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하네. 이 세상에 온 걸."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 순진하기 그지 없어보이던 이가 악한 길로 들어서는 것이 순식간이라면,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오는 것은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 충분할는지 모른다.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오기를 희망해 보는 연극 “가난포르노”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소망한다. ‘가난포르노’라는 용어는 누군가의 가난을 부각하여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데 사용된다. 이번 작품은 일견 그리 보일 수 있으나, 제목을 그리 사용한 것은 오히려 그러한 점들을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 같다.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 추위에 떨며 방에서 옷을 돌돌 말고 있어도, 딸기가 먹고 싶지만 딸기향 가득한 과자를 먹어도...이들의 미소는 너무 행복해만 보인다. /(사진=Aejin Kwoun)
"가난포르노" 공연사진_서현(김서현), 민준(이동협) | 추위에 떨며 방에서 옷을 돌돌 말고 있어도, 딸기가 먹고 싶지만 딸기향 가득한 과자를 먹어도...이들의 미소는 너무 행복해만 보인다. /(사진=Aejin Kwoun)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제2회 여주인공페스티벌’의 참가작으로 소극장 공유에서 관객들과 함께한 작품 “가난포르노”는 삶의 끝자락에 놓인 노파와 곧 태어날 새 생명을 잉태한 젊은 임산부의 만남을 통해 가난 너머의 인간, 더 너머에 숨겨진 희망에 대해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건네왔다.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 무대에서 라이브로 건반을 연주하며 틈틈히 무대 위 인물들에게 보내는 그의 표정은 소소한 웃음을 안겨준다. /(사진=Aejin Kwoun)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 무대에서 라이브로 건반을 연주하며 틈틈히 무대 위 인물들에게 보내는 그의 표정은 소소한 웃음을 안겨준다. /(사진=Aejin Kwoun)

201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 “가난포르노”를 집필한 최고나 작가는 멀리서 보는 세상은 어찌 된 일인지 가까이서 보는 세상과 천지 차이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평범함이 가장 어렵다는 단순의 논리처럼 우리는 오늘도 더욱 평범해지려 세상과 맞서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은 동화 같은 이야기의 마지막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로 끝맺음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 폐지를 모으며 각종 잡동사니를 집 안에 쌓아두고 사는 노파이건만 엄청난 재력가라는 소문이 돌고...노파의 재산을 차지하려 자기합리화와 적의를 유지하려 분투하던 그녀는... /(사진=Aejin Kwoun)

무대의 여러 오브제를 상징의 메타포로 사용하여 무대 언어는 시가 되는 작품 “가난포르노”는 캐릭터마다 가지는 특유의 리듬감을 부여하며 각 인물의 삶 속 희로애락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피아노 선율에 맞춰 각 캐릭터가 부르는 노래는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주제이지만 관객들이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주었다.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사진=Aejin Kwoun)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 딸기, 그리고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는 노파의 손길에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은 단순에 녹아내린다. 그녀를 부추겼지만 이내 포기한 그는 그저 용기가 없는걸까? 아직은 세상을 믿고 싶은 순진함일까? /(사진=Aejin Kwoun)

가난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이 세대 간의 이야기라 전하는 송갑석 연출은 “이 작품은 현재 모든 세대가 처해 있는 여러 상황을 매우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힘든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순수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며 한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밝은 미래를 보여주었다.

"가난포르노"를 함께 만든 사람들_조명(서영학), 연출(송갑석), 진행(이석구), 조명프로그래머(이근진), 무대(전치화), 조명오퍼(길태임) 서연(김서현), 노파(이창호), 연주(윤태정), 민준(이동협) /(사진=Aejin Kwoun)
"가난포르노"를 함께 만든 사람들_조명(서영학), 연출(송갑석), 진행(이석구), 조명프로그래머(이근진), 무대(전치화), 조명오퍼(길태임) 서연(김서현), 노파(이창호), 연주(윤태정), 민준(이동협) /(사진=Aejin Kwoun)

