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청산리 대첩' 홍범도 장군의 광복절 귀환, "문대통령 의지가 결정적"
상태바
'봉오동·청산리 대첩' 홍범도 장군의 광복절 귀환, "문대통령 의지가 결정적"
  • 고승은 기자
  • 승인 2021.08.16 1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범도 기념사업회' 우원식 의원 "고려인과 그 후손들 아픔까지도 치유되는 계기 되길"

[ 고승은 기자 ] =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군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5일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귀환했다. 이주 100년, 순국 78년만의 귀환이며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은 문재인 대통령님의 의지가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우원식 의원은 15일 밤 페이스북에서 이같이 말하며 "사실은 그간 장군님의 귀환을 위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혔다. 우원식 의원은 지난 14일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배우 조진웅 씨 등과 함께 특사단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출국했으며 홍범도 장군의 유해와 함께 귀국했다.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군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5일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귀환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15일 저녁 서울공항에 도착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앞에서 분향했다. 사진=연합뉴스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군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5일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귀환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15일 저녁 서울공항에 도착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앞에서 분향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4월 한국-카자흐스탄 정상회담에서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 바 있다. 봉오동전투 100주년인 지난해 홍범도 장군을 봉환하려 했으나, 코로나19 확산 상황으로 늦춰지다 이번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 계기로 결실을 맺었다. 독립운동가를 최고로 예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셈이다. 

우원식 의원은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첫째는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정신적 지주이시기에 고려인 사회에서 흔쾌해 하지를 않았고, 둘째는 그 분의 고향이 평양이고, 활동무대가 백두산 등지여서 카자흐스탄 정부가 대한민국 이송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세째는 이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후손이 없었던 면도 있다"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은 카자흐스탄과 수교를 맺은 1992년 이후로 추진돼 왔으나 쉽지 않은 문제였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을 ‘정신적 지주'로 모셔왔으며 크즐오르다에 장군의 모역을 조성하며 '민족 지도자'로 기려왔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1994년 ‘홍범도 장군 거리’를 선포하며 그를 기려오고 있다. 

또 홍범도 장군의 직계 후손이 남아있지 않은 점도 현실적 어려움이었다. 또 북한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고향이 평양인 점을 들어 "유해는 평양에 안치되어야 한다"고 딴지를 걸었다. 지난해 6월 북한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카자흐스탄 정부도 북과 남이 통일된 이후에 홍범도의 유해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며 "남조선 당국의 책동은 조상 전례 풍습도 국제관례도 무시한 반인륜적 행위이며 또 하나의 도발"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군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5일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귀환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이 강제이주의 아픈 역사를 다시 떠올리고 고려인과 그 후손들의 아픔까지도 치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군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5일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귀환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이 강제이주의 아픈 역사를 다시 떠올리고 고려인과 그 후손들의 아픔까지도 치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우원식 의원은 "그런데 2019년 카자흐스탄 국빈방문시 대통령님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장투쟁의 역사를 모셔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토가예프 카자흐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관철하신 것"이라며 "그 때 제가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 자격으로 특별수행원이었기에 그때 대통령님의 의지가 얼마나 분명했는지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우원식 의원은 "장군님의 귀환에 대해 고려인 사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 당시 알마티에서 500여 고려인 사회의 지도자들을 모시고 오찬을 하셨다"라며 "특히 고려인들의 희생을 잘 기억하고 귀환 후 고려인 사회의 섭섭함을 고려하여 후속사업에도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도 있었다"라고 구체적 뒷이야기를 전했다. 

우원식 의원은 "작년 3월말 봉환 일정을 잡았는데 그만 코로나로 봉환일정이 취소되고 기약없이 미루어졌다"면서도 "그런 속에서 이번 광복절 봉환 일정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셨다"라고 강조했다.

우원식 의원은 "당초 카자흐 정부는 국빈방문과 함께 유해 봉환이 이루어져야 하며, 광복절 봉환이 일본의 신경을 건드릴 수도 있다는 등의 이유로 16일 봉환 입장이었으나, 광복절 귀환의 의미를 여러 차례 설명하고 요청하여 마침내 광복절 귀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이주 10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바라보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모습. 우원식 의원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주 10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바라보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모습. 우원식 의원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6일과 17일 이틀간 한국을 국빈 방문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실질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우원식 의원은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청산리 골짜기를 누비며 일본군을 대파했던 공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라며 "그것이 힘없는 조국을 둔 장군의 마지막이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머나먼 타지로 강제로 이주당한 홍 장군과 수십 만명의 고려인,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살당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지켜 줄 나라가 없었다"라고 했다.

우원식 의원은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이 강제이주의 아픈 역사를 다시 떠올리고 고려인과 그 후손들의 아픔까지도 치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 출생이며, 조선왕조가 기울어가던 1895년 강원도 회양에서 봉기해 일본군을 사살하며 항일운동을 시작한 바 있다. 명사수로도 유명했던 홍범도 장군은 대한제국이 을사조약·정미조약 등으로 국권을 사실상 빼앗긴 지난 1907년 평안도와 함경도의 포수들을 모아 의병부대를 결성했다. 그는 이후 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한 이후에도 의병활동을 계속하며 일본군과 싸워왔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을 ‘정신적 지주'로 모셔왔으며 크즐오르다에 장군의 모역을 조성하며 '민족 지도자'로 기려왔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1994년 ‘홍범도 장군 거리’를 선포하며 그를 기려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을 ‘정신적 지주'로 모셔왔으며 크즐오르다에 장군의 모역을 조성하며 '민족 지도자'로 기려왔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1994년 ‘홍범도 장군 거리’를 선포하며 그를 기려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범도 장군은 1919년 3.1 운동 이후 북간도에서 대한독립군을 조직, 이듬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그는 이후 독립세력의 거점이던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압박이 거세지자 러시아(당시 소련) 자유시로 이동했다. 그러나 집결한 한인 부대 간 지휘권을 둘러싸고 충돌이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를 '자유시 참변'이라고 하며, 이후 한인 부대의 경우 소련 공산당의 통제를 받아야만 헀다.

홍범도 장군은 이후 연해주의 협동농장 등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민층의 생활 향상과 한인동포들의 권익보호에 힘썼다. 그러나 1937년 9월 독재자 스탈린이 벌인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수많은 한인들이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렇게 강제 이주당한 이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 강제 이주 후 움막집에서 살며 고려극장 경비 생활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다 1943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보훈처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16~17일 이틀간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온·오프라인 추모 기간을 운영하며, 온라인 헌화와 분향은 보훈처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앞에 설치된 국민분향소에서 직접 참배 및 승차 참배(드라이브 스루)는 선착순으로 가능하다. 정부는 국민 추모행사 후 오는 18일 대전현충원에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안장할 계획이다.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 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하단영역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