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MBC

[뉴스프리존=이준석 기자] 7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배우 박준규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카리스마 넘치는 묵직한 연기부터 맛깔 나는 감초 연기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배우 박준규.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어느새 30년째 연기 외길인생을 걷고 있다. 

“벽이 없는 배우입니다. 항상 열려있어요. 안팎으로 좋은 배우이자 또 좋은 친구이자 또 후배들한테 좋은 형입니다.” - 김상중 인터뷰 中  

“굉장히 성격파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연기파. 개성적인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 하정우 인터뷰 中  

배우 고 박노식의 아들로 처음부터 화려했을 것만 같은 그의 연기 인생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15년이 넘는 무명시절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닥친 경제위기로 반지하 주택에서의 생활. 그리고 ‘박노식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없애기 위해 애써온 시간. 대중에게 ‘배우 박준규’로 인정받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겪은 그의 연기 인생이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다

그의 이름 앞엔 ‘박노식의 아들’ 혹은 ‘쌍칼’이란 수식어가 긴 시간 따라다녔다. 지금은 ‘배우 박준규’로 당당히 인정받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박준규의 꿈은 배우가 아니었다. 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영화배우 박노식이 아버지였기에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바쁘기만 했다. 일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박준규는 ‘나는 절대 배우는 안 하리라’ 마음먹었다. 

“제 생일날 옛날 명동에 있었던 코스모스 백화점에 아버지가 나 선물 사주러 가셨는데 아줌마들 등쌀에 선물 못 사갖고 나왔어요. 아줌마들이 계속 아버지한테 사인 해 달라 그러고 막 와서 만지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끝내 못 사갖고 나와 갖고 집에도 잘 안 계시고. 어린 나이 때는 저는 영화배우 안 한다 그랬죠. 이건 할 일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바쁘고 이렇게 힘들어갖고 어떻게 해 그래서 싫어했었는데 때가 되니까 저도 하게 되더라고요.” - 박준규 인터뷰 中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끼와 재능을 숨길 수 없던 박준규.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스물다섯의 늦은 나이에 배우가 되었다. 1988년 영화 ‘카멜레온의 시’로 데뷔한 박준규는 영화가 개봉하면 아버지처럼 스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고 박준규의 배우 인생은 힘겨운 길을 걷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이민 생활 당시, 아버지 박노식은 사업에 실패하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와 재기를 꿈꿨지만 이후 병을 얻게 됐고, 아들 박준규에게 남겨준 재산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네가 아버지 돈 다 썼지 이래요. 저한테 근데 굉장히 잘못 알고 계신 거고 아버지가 영화판에 계시면서 검열도 너무 심했고 이민을 가자고 하셨는데 사업에 실패하신 거죠. 그렇게 사시다가 병 앓으시고 입원비 하시고 돈 땡전 한 품 안 주시고 혼자 다 쓰시고 가셨어 멋쟁이지 한마디로” - 박준규 인터뷰 中  

“반지하 집 얻을 돈 밖에 안 남더라고요. 한번은 한여름인데 새벽에 막 무슨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밖에 나가봤더니 발목 정도가 잠길 정도로 마루에 물이 찬 거예요.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남편을 보니까 제가 울면 안 되겠더라고요. 내가 여기서 울면 이 사람이 정말 속상하겠구나.” - 아내 진송아 인터뷰 中  

무명시절 반지하 생활을 하면서 박준규는 작품을 가리지 않고 연기했다. 그가 쉬지 않고 일해 온 이유는 바로 가족들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7년이 지난 2002년. 박준규는 자신의 배우 인생을 바꿔줄 작품을 만난다. 바로 드라마 ‘야인시대’이다. 인생 캐릭터 ‘쌍칼’을 만나 남우조연상이란 생애 첫 연기상의 쾌거를 이룬다. 당시, 반지하에서 남편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그의 아내. 그때부터 가족의 고생도 끝이 났다. 

유산 대신 재능을 물려주고 떠난 아버지 박노식을 대신해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쉴 틈 없이 연기 인생을 달려온 박준규의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보자. 

■ 아버지가 되고 나서 아버지를 이해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박준규는 두 아들에게만큼은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 쉬는 날이면 함께 목욕탕을 가는 것도, 자기 전 술 한잔 같이하며 연애상담을 해주는 것도, 틈틈이 삼부자가 소소한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두 아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해주고픈 바람 때문이다. 

“제가 아버지 임종을 못 봤어요. 부산에서 아가씨와 건달들 공연이 있었는데 공연 가기 전에 아버지한테 한번 여쭤봤습니다. 병상에 누워계시는데 상태가 좀 안 좋으신 거 같다는 얘기를 들어서 아버지한테 아버지 이번에 부산 공연인데 안가고 아버지 옆을 지키겠습니다. 그랬더니 욕을 먹었어요. 이놈아 배우가 무대에 가 있어야지 내 옆에서 네가 있다고 내가 낫는 것도 아니고 공연하러 가라고.” - 박준규 인터뷰 中  

임종 때까지도 아들을 무대로 내몰았던 아버지 박노식. 배우의 인생이 쉽지 않은 길임을 아들 박준규에게 아버지 박노식은 그렇게 알려준 것이다. 박준규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그의 두 아들도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랬듯 박준규도 두 아들에게 똑같은 가르침을 주려 한다. 스스로 배우의 길은 개척해가길 바라되 아버지로서는 두 아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은 박준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박준규의 이야기는 일요일 오전 8시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