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기들이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달아 작품 시작 … '공존과 대체', 변화를 담았다"
"갤러리AG 신진작가상 수상, 추진력을 얻은 것 같다"

"무인 시스템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그렇게 하나 둘씩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의 사진은 사람이 직접 일을 하던 환경에서 무인 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는 도시환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류승진 작가 /ⓒ뉴스프리존
"무인 시스템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그렇게 하나 둘씩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의 사진은 사람이 직접 일을 하던 환경에서 무인 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는 도시환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류승진 작가 /ⓒ뉴스프리존

[서울=뉴스프리존]이현수 기자=어두운 밤, 사람이 없는 차가운 거리에 사람을 대신하는 무인 기기가 덩그러니 서 있는 풍경이 찍힌 사진들이 여러 장 늘어져 있다. 일본과 한국의 무인 시스템을 중심으로 찍은 이 사진들은 언뜻 보면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언택트'(untact)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최근, '공존과 대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품들은 안국약품이 후원하고 안국문화재단이 주관한 'AG신진작가대상 공모전'의 대상을 받은 류승진 작가의 작품이다.

'공존과 대체' 작품은 총 20개로 이뤄진 연작 작품이다. 류승진 작가과의 인터뷰가 이뤄진 6월 초에는 안국약품 갤러리AG에서 무인주차관리기가 서 있는 #1, 무인 광고판이 서 있는 #10, 무인주유기가 있는 #14, 무인주차계산기가 서 있는 #20 등 4편을 볼 수 있었다.

공존과대체#1_2019_pigmet print_120x80cm
공존과대체#1_2019_pigmet print_120x80cm/ⓒ류승진

사진 작품이기는 하지만, 리터치가 많이 가해져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이들 작품들은 리터칭을 통해 텍스트(글자)를 제거하고, 대부분 사진의 가운데 주요 사물을 배치하고 있어 더욱 인공적으로 느껴진다. 심사 중에는 사람을 배제하고, 공간 내 대칭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사진을 주로 찍어 온 베를린 출신의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작품이 떠오른다는 평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공존과 대체'라는 작품명이 먼저 떠올랐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무인 기기들과의 공존, 그리고 이들이 무엇을 대체하는지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다. 과연 작품들을 보면 그런 감성이 직관적으로 떠오르긴 했다.

실제로 류승진 작가는 제목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응축해 놓은 것이 제목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느낌으로 어느 정도는 해석이 가능하게 설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빠르게 이뤄지는 세상 변화, 자기 방식대로 풀었다

나중에 작가의 연작 20개 전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머지 16개 사진들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진의 촬영 시기. 2019~2020년 이뤄진 것들로 사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이뤄진 촬영들이 많았다. 2019년 촬영 분 중에는 일본에서 촬영된 사진들도 많았다. 코로나로 '언택트'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 작품의 제작 계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류 작가는 코로나19 확산과 작품 제작 의도의 겹침에 대해서는 '우연'이라고 밝혔다.

공존과대체#10_2019_pigmet print_120x80cm
공존과대체#10_2019_pigmet print_120x80cm/ⓒ류승진

작업 노트를 통해 그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셀프 주유소나 무인 주차 기계부터 트렌드를 반영하듯 쏟아져 나오는 전동 킥보드와 자전거, 대여 기계까지, 사람이 하던 일을 대체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서 촬영했다. 작업 초기에는 우리나라보다 앞서 무인 시스템이 자리 잡은 일본에서 촬영을 많이 했는데, 코로나19 확산과 소위 말하는 ‘언택트(untact) 시대’에 발맞춰 현재는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다양한 기계들이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작품은 단순히 사람이 없어진 자리만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언택트 뿐만 아니라 공유 경제로 인해 전동 킥보드와 전기 자전거가 서울 도심을 중심으로 눈에 띄게 많이 늘어났고 무인 시스템과 공유경제라는 트렌드를 같이 묶어 볼 수 있었다"며 "오늘날 무인 시스템이 인간과 공존하며 어떠한 면에서 사람을 대체하고 있는, 인간이 소외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승진 작가는 작품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패스트푸드 점의 키오스크를 사용하다가 이같은 무인기기들이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차 기계도 요즘은 자동으로 돼 있고, (셀프)주유소도 많이 늘어났다"며 "생각보다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풀어 나갈지 생각을 하면서 하나씩 제 방식대로 풀어나갔다"고 덧붙였다.

