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사(思無邪)란 말은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공자(孔子)가 시(詩) 305편을 산정(刪定)한 후 한 말씀이지요. 저 역시 잘 쓰지는 못하지만 <대불의 꿈> <덕화만발> <불멸의 꽃> 등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과연 사무사의 경지에 올랐는지는 걱정입니다. 무릇 시인이란 마음에 삿(邪)됨이 없어야 합니다. 즉, 공자가 말씀하신 ‘사무사(思無邪)’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자는 시 305편을 산정하신 후, 하신 말씀으로 사(思)는 ‘생각’을 말하고, 무사(無邪)는 ‘사악함이 없음’을 뜻한다 했습니다. 즉, 사악함이 없는 생각을 의미하는 말로, 마음이 올바르고, 조금도 그릇됨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시삼백 일언이폐지왈 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그러니까 《시경(詩經)》에 있는 ‘삼백 편의 시는 한 마디로 말해 사악함이 없다는 말이다.’ 시란 과거나 현재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감정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공자께서 《시경》에 나와 있는 시 300편을 모두 읽어보니, 그 내용들은 조금도 이해타산을 따지는 내용도 없고, 속된 내용도 없으며, 오직 인간이 올바로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군더더기가 없고, 사특함이 없는 동심(童心)의 마음이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에 ‘사(邪)’가 끼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사무사’는《시경》의 정신인 사실과 감정의 순화(純化)를 상징합니다. 그러한 뜻에서 공자는 3백편의 《시경》을 한마디로 간추려 ‘사무사’라 하신 것이지요. ‘사무사’는 공자사상의 ‘인(仁)’에 버금가는 한축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서 순수하지 않은 사악한 마음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한다면 건설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사’라는 말은 사랑에는 삿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하고 사랑함에 있어서 그 사람을 이용한다거나 음흉(陰凶)한 생각을 품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지요. 그 생각에 삿됨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함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지요? 한시대의 풍운아(風雲兒)였던 고(故) 운정(雲庭) 김종필(金鐘必 : 1926~2018) 전 국무총리의 묘비명(墓碑銘) 요즘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마 근래 대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많은 정치인들의 마음이 ‘사무사’에 미치지 못해 국민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뜻에서인 것 같습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국립묘지를 마다하고 영세반려 아내 곁에 묻히고 싶다는 문구에서 정치 거목이기 전에 한 남편으로서의 애틋한 면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생전에 인터뷰에서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는데도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눈을 감자 묘비명 전문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물론 해박한 한문 실력이 놀라웠습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생전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인 박영옥 여사 별세 직후 직접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 점 허물없는 생각(思無邪)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 그 마음의 뿌리를 ‘무항산이면 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 즉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고 적었습니다. 또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다.”라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고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은 김 전 총리가 작성했던 묘비명의 전문입니다.

「思無邪」를 人生의 道理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을 治國의 根本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 위하여 獻身盡力 하였거늘, 晩年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는 ‘笑而不答’하던 者-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이를 한글로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점 삿됨이 없는 생각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 그 마음의 뿌리를 ‘무항산이며 무항심’에 박고 몸 바쳤거늘,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 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결국 그가 마음 편히 누울 곳은 아내 곁이었습니다. 92세 장수에 명예와 권력을 모두 누렸으니, 그의 생은 누구 부럽지 않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자만할 만도 했겠지만 90에 이르고 보니, 89세까지도 잘못 살았다는 고백입니다. 죽음 앞에서 삶을 바라보니 명예나 부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옛날 조상들 중에도 묘비명을 미리 지어둔 이들이 많았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무덤 옆 묘비에는 묘지 주인의 인적사항 정도를 알려주는 것에 머물러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화장 후, 가까운 선산(先山)에 그냥 뿌리라고 유언을 해두었으니 그마저 표지석도 세울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운정(雲庭)’의 삶처럼 <사무사(思無邪)>의 정신만은 '마음속의 묘비명'으로 삼고 가면 저도 참 좋을 것 같네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7월 1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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