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근현대 미술전, 은폐된 낭만성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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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근현대 미술전, 은폐된 낭만성을 보다
  • 편완식 기자
  • 승인 2021.07.0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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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0일까지 나마갤러리 '굿모닝 USSR'전
9월 개관예정인 ‘mM 아트센터' 컬렉션 작품

[서울 =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인간은 근본적으로 낭만적인 동물이다. 혁명도 미술행위도 근저엔 낭만성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역사적으로 파시즘 등과 결합되면서 극단으로 치닫기도 했다. 상상력을 통한 인간 정신의 초월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던 모든 예술사조들은 낭만주의 예술로 가름해도 무방하다. 다만 당대의 시대성과 조우하면서 다양한 얼굴과 이름으로 표출돼 왔을 뿐이다. 러시아 근현대 미술도 예외가 아니다. 소비에트의 답답한 현실을 넘어서려는 몸부림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속에서도 ‘은폐된 낭만성’으로 숨쉬고 있었다. 움침한 날씨속의 우울감도 일종의 저항감으로 읽혀진다. 7월 30일까지 돈화문로 나마갤러리에서 열리는 ‘러시아 근현대 작품전(굿모닝  USSR)’은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포호다예프 ' 봄 '

이번 전시회에는 오는 9월 개관 예정인 평택 ‘mM 아트센터’ 컬렉션 중에서 55명의 러시아작가 작품 104점이 출품된다. 전시작품들은 러시아 정부 문화부로부터 해외반출 허가를 공식적으로 받아 출처가 확실하다. 출품작가중에는 라브첸코나 스토좌로프, 코미사로프 같은 러시아 예술가의 최고 칭호를 받은 인민 예술가 출신도 11명이나 포함돼 있다.

‘mM 컬렉션’은 1950년대부터 1991년까지 러시아 페인팅 1,400여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스타일 페인팅부터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추상화 등 거의 모든 스타일의 페인팅을 망라하고 있다.

라브렌코 '의사의 초상'

‘mM 컬렉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1930년대 이래 소비에트의 공식미술인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지배적 흐름 아래에서 그 사조에 저항하거나 도피하면서까지 그 예술적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던 수많은 러시아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보면 매우 고전적인 인물화나 풍경화, 정물화, 또는 추상화들이 소비에트의 공식적인 미술 정책에 반하여 소비에트 이전에 꽃 피었던 러시아 미술의 전통을 계승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870년대 아브람체보를 근거지로 활동했던 러시아 근대미술의 출발을 이루는 ‘순회파’와 ‘예술세계파’ 출신들이 싹 피운 유럽의 아방가르드와 러시아주의의 결합이 mM 컬렉션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낭만적이면서 장식적인 요소는 순회파 줄신의 러시아모더니스트들이 황실극장인 볼쇼이 후원 아래에서 발레나 연극, 오페라의 무대장식이나 의상디자인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데서 기인한다.

페로프 ' 붉은 광장에서의 혁명'

‘발레 루스’를 창단한 디아길레프가 1909년 안나 파블로바와 바슬라프 나진스키를 대동하고 벌인 파리공연은 서구에 예술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러시아 발레공연은 발레 자체를 음악, 무용, 무대 미술, 의상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종합예술로 승격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럽 일대에 러시아 예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가 일약 세계 예술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나탈리아 콘차르바와 니콜라이 샤푸노프뿐만 아니라 마르크 샤갈,그리고 러시아 미술 아방가르트의 대명사였던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도,타틀린의 구성주의도 이러한 무대 장식과 의상을 통하여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펼쳐왔다. 이런 장식적 직관이

러시아 아티스트들의 페인팅에 스며들면서 비잔틴적이면서 수평적 구도의 원시적일만큼 광활하고 황량한 러시아적 풍경화가 탄생했다. 한없는 우수와 낭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라트비아 출신 미술사학자 알리스 티펜테일이 본 러시아 근현대 미술 흐름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기에 이르는 소비에트의 아방가르드 예술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제작된 작품들이다. 이 시기의 예술과 문화는 거의 연구되지 않은 실정이다. 소비에트 국경은 외부로부터 봉쇄되었고, 공산 정부는 외국으로 노출되는 정보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은폐된 낭만성’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풍경과 정물을 통해 일상의 난관에서부터 벗어나려는 열망을 엿 볼 수 있다.

낭만주의적 미술에 대한 전통은 다양한 지역적인 양식과 유행을 배경으로 하여 발전되었다. 전후의 소비에트 연방은 러시아를 포함하여 뚜렷한 민족, 종교, 역사와 미술적 전통을 가진 15개 공화국의 연합이었다. 연방은 유럽의 문화권에 속했던 국가들(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역사적으로 서아시아 기독교의 거점이었던 국가들(예를 들자면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국가들(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로 이루어졌었다.