아래는 2013년 연극계의 뜻 있는 중견 연극인들과 참신한 신진들이 모여 ‘모이면 공연한다’라는 뜻의 극단 모이공의 대표이자 이 작품을 연출한 송갑석 연출가와 미니 인터뷰 내용이다.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는 순수한 마음과 악한 마음 사이 갈등을 가난이라는 배경 아래 무대 위에서 펼쳐진, 조금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와 배우의 연출에서 중요하게 여기신 점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는 노년의 고독사 문제와 청년 빈곤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대들이 서로 투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비정한 상황을 재현하고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가난 속에서도 쇠한 것이 가고 새것이 오는 섭리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노파는 여자의 배에 손을 대고 꼼지락거리는 태아의 움직임에 미소를 지으며 세상에 온 것을 축복한다고 말하는데(“환영하네. 이 세상에 온 걸.”) 이 대사가 참혹하게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가난포르노" 무대사진 /(사진=Aejin Kwoun)
"가난포르노" 무대사진 /(사진=Aejin Kwoun)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난포르노(일반적으로 빈곤포르노란 용어로 널리 알려짐)란 제목처럼 가난의 민낯을 리얼하게 보여주기보다 하나의 우화로 표현되어 즐겁게 보면서 마지막에 관객들에게 주제와 함께 희망을 전달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실제 무대에서는 천의 사용(가난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고 노력하려고 사용된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천), 포그의 사용(반대로 속이 잘 안 보이는 포그), 훔쳐보기(몰래 훔쳐보는 CCTV를 구현하기 위해 빔프로젝터와 창문을 강조를 통한 관객의 훔쳐보기), 노래와 연주(무거운 이야기를 더욱 즐겁게 전달하면서 감정의 극대화) 등을 통해 위의 연출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조명에서 2가지 길조명이 나오는데 세로의 길조명은 임신한 젊은 여자가 걸어가야 할 길로써 미래가 불투명한 젊은이들의 길을 의미하며, 가로의 길 조명은 나이든 할머니가 바라보는 세상의 길로써 처음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나중에는 결국 두 개의 길이 만나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희망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연출로서 배우의 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보다 진실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연기 테크닉이 아닌 가장 진실되게 연기하며 20대 관객에서 7~80대 관객들까지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배역의 순수성을 가장 살릴 수 있는 영혼이 순수한 배우를 선정하였으며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난의 민낯을 과감히 보여주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을 관객이 공감하고 응원하도록 하는 것이 연기의 목표라고 할 것입니다.

시작부터 자욱하게 가득하던, 그리고 계속해서 무대를 메우고 있던 포그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지 듣고 싶습니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3가지 큰 의미로 사용됩니다. 첫 번째로 포그는 서울 도시를 가득 덮고 있는 스모그와 미세먼지를 나타냅니다. 2번째로는 과거에 대한 회상의 의미로 기억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을 나타내며, 3번째로는 상징적인 의미로 젊은이들의 불투명한 미래와 함께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할머니의 비밀과 할머니에 대한 뜬구름 적인 소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할머니 역 연기에는 정말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연 내내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시는 실제 덩치도 작지 않은 배우님이 맡으신 역할은 극에서 너무나 중요하겠지만 아무나 맡기 쉽지 않다 여겨집니다. 노파 역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됐을지 듣고 싶습니다.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 무대 위에서 노파는 단 한순간도 고개를 들지 않고, 허리를 땅바닥에 거의 붙일 듯 수그린 상태로 연기한다. /(사진=Aejin Kwoun)
"가난포르노" 공연사진 | 무대 위에서 노파는 단 한순간도 고개를 들지 않고, 허리를 땅바닥에 거의 붙일 듯 수그린 상태로 연기한다. /(사진=Aejin Kwoun)

본 작품에서 바라본, 제가 바라는 노파는 한 시대(과거)를 열심히 살아온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 즉 여성의 삶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지금(현재)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자궁이 말라버린 고목(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으로써 여성성이 사라진 채(더 이상 아이를 잉태하지 못함) 모두에게 버림받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 존재로 비춰집니다. 결론적으로 여성성이 살아진 상징적인 고목의 이미지를 위해 아닌 남자배우가 역을 맡음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할머니의 슬픔이 더해진다고 생각되어 과감히 극단의 대표이며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배우를 캐스팅하게 되었습니다.

극단 모이공의 다음 작품 소식이 궁금합니다.

극단 모이공의 차기작은 김수미(前 극작가협회 이사장) 작가님의 ‘無題의 시대’를 12월 말에서 1월 초에 올릴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다채롭고 단단한 내공을 가진 여주인공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제2회 여주인공페스티벌’을 주관한 극단 행복한사람들의 원종철 대표는 20년의 연기 내공을 가진, 여전히 무대를 꿈꾸는 매력 가득한 배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주인공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작품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무대는 뒤로 미룬 채 무대를 먼저 걸어온 선배로서 기회의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기에, 계속해서 이번 페스티벌에서 공연될 “인형의 집-시작된 살인”, “엄마의 여름” 그리고 페스티벌이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관객들의 애정 가득한 응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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