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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여권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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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여권시대
  • 김덕권
  • 승인 2021.09.2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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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권신장으로 여권시대(女權時代)가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이제는 오히려 남성이 움츠려들고 아내들의 권력이 세져 당당하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이런 여권시대를 만들기 위해 1980년대만 해도 여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여성들의 투쟁이 생각납니다. 1979년 8월 11일, 서울 YH무역(가발‧봉제업)의 여성 노동자 187명은 회사 측의 일방적인 폐업조치와 해고에 맞서, 야당인 신민당 당사(4층)로 장소를 옮겨 농성 중이었습니다.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동료들이 짓밟히고, 짐짝처럼 끌려 나갈 때 YH노조의 조직차장이었던 김경숙은 목숨을 잃습니다.

왼쪽 동맥이 끊기고 타박상을 입은 채 당사 뒤편 지하실 입구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하고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지요. 이 사건은 두 달여 뒤인 10월 4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 10월 16일∽20일의 부마항쟁, 10월 26일 박 대통령 시해사건(10‧26사태)으로 숨 가쁘게 이어지면서 18년 박정희 독재체제 종식의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을지로 중소기업빌딩 앞에 <企業人天下之大本>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던 우리 사회가 얼마나 혁명적인 변천을 했는지 알리는 현장입니다. ‘기업인’ 이란 명패 앞에 ‘사농공상’의 신분 서열도 완전히 뒤집혔지요. 이렇게 기업이 ‘천하지 대본’이 되기까지, 지난 세월 속에는 잊혀진 세 여자 ‘순이’의 이름이 있습니다.

당시 식모, 여공, 버스안내양이 ‘삼순이’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이 겪은 고난은 우리 현대사 이면에 설움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반세기만에 나라가 기적 같은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함께 땀 흘리고도 우리들 기억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여성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식순이, 공순이, 차순이라고 불렀었지요.

이름에 뒤에 붙인 ‘착할 순(順)‘자처럼 시키는 일에 순종하고 늘 조연의 삶을 살면서 자신을 낮춰보는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저널리스트 정찬일 씨가 펴낸 ‘삼순이’는 그 시대를 다시 재현한 묵직한 서술 더미입니다.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삼순이의 한 시대를 복원했습니다.

우리가 겪어온 이야기인데도 곳곳에서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과 마주 칩니다. 그 시절의 풍경이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며, 아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식모→식순이→가정부→가사도우미로의 변천은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식모란 이름에서 비롯됩니다.

일본 가정은 한국 가정보다 임금이 두 배 많은 데다 인간적인 대우도 해주어 여성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되었었지요. 그런데 그 식모 일자리가 위기를 맞은 것은 해방이 되면서 였고, 6.25로 전쟁고아가 쏟아진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먹여주고 재워만 달라는 시절엔 판자촌 셋방을 살아도 식모를 둘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식모는 시골에서 상경한 소녀의 첫 직장입니다. 이를 발판으로 공장, 버스회사, 미용실 등으로 지경을 넓혔지요. 이중에도 버스 차장은 여성 일자리가 귀한 때에 임금도 상대적으로 높아 일등 신붓감으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하루 18시간을 콩나물버스에 시달리고 잠은 4시간밖에 못자는 중 노동자였지요. 각성제를 입에 달고 살았고, 너무 오래 서 있다 보니 이런저런 부인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승객과 요금 시비를 벌이다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달리는 버스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는 사고가 빈번한 직업이어서 마음 숙연해지는 사연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10대 소녀가 많았던 안내양의 급여 사용처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일러줍니다. 수입의 65%가 부모 생활비와 형제 학비로 쓰면서도, 자신이 쓴 용돈으로는 3% 남짓을 지출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동생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며 “이 순간처럼 땀 흘린 보람을 느낀 적은 없다“고 말했던 그들입니다. 못 배운 한을 풀려는 노력도 눈물겨웠습니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쉴 때를 이용해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는 학구파가 많아 해마다 검정고시 합격자 수로 경쟁하는 버스 회사의 새 풍속을 만들기도 했지요. 임금이 준다고 정부의 격일제 근무를 반대했던 그녀들입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공부도하고 집안을 살렸습니다.

70년대 들어 각광을 받은 직장은 공단입니다. 버스회사에서 이직한 여성들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급여와 근무 여건이 좋고 산업체 부설학교가 세워진 것도 매력적이었습니다. 1967년 구로공단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이 어린 여공에게 소원을 물었을 때 “또래처럼 교복 한번 입어보고 싶어요.” 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감정에 북받친 박 대통령이 소녀들 앞에서 지시합니다. “법을 뜯어고치든, 절차를 바꾸든 공단 아이들에게 똑같은 배움의 기회를 주라”고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산업체 부설학교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위풍도 당당한 여권시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들의 근면과 흘린 눈물을 빼고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여권이 너무 지나쳐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남성들의 권위는 누가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9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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