소비에트에서 가장 정치화된 미술은 1945년부터 1953년 사이 스탈린 독재정권 치하에서 제작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의 절정 시기다. 당시 화가들은 공산당 간부들이 제공한 목록에서 작품의 주제를 선정해야만 했다. 체바코브(N.N. Chebakov)의 작품 ‘여성 노동자 Female Worker’같이 노동자들의 초상화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후에는 약간의 자유가 주어졌던 짧은 기간, 즉 해빙기(1953-1964)가 나타난다. 비록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적으로 폐기된 것은 아니었으나 화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그리는지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를테면 스토좌로프(V.F. Stozharov)의 ‘발샤야 프이싸(마을명)의 급류 A Rapid Stream in Bolshaya Pyssa’(1964)가 그러한 예다. 두터운 붓터치로 표현된 낭만적인 교외의 풍경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에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이 군사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었으며,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소비에트 미술의 주적(主敵)이었기에 모든 방식의 추상은 공식적인 소련 미술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리투아니아 화가 죠롬스키스(K.A. Zhoromskis)의 ‘벽 Wall’(1964-1965)은 그러한 이 시기의 작품 중 두드러지게 예외적이었는데 그것은 화가가 전쟁 중 이주하여 외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했기 때문이다.

해빙기 이후에는 20여년간의 정체기(1964-1985)가 이어졌다. 정치 비판적 미술은 개인의 아파트에서 홍보도 없이 은밀하게 전시되었다. 일군의 작가들은 시적인 주제를 선택하려 하였다. 벨르이흐(N.E. Belykh)의 ‘정원 Garden’(1984)이 그 예다. 도저히 20세기라고는 보기 힘든,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세워진 마을이 눈에 뒤덮인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트빌리시의 가을 풍경 The Scenery of Tbilisi in Autumn’은 우크라이나 태생의 화가 세메이코(L.N. Semeiko)가 조지아의 수도를 그린 작품이다.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의 파블로츠키(V.Ya. Pavlotsky)는 모국의 수도를 ‘아쉬바흐드의 겨울 Winter in Ashgabat’(1978)을 통해 표현했다.

 코미사로프 ' 쥐굴리강의 광야'

소비에트의 마지막 시기는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재건)’(1985-1991)라고 불리는 기간이다. 미술에서의 검열과 엄격한 규율이 점진적으로 느슨해지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강력히 규제되었던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이 다시 도래하며, ‘모퉁이 Corner’ (1990)의 화가 로쉰(S.L. Roshchin)과 같은 작가들이 말레비치(Malevich)와 엘 리시츠키(El Lissitzky)를 재조명하기도 했다.

소비에트 통치에 대한 불만은 정치 비판적인 예술로 이어졌고 현재 미국과 서유럽 박물관의 전후 소련 컬렉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많은 다른 예술가들은 정권에 대한 그들의 의견과 관계없이, 현실적인 문제에서 등을 돌린 채 역사와 자연에서 영감을 추구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매우 드물게도 낭만적인 시선을 통해 소비에트 시대를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번 전시작품들은 당시 러시아 사회를 짓누르던 정치-사회적 긴장을 기이하게 견뎌낸 작품들이다. 놀랍도록 숙련된 리얼리즘 회화의 뉘앙스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숙고할 수 있게 해준다.

 솔로민 '겨울동화 '

# ‘mM 컬렉션’은 어떻게 이뤄졌나

한 기업가의 의지가 반영된 컬렉션이다. 기업가는 ‘지오비스’ 이태호 회장이다. 1970년 부산 범일동 부근의 작은 철공소로 시작해 지금은 충청도,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미국의 3개 주에 사업을 진출시킨 자동차 관련 철강산업의 중견기업가다.

그동안 작가들의 창작지원을 지속적으로 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이 회장은 1993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러시아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즈음 철강 수출입 관련 업무차 러시아를 자주 방문하게 됐다. 당시 그는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Tretyakov Gallery)을 우연히 들를 기회가 생겼고, 그곳에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방대한 문화유산을 만나며 러시아 미술품 컬렉팅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기업인으로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그림을 수집하고,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던 ‘파벨 미하일로비치 트레티야코프(Pavel Mikhailovich Tretyakov, 1832-1898)’의 삶에서 이 회장은 자신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보게됐다. 본격적으로 미술 작품들을 수집하게 된 배경이다. 전문적인 컬렉팅을 위해 독일 컬렉팅 전문가에게 의뢰, 3년여에 걸쳐 다양한 작품들을 수집했다.

소장품은 주로 3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풍경화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인 성향을 띠는 인물화들이다. 대부분이 소비에트 시절 국가로부터 창작 활동을 보장받았던 170여 명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이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코미사로프(Komissarov И. Е), 포프코프(Popkov Yu. N.), 코르반(Korban V. V.), 솔로민(Solomin. N.K), 솔로니첸(Solonitsyn A. P.) 등이 있다.

30여년간 지속되고 있는 컬렉팅은 ‘mM 아트센터’로 귀결되고 있다. 미술이 사회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소신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미술관이 아닌 ‘또 다른 미술관’을 목표로 개관준비중에 있다.  산업의 쌀인 철강생산 공장이 이젠 문화예술산업의 쌀을 생산하는 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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