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좋은 아이' KBS 읽기혁명 제작팀·신성욱,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신성욱

[뉴스프리존] 인간의 뇌 발달에 대한 가설 중에는 3세 무렵에 이미 뇌 발달의 대부분이 완성된다거나 6세 이전에 발달이 끝난다는 등 잘못된 것들이 많다. 아이가 6세 정도가 되면 뇌의 크기가 어른 뇌의 약 90% 정도의 크기까지 자라는데, 이 사실에 기반을 두어 오랫동안 사람들은 뇌의 크기가 커지면 그 발달의 정도도 크기에 비례해서 완성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을 두고 계속해서 발달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대표적인 것은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에서 ‘뇌 발달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제이 기드 박사의 연구다.* 그는 3세부터 25세에 이르는 피실험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2년마다 그들의 뇌를 MRI로 촬영하고 분석해 인간의 뇌가 영유아기를 지나 청소년기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변화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영유아 시기에 서둘러 아이의 뇌를 자극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26, ‘1999년 제이 기드 박사의 청소년 뇌 발달 장기 추적 MRI 연구’, 과학동아 2012년 02호 

그런데도 영유아 시절에 뇌 성장이 거의 완성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주장을 펼치는 책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 물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책을 아주 잘 읽고 또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어려운 책도 곧잘 읽어내는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아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영재로 여겨지기 쉽지만 사실 영재가 아니라 ‘하이퍼렉시아(Hyperlexia, 과잉언어증)’ 증상을 보이는 것일 가능성이 꽤 크다고 한다. 하이퍼렉시아는 뇌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한글이나 영어 등의 문자나 숫자를 조건반사식으로 가르치는 인지 중심의 과도한 조기교육 때문에 나타나는 유아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하이퍼렉시아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텍스트의 의미를 전혀 모르면서도 한글이나 영어를 기계적으로 발음하고 복잡한 단어나 어려운 문장도 능숙하게 읽어낸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것은 원래 선천적 자폐아들에게 볼 수 있는 여러 증상 가운데 하나였는데 조기교육 열풍과 함께 요즘은 선천적으로 자폐아가 아님에도 하이퍼렉시아 증상을 보이는 ‘후천성 자폐’, ‘유사 자폐’, ‘자폐 성향’ 등의 진단을 받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성욱은 『뇌가 좋은 아이 : KBS 특집 다큐멘터리 읽기혁명 한 살 아기에게 책을 읽혀라』와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에서 독서조기교육으로 인해 유사 자폐 진단을 받은 두 아이의 사례를 각각 소개한다. 

먼저 민우라는 아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민우 엄마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독서 영재 교육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교육법에서는 모든 아기는 천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생후 18개월이면 책을 읽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환경만 제대로 조성해 주면 모든 아기는 18개월 무렵부터 하루에 수십 권씩 책에 몰입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 시기를 특별히 ‘책의 바다에 빠지는 시기’ 또는 ‘몰입기’라고 부른다. 말을 하기 전에 이런 몰입을 경험한 아이들이 결국 ‘독서 영재’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아 때부터 책을 많이 읽히면 사교육을 안 시켜도 아이를 영재로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 마음에 와닿아 민우 엄마는 누구보다 열심히 ‘독서 영재 교육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 교육법에 따라 민우가 생후 18개월이 되었을 무렵부터 수백 권의 책을 안겨주었고 아이는 엄마의 기대와 바람대로 책에 파묻혀서 지냈다. ‘독서 영재 교육법’에서 알려준 대로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가 책을 붙들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25개월 무렵까지 민우가 읽은 책은 수천 권을 넘겼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른들이 쓰는 어려운 단어를 곧잘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3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갓난쟁이 동생을 때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맞추지 못했고, 말을 걸면 엉뚱한 곳을 바라보면서 혼잣말로 책에 나오는 구절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민우를 소아정신과에 데리고 갔고 민우는 유사 자폐 진단을 받았다. 그날 민우 엄마는 ‘독서 영재 교육법’ 인터넷 커뮤니티에 민우의 사연을 올리고 상담을 구했다. 

얼마 후 돌아온 답변에서는 ‘독서 영재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면 유사 자폐라는 진단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라면서, ‘소아정신과 의사들이 독서 영재 교육법을 잘 몰라서 내리는 진단이다. 유사 자폐 진단을 받았다면 오히려 독서 영재라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이가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고 병원에서도 그런 진단을 받았는데 그게 독서 영재의 증거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민우 엄마는 즉시 ‘독서 영재 교육법’을 포기했고, 민우는 소아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다음은 민지라는 아이다. 2008년 KBS에서 방영되었던 ‘읽기혁명, 한 살 아기에게 책을 읽혀라’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제작진은 민지를 섭외했다. 민지는 생후 8개월 무렵부터 시작해 29개월까지 1만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독서 영재 교육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꽤 유명했던 아이였다.

제작팀은 민지의 발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운동, 언어, 사회성 및 정서 검사’를 받도록 했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민지는 지능이 또래보다 낮은 것은 물론 사회성 검사 점수는 마이너스였고, 엄마와의 애착 관계에 문제가 있었으며, 자폐 성향마저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런 결과에 대한 상담을 받은 민지 부모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원래 독서 영재들은 대부분 자폐 성향 진단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이것이 아이가 정말 독서 영재라는 증거라고 자신했다.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소아정신과 의사의 설득에도 민지 엄마는 끝까지 자신은 ‘독서 영재 교육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집했고, 논쟁 끝에 민지의 사례는 방송에는 나오지 못하고 책에만 소개되었다. 

민우와 민지의 사례를 소개한 신성욱은 ‘독서 영재’라는 표현 자체가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독서 영재라는 말은 매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며, 그 교육법이라는 것 역시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영재 교육법’은 매우 위험하다. 부모들이 자칫 ‘독서 영재 교육법’을 맹신하여 아이에게 적용하게 되면 민우와 민지의 예처럼 그 폐해가 너무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미국의 교육 개혁가인 존 홀트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보자.

“세상엔 아이들을 보는 두 가지 잘못된 관점이 있다. 하나는 길을 들여 복종시켜야만 할 사악한 괴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을 잘 돌리면 천재로 만들 수 있는 두 발 달린 조그만 컴퓨터로 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존 홀트, 아침이슬, 33쪽

둘 중 어느 쪽이 더 나쁠까? 과도한 조기교육은 아이에게 해가 될 뿐이다. 뇌의 발달 과정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무리한 독서조기교육은 필요하지 않다. 

[연재 순서]

① 만 5세 전에는 안 돼요!
 - 『책 읽는 뇌』 매리언 울프

② 독서 영재의 허와 실
 - 『뇌가 좋은 아이』 KBS 읽기혁명 제작팀·신성욱 /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신성욱

③ ‘디지털 단식’이 필요한 시대
 - 『디지털 단식』 빅토리아 던클레이

④ 눈 가리고 아웅! 아이들은 다 알아요 
- 『그림책의 힘』 가와이 하야오, 야나기다 구니오, 마쓰이 다다시 

⑤ 미안해. 엄마도 책 읽는 걸 배워본 적이 없어서 
-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최윤정

⑥ 읽기보다 중요한 듣기
-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존 홀트

⑦ 코딩! 초등 필수 과목에 등극하다! 
-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 존 카우치, 제이슨 타운

# 김소은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美 Cornell University, Master of Regional Planning 석사
전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지식 컨설턴트(Knowledge Export)
인문학교육기업 대표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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