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민의 힘 대선 경선에 때 아닌 ‘임금 왕(王)’자 논란이 불거져 대선 판을 완전히 희화화(戲畫化) 시키고 있습니다. 그 논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지요. 지난 1일 열린 국민의 힘 대선 경선 5차 방송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쓰고 나온 것입니다.
이것을 본 국민의 힘 대선 주자들도 벌떼처럼 일어나 성토했지요.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 북에서 “가기 싫은 곳을 가거나 말 빨이 안될 때, 왼쪽 손바닥에 ‘왕자(王字)’를 새기고 가면 극복이 된다는 무속 신앙이 있다고 한다. 무슨 대선이 무속 대선으로 가고 있나?” “일일 1 망언으로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더니 다음 토론 때는 부적을 차고 나오시겠는가. 안타깝다.”고 비판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윤 전 총장을 향해 “과거 오방색 타령을 하던 최순실 같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유층이나 상류층 가정에서 무당에 의존해 온 전통은 낯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최순실에게 우주의 기운을 받아가며 대통령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에 거리낌 없이 그걸 TV에서 보여주는 것이 미신의 효험성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 ‘임금 王’ 자를 써 넣었다고 왕이 되는 것인가요?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천하의 왕’이 되는 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민동락’이란 임금이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입니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편에 맹자가 말한 것이 실려 있습니다. ‘음악은 즐거움을 주지만 이는 반드시 백성과 함께해야만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宣王)에게 말한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함께 즐기신다면 천하의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今王與百姓同樂則王矣’가 원문이지요. 이 구절이 실려 있는 <양혜왕 하> 편은 맹자가 제나라 선왕의 신하 장포(莊暴)와 나눈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맹자는 장포로부터 “우리 왕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것이 정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몰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며칠 후, 왕을 만난 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왕께서 음악을 좋아한다면 제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왕은 당황해 “과인은 옛 선왕(先王)의 음악이 아니라 단지 세속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자신은 세속의 음악을 좋아할 뿐인데 그래도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이지요. 여기서 옛 선왕의 음악이란 순(舜)임금 시대의 것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클래식과 같은 고전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임금 시대의 음악은 태평성대에 만들어진 만큼 내용이 선하고 곡조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제나라 선왕이 좋아했던 세속적인 음악이란 내용의 선함보다는 귀에 달고 감성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유행가와 같은 음악일 것입니다. 공자는 순임금 시대의 음악을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에 취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겉치레와 형식에 치우친 후대의 음악보다는 비록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진실함이 담겨 있는 옛 음악이 아름답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맹자는 음악의 종류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백성과 함께 즐기느냐가 핵심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왕이 백성과 함께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백성이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도록 풍요로운 삶의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음악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먹고사는 데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맹자는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먼저 왕이 백성과 함께 즐기지 못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왕께서 음악 연주를 하신다고 합시다. 그러면 백성이 왕의 악기 소리를 듣고는 모두 머리를 부여잡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우리 왕이 음악 연주를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어찌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아버지와 아들, 형제와 처자식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다니!’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즐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백성과 함께 즐길 때의 반응입니다. “백성이 왕의 악기 소리를 듣고는 모두 희색을 띠고 기뻐하며 ‘우리 왕께서 편찮으신 데가 없으시구나. 어찌 저리 아름답게 음악을 연주하실 수 있을까?’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똑같은 음악 연주를 듣고도 백성의 반응은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왕이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와 왕이 백성을 팽개쳐두고 혼자만 즐길 때의 마음이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맹자는 이렇게 결론 지었습니다.
“군주가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백성도 자기 군주가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할 것입니다. 군주가 백성이 근심하는 것을 근심한다면, 백성도 자기 군주가 근심하는 것을 근심할 것입니다. 천하의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천하의 사람들과 함께 근심하면서도 천하의 왕 노릇 하지 못할 자는 없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국민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국민의 근심을 자기 근심으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여민동락 하지 못하고 그냥 손바닥에 ‘임금 왕’ 장를 써 넣는다고 대통령이 될까요? 차라리 그 시간에 ‘여민동락하며 천하의 왕이 되는 지혜’를 연마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10월 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