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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대잔치

요즘은 사람들이 웃을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보니 개그콘서트 ‘아무말대잔치’ 코너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별로 웃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여유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을 때 웃음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에 못지않은 아무 말 대잔치가 요즘 마구 펼쳐지고 있습니다. 대선 출마자들의 코미디 못지않은 아무 말 대잔치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말의 향연의 예를 다 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면 어떤 여당후보는 전 국민 연 100~200만 원 기복소득 공약의 발표입니다.

그리고 야당의 어느 후보는 “후쿠시마 원전은 폭발이 아니기 때문에 방사능 유출이 안됐다.”는 말의 성찬입니다. 도대체 이런 말이 시체 말로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대선 주자들의 말의 성찬이 들릴 때 마다 문득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났습니다.

이 말은 송(宋)나라 저공(狙公)과 원숭이들 간의 우화(寓話)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저공은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원숭이들과 가족과도 같은 관계로 지냈습니다. 식량이 모자라면 자기 식구들의 양식을 덜어 원숭이를 먹일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지요.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지자 도저히 먹이를 충당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고민하던 저공은 꾀를 내 원숭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는 너희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려고 하는데 너희 생각은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아침에 도토리 세 개는 너무 적다고 화를 냈습니다.

저공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아침에는 네 개, 저녁엔 세 개를 주도록 하겠다. 어떠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하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우화는 <열자(列子)> <장자(莊子)> 등의 고전에 실려 있는 고사성어이지요. 그런데 <장자>에서는 저공을 어리석은 원숭이의 생각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현명한 인물로 비유했습니다.

하지만 <열자>에서는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는 것에 비유하며 간사한 꾀로 사람들을 속이는 행태를 꾸짖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두 고전의 해석은 제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저공의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원숭이의 믿음을 저버렸기 때문이지요.

《논어(論語)》 <안연 편>에서는 믿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고사가 실려 있습니다. 제자 자공이 “정치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히 하고, 군대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입니까?” “군대를 버려야 한다.”

“또 한 가지를 버린다면 무엇입니까?” “식량을 버려야 한다. 자고로 사람들은 모두 죽게 마련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民無信不立).” 이렇게 공자는 믿음을 정치의 근본이자 나라 통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믿음이 없다면 매사에 분쟁이 생기고 서로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그 관계는 아름답게 유지되지 못하고 깨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씀하신 ‘무신불립’은 무슨 뜻일까요?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신뢰가 없는 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처럼 ‘무신불립’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믿음을 지키는 방법은 어찌하면 좋을까요?

첫째, 자신이 했던 말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을 얻는 조건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자신이 했던 크고 작은 말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실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한번 말한 것은 꼭 지켜야합니다. 그래서 쉽게 말할 수 없고, 함부로 약속을 남발할 수도 없지요.

둘째, 믿음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삶에서 신뢰감 있게 행동하고,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킴으로써 믿음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면 그 보상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지요. 특히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이보다 더 효과적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 믿을 수 있어’라는 말을 얻게 되면 이미 상대의 마음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요즘 대선을 앞두고, 많은 후보자가 자신을 드러내고자 마치 말의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치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장점과 소신, 그리고 남다른 정책을 피력하기보다는, 대부분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모함하는 것 같습니다.

‘욕위대자 당의인력(欲爲大者當爲人力)’이라 했습니다. 크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사람의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큰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서야 쓰겠습니까? 말은 무게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행동을 신중하게 하고 허무맹랑한 말을 하지 않을 때, 국민들이 따르고 믿음이 쌓이지 않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8월 2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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