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억울함' 안고 살았던 강기훈씨의 인생 누가 책임지나, "잠 안 재우기 담당하셨던 검사 양반"

[ 고승은 기자 ] = "1991년 6월 24일 검찰에 출두한 첫날부터 서울지검 11층 특별조사실에서 10여 명의 검사와 수사관으로부터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가 시작되면 이틀씩 잠을 안 재우고 진술을 강요하고, 의자에 앉지도 못하게 하고 선 자세로 조사를 받기도 했고, 검사나 수사관은 모욕적인 말과 행동, 때로는 손찌검까지 했으며, 그 과정에서 협박과 회유를 하기도 했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저의 가족과 여자 친구를 거론하면서 구속 운운할 때였다.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물리력은 참을 수 있었지만, 나로 인해서 받은 가족들의 상처는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멍에였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강기훈 씨가 지난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문제의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군사정권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 정권 하에서 일어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민주화 세력에게도 치명상을 입힌 현대사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당시 강기훈 씨를 향해 가혹 수사를 진행했던 검사 중 한 명이 아들의 '50억 퇴직금' 논란으로 이슈의 중심에 선 곽상도 의원이다. 지난 2013년 2월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곽상도 의원이 내정되자 강기훈 씨는 SNS에 “1991년 6월 서울지방검찰청 11층 특별조사실에서 잠 안재우기를 담당하셨던 검사 양반, 이렇게 나타나셨다”라고 직격했다. 

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강기훈 씨,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지 24년만인 지난 2015년 5월에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강기훈 씨,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지 24년만인 지난 2015년 5월에야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강기훈씨와 함께 조사를 받았던 전민련 관계자 임모씨도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 당시 수갑을 채운 채 잠을 안 재우는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당시 곽상도 의원이 수사팀 일원이라고 설명했다. 

곽상도 의원은 언론 인터뷰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느냐, 지금 와서 유서대필이 아니라는 것은 난센스 아니냐" "매일 매일 수사과정과 피의자 측의 반박이 언론에 그대로 보도되고 있었기 때문에 수사 기관에서 피의자를 고문하고 협박할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반발한 바 있다. 

강기훈 씨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이의제기를 수없이 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를 묵살하고 기소를 강행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 것이다. 강기훈 씨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뒤에도, 자신에게 씌워진 '주홍글씨' 때문에 생활고와 억울함을 안고 살아야했다. 또 오랜 세월 '간암'으로 투병 중에 있다. 

지금도 검찰의 권한이 굉장히 막강한데, 사회 전체가 군사독재식 사고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30년전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막강했다. 당시엔 인권이라는 것이 사회에 자리잡혀 있지 않은 시기로서 군대나 학교에선 가혹행위가 수없이 일어났고, 직장 등 많은 조직들도 '군대'식으로 돌아갔었다. 당시에도 안기부(현 국정원)의 힘은 막강했고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은 일상으로 일어나던 일이다. 곽상도 의원의 해명에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이같은 책임회피로 일관하며 사과를 거부한 곽상도 의원의 태도에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에서 곽상도 의원을 향해 이처럼 직격하기도 했었다.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받은 이해할 수 없는 '50억원'이라는 특혜에 대해 재조명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다. 곽상도 의원이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에 내정되자 강기훈 씨는 SNS에 “1991년 6월 서울지방검찰청 11층 특별조사실에서 잠 안 재우기를 담당하셨던 검사 양반, 이렇게 나타나셨다”라고 직격했다. 사진=연합뉴스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받은 이해할 수 없는 '50억원'이라는 특혜에 대해 재조명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다. 곽상도 의원이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에 내정되자 강기훈 씨는 SNS에 “1991년 6월 서울지방검찰청 11층 특별조사실에서 잠 안 재우기를 담당하셨던 검사 양반, 이렇게 나타나셨다”라고 직격했다. 사진=연합뉴스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막내 검사라. 책임 없다.’ 변명하다가 강기훈씨가 잠 안재운 고문의 당사자로 곽의원을 특정해 지목하자, 당시에는 잠 안 재우고 수사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둥 뻔뻔한 궤변으로 일관하던 그다. 그 버릇 여전하다"

이재정 의원은 "90년생 아들은, 대리직급 50억 퇴직금에 '오징어게임의 말에 불과'하다던 궤변으로 청년세대를 분노케 하더니 급하게 탈당하며 내빼던 그가 연이어 뱉어내는 말들이 적반하장, 가관"이라며 "김명수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유서대필 사건을 언급한 나에게 그가 청문회 공식회의석상에서 한 맥락없는 모욕, 국회회의록에도 공식적으로 기재된 그의 저급했던 말을 돌려준다"고 했다. 그는 '#무식한게_자랑아냐 #철좀들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은 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곽상도 의원의 의원직 제명 및 즉각수사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함세웅 신부와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전 국회의원, 전 동아일보 해직기자), 신계륜 전 의원, 김상근 목사 등이 참여했다. 

