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책속의 길 미디어 비평 포토뉴스
미디어법이 젊은이들의 숨통을 조인다
  • 이인희 기자
  • 승인 2018.01.06 11:32
  • 수정 2018.01.06 11:32
  • 댓글 0

[뉴스프리존=이인희기자] 주인공 베르테르는 로테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큰 슬픔에 빠져, 로테와의 추억이 담긴 옷을 입은 채 권총으로 자살한다. 1774년, 독일 작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내용이다. 이 소설은 한 청년의 슬픔을 지극히 세밀히 묘사해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소설이 발표된 이후 유럽의 청년들 사이에서는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이 급증했다. 많은 청년이 베르테르와 같은 옷차림으로 권총을 이용해 자살한 것이다.

자살이 불러일으킨 또 다른 자살

미국의 한 자살 연구학자는 유명인의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 이후, 자살자 수가 급증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이 현상에 대해 ‘베르테르 효과’라 이름 붙였다. 최근에도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 故김종현 씨의 자살 이후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베르테르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났던 때는 2008년 배우 故최진실 씨의 자살 이후다. 최 씨가 자살한 다음 날, 78명이 자살했고, 최 씨가 자살한 그해 10월 이후 두 달 동안 3천81명이 자살했다. 전년도 동일 기간 자살자의 수인 1천807명에 비해 큰 수치였다.

전홍진<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역시 2005~2011년, 7년간의 자살을 조사한 결과, 자살자 중 무려 18%가 유명인의 자살 이후 1개월 이내에 자살했다. 유명인 자살 전 1개월간 하루평균 자살자가 36.2명이었던 것에 비교해 유명인 자살 후 1개월간 하루평균 자살자는 45.5명으로 9.3명(약 25%)이나 증가한 것이다. 전 의사에 의하면 정치인, 운동선수 등의 자살 후엔 베르테르 효과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가수나 배우의 자살 후에는 크게 나타난다. 전 의사는 “정치인, 운동선수와 달리 연예인은 노래와 드라마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기에 그들의 자살 이후, 일반 대중들의 심리적인 동요가 더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라 말했다.

베르테르 효과의 표적은 젊은 층

이러한 베르테르 효과는 20~30대에서 유독 많이 나타난다. 2011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유명인 자살 보도 전후의 일반인 자살 양상 비교를 위해 최 씨가 자살한 시기의 이전 6개월과 이후 6개월로 나누어 자살시도자의 수를 연령별로 조사했다. 대부분의 연령층에서 오히려 그 수가 줄었지만 20대의 경우 23.4%에서 33.5%로, 30대의 경우 17.7%에서 20.5%로 증가했다. 두 연령층에서만 증가했으며, 특히 20대의 경우에 10%라는 큰 변동 폭을 보였다(그래프1). 전 교수는 “40대를 지나면서 안정적인 심리상태가 형성되는데, 20~30대들은 아직 그러지 못해 충동적인 행동이 잦고 감정의 동요도 쉽게 받는다”고 전했다.

미디어, 모방 자살의 또 다른 원인

현대 사회에서는 베르테르 효과를 연구하는 양상이 바뀌고 있다. 모방 자살을 하는 당사자의 심리뿐만 아니라 이를 부추기는 미디어의 역할에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오스트리아의 사례 이후시작됐다. 8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지하철 자살이 급증했지만, 비엔나 자살 예방센터에서 절대 자살을 보도하지 말자는 방침을 세웠고 대부분의 언론사가 받아들였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자살률을 크게 낮추는데 성공했다. 이에 자살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자살을 막는 효과를 일컫는 ‘파파게노 효과’란 단어도 등장했다. 이는 오스트리아 음악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주인공 파파게노가 연인을 잃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요정들의 희망찬 노래를 듣고 자살을 포기한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건복지부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는 2004년부터 언론의 자살 보도 방식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언론의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반포했다.

언론 변화를 위해, 사회 변화가 먼저

그러나 이 권고기준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4대 일간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살 행위에 대한 이해나 동정을 표하는 시각을 취한 기사들은 11%, 자살자를 미화한 경우는 21%, 자살 방법과 자살 장소가 소개된 기사는 각각 66.7%, 67.4%였다(그래프2).

현재 권고안만으로 베르테르 효과를 막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전 의사는 “다양한 미디어의 모든 특성을 고려한 강제적 법안을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미디어의 자율적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경우, 80년대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6년, 국가주도로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결과, 자살률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핀란드는 높은 자살률 문제를 전국민들이 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미디어 역시 ‘자살’이란 단어 자체를 금기시한다. ‘자살했다’ 대신 ‘사망했다’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강제적 규정 없이도 미디어들이 자살 보도 자제를 할 수 있는 것은 자살률을 낮추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먼저 형성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착된다면 미디어들이 스스로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지키지 않을까.

제2의 파파게노를 기다리며

많은 미디어들이 유명인의 자살을 자극적 방식으로 보도한다. 이런 보도 방식은 대중들의 인식과 감정에 영향을 주며 또 다른 자살을 유도한다. 따라서 언론의 신중한 보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무시한 채 강제적 법안을 만드는 것보다 베르테르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와 대중, 언론이 함께 노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자극적 보도가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대신문이 될 것을 다짐하며, 새해에는 OECD 자살률 1위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외치는 제2의 파파게노가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인희 기자  newsfreezone@naver.com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인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