것은 당에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면서 마지막으로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쓴 젊은이의 단 한 문장이 이렇게 허술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물론 민 전 의원은 이준석 대표에 대한 반감이 있다. 민 전 의원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 불법·부정 선거 주장을 펼쳤다. 이 대표는 당시 민 전 의원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의혹이다. 세상 뒤집힐 증거가 있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유튜버 부흥회를 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민 전 의원의 신랄한 비판에 대해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모처럼 국민의힘 칭찬받는데 고춧가루 뿌리냐? 내부총질도 적당히 하라"며 비판했다. 김 교수는 "당 대표의 글씨체와 문구를 시비거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라며 “MZ세대의 글씨체와 문구를 공감하지 못하고 꼰대 시선으로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당이 시급히 극복해야 할 꼰대문화 그 자체"라고 말했다.

방명록 글씨(체)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어찌보면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가치관 차이처럼 보인다. ‘가벼운 언행’과 ‘꼰데 문화’의 상충과 교차는 이준석 대표체제하 국민의힘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풍경이기도 하다.

민 전 의원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글씨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정치인이라면 글씨가 아닌 내용과 지향점에 더 방점을 두어야 했으며,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면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여야 했다. 이는 품격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茶山 丁若鏞, 1762-1836)은 고금의 여러 책에서 지방 장관의 사적을 가려 뽑아 백성을 다스리는 데 대한 도리를 모아 [목민심서(牧民心書)]라는 명저를 남겼다. 이 책에서 다산은 농민의 실태, 서리의 부정, 토호의 작폐, 지방 관헌의 윤리적 각성을 촉구하면서 목민관의 가장 큰 덕목은 애민정신(愛民情神)임을 강조했다.

보수정당에서 30대 당 대표가 나온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있는 일이다. 젊은 당 대표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목받는 시점, 이를 둘러싼 공방도 품격있으면 좋을 일이다. 젊은 정치인의 등장은 바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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