시민모임은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지난 시기 곽상도가 정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출세가도를 달리며 국회의원에 공천, 당선되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여러 차례 호소한 바 있다. 그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제 심판의 칼끝은 곽상도를 향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시민모임은 "곽상도는 한 인간의 소중한 삶을 무참히 짓밟고도 자신은 그 공으로 출세가도를 달렸으며, 강기훈 씨의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죄는 커녕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강변했고, 이번 퇴직금 논란에도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정당한 댓가를 수령한 것이라고 범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시민모임은 "더 이상 이런 파렴치한을 국회의원으로 앉혀 놓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할 수는 없다"며 "곽상도를 공천한 국민의힘을 비롯한 국회는 당장 곽상도를 의원직에서 제명, 사퇴시켜야 한다. 공수처, 검찰, 경찰 등은 곽상도를 엄정 수사하여 범죄행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곽상도 의원을 향해 지금이라도 강기훈씨에게 사죄하고, 평생을 자신의 죄업을 속죄하며 살아가라고 일갈했다. 

화천대유 1호 사원으로 근무한 곽상도 의원의 아들의 '50억 퇴직금'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청년들도 거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대구경북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학생들이 지난달 29일 대구 남구 대명동 곽상도 의원 사무실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곽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화천대유 1호 사원으로 근무한 곽상도 의원의 아들의 '50억 퇴직금'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청년들도 거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대구경북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학생들이 지난달 29일 대구 남구 대명동 곽상도 의원 사무실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곽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받은 이해할 수 없는 '50억원'이라는 특혜에 대해 이처럼 재조명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다. 실제 '유서대필 조작사건' 수사에 관여한 인사들 대부분은 이후에 탄탄대로를 걸었고 각종 요직을 차지했다. 곽상도 의원도 검사를 퇴임한 뒤, 청와대 민정수석과 국민의힘 '절대 텃밭'에서 재선 국회의원이 되는 등 지금껏 탄탄대로를 걸었다. 

당시 각종 정권의 최대 비리사건으로 불린 '수서지구 택지분양' 비리 사건을 비롯해 부동산 폭등-물가 급등 등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던 노태우 정권이 국면을 전환하는 데 당시 수사라인이 큰 기여를 했던 것은 분명하다. 

문제의 50억은 곽상도 의원에게 주어진 소위 대가성 '뇌물'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곽상도 의원은 "그런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 사람은 이재명 경기지사"라고 강변했다. 이에 이재명 지사는 "이러다 곽상도 의원이 ‘50억 받은 사람은 내 아들 아닌 이재명 아들’이라고 할 것 같다"며 되받았다. 

김기춘·정구영·강신욱·남기춘·조선일보 등, 그 누구도 지금까지 '사과'하지 않는다

문제의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란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것에 항의해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가 분신했다.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은 "우리 사회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선동했으며, 검찰은 그 '어둠의 세력'으로 강기훈 씨를 지목한 것이다. 

당시 검찰은 "김기설씨 필적이 유서와 다르다"며 당시 전민련 총무국장인 강기훈씨를 대필자로 지목했다. 강씨는 억울하다며 "대필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당시 "유서의 필체와 강씨의 필체가 일치한다"는 감정결과를 발표하며 강씨를 옮아맸다. 또 당시 검찰발 기사를 내보내며 '유서대필'을 기정사실화, 강기훈 씨를 집중공격했던 대표적 매체는 역시 '조선일보'였다. 

이듬해 초 국과수 필적 감정 책임자가 뇌물을 받고 허위 감정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공신력이 땅에 떨어졌음에도, 검찰은 뇌물은 받았지만 허위 감정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검찰은 이렇게 강기훈씨를 옮아맸고 92년 7월 자살방조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군사정권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 정권 하에서 일어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민주화 세력에게도 치명상을 입힌 현대사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당시 필적을 적는 강기훈씨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군사정권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 정권 하에서 일어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민주화 세력에게도 치명상을 입힌 현대사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당시 필적을 적는 강기훈씨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강기훈씨에겐 '유서를 대필해 동료의 죽음을 부추긴 자'라는 주홍글씨가 사회적으로 박히면서, 출소 이후에도 생활고와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또 당시 민주화세력에게도 치명상이 입혀졌다. 강기훈 씨는 참여정부 때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재심을 신청할 수 있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지 24년만인 지난 2015년 5월에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또 2년 뒤인 2017년 7월 법원은 강기훈씨에게 국가의 민사 보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국가와 문서감정인의 손해배상 책임만 인정했을 뿐 위법수사를 했던 수사검사 등의 책임은 일절 묻지 않았다. 강기훈씨는 오랜 고통 뒤에야 어렵게 명예를 회복했지만, '간암'으로 투병하는 등 여전히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당시 '유서대필 조작사건' 수사에 관여한 인사들 모두 강기훈 씨에 지금까지도 사과하고 있지 않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으며, 수사 책임자였던 정구영 당시 검찰총장, 강신욱 전 대법관(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 등 누구도 그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당시 엉터리로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수사검사 중 한 명이었던 남기춘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역시 사죄를 거부한 바 있다. 당시 강기훈씨를 앞장서서 공격했던 '조선일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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