"무인기기들이 외로워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류 작가는 "아무래도 밤에 촬영을 했다 보니 좀 외로운 분위기도 될 수 있고, 사람이 없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들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찍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속 무인기기들이 가운데 배치된 이유에 대해 그는 "의도됐다기보다는 좀 더 저 기계에 좀 포커스를 맞추려면 아무래도 가운데가 돋보였다"며 "배경을 최대한 배제시키려고 하는 게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보았다. 사진 중 일부는 유난히 스산해 보였는데, 사진을 찍은 시기가 겨울이어서 그런 것 같다는 기자의 의견에 "의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다. 다만 텍스트를 제거해 일본인지, 한국인지 알지 못하게 했다.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공존과대체#14_2019_pigmet print_120x80cm
공존과대체#14_2019_pigmet print_120x80cm/ⓒ류승진

사람이 사진 속에 없는 것이 문득 요즘 추세와 관계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류 작가도 MZ세대들이 등장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실제로 만나거나 전화 통화로 이야기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기자의 의견에 "그런 성향이 많아지는 것 같다"며 공감을 표했다.

혹시 사람을 싫어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웃었다.

"반대했던 아버지, 지금은 안그래 … '신진작가상' 수상도 많이 좋아하셔"

"어두운 밤, 인공조명 아래에서 일을 하는 기계들의 모습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또 다른 사회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류승진 작가 /ⓒ뉴스프리존
"어두운 밤, 인공조명 아래에서 일을 하는 기계들의 모습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또 다른 사회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류승진 작가 /ⓒ뉴스프리존

류 작가에게 있어 이번 수상은 매우 의미가 깊다. 첫 연작 작품으로 상을 받은 것도 그렇지만, 앞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가 카메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어려서 부터였다. 아버지가 상업 사진 작업을 하시는 분이었으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작업장을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 작품으로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고 느낀 것은 2015년, 대학교 입학 이후였다. 입학 후, 사진 작업이 너무 좋고, 여러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느꼈다고.

류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사진을 많이 접해서 그런지 어느 순간 상업 사진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돈 때문에 할 수는 있겠지만, 좀 더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싶어서 3년 전부터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업 사진과 예술 사진의 차이에 대해 그는 "상업사진은 고객 만족이 중요하고, 예술사진은 제 생각에, 제가 좀 더 주가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술사진을 전업으로 하겠다고 할 때는 아버지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좋아하신다고 류 작가는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르쳐 놨는데, 다른 걸 하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제가 열심히 하려는 것을 많이 보여드리기도 해 이제는 괜찮다. 여기(AG 갤러리 신진작가상)에서 수상한 것도 많이 좋아하셨다"며 웃었다.

신진작가상 수상에 대해서는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작업을 하고, 또 이어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우연히 지원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상을 받아 다행이기도 하고, 감사하고 있다"며 "작품 활동에 있어 추진력이 중요하다. (이번 수상으로) 좋은 추진력을 얻은 것 같다"고 밝혔다.

앞으로 '공유 공간' 사진에 담고 싶어

앞으로의 작품 주제에 대해 그는 "공간에 대한 내용을 좀 담고 싶다"고 말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자면 '공유 공간'에 대한 관심이다.

공존과대체#20_2020_pigmet print_120x80cm
공존과대체#20_2020_pigmet print_120x80cm/ⓒ류승진

류 작가는 "대형 연습실, 아니면 대여 혹은 공유 오피스, 그리고 파티룸 등등. 에어비앤비도 있고. 이런 공유 공간에 대해 잘 풀어서 작업을 하고 싶다. 아직은 정해진 것은 없지만, 좀 더 생각을 해서 작업을 해 보고 싶다"며 관심을 드러냈다. 이어 "관심이 있는 주제를 푸는 것이 재미있다. 사진을 찍다 보면 '아 오늘은 괜찮네'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해서 하나씩 얻어 간다"고 덧붙였다.

최근 현대 작가들 사이에서 늘고 있는 SNS를 통한 소통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안올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좀 더 생각을 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