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유승민은 단기결전 전략을 과감하게 포기하라

김세연의 선두타자 초구 홈런

“이렇게 좋은 미래지향적 정책 청사진을!”

김세연 전 의원이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제시된 네 가지 핵심적 정책화두를 살펴본 필자는 기대감 섞인 감탄을 속으로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김세연은 ①기후변화 위기 대응 ②우주시대 개막 대비 ③메타버스 산업 선도 ④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차기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반드시 성과적으로 해결해야만 할 절체절명의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로 열거하였다.

필자는 올해 초 출간된 우석훈 성결대 교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세연 국민의힘 전 의원 3인의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도서출판 오픈하우스)」의 제작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는 여태껏 유복한 금수저 정치인으로만 알아온 김세연이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지구촌 차원의 미래와 인류의 진로에 관해 엄청나게 진지하고 심층적인 고민을 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놀랐었다. 당시에 감지한 김세연의 깊고 치열한 문제의식이 그의 서울신문 기고문에 농축적으로 밀도 있게 담겨 있었다.

유승민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주택청약통장’은 아느냐고 물으니 "집이 없어서 만들지 못했다"라고 엉뚱한 답변해 논란을 불렀다. (유튜브 유승민TV 캡처)
유승민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주택청약통장’은 아느냐고 물으니 "집이 없어서 만들지 못했다"라고 엉뚱한 답변해 논란을 불렀다. (유튜브 유승민TV 캡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유승민 전 의원을 박근혜의 남자의 대열에서 ‘공화국의 수호자’ 반열로 단박에 격상시키는 계기가 된 유명한 말이다. 이 당연한 명제조차 통 크게 용인하지 못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승민 찍어내기를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탄핵에 뒤이어 구속까지 당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유승민은 편협하고 망국적인 진영논리의 산물인 간교하고 잔인한 배신자 프레임을 단호히 배격한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대중에게 각인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가 대구경북에서 배반자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미래의 주역인 수도권 2030 청년세대의 유승민에 대한 지지와 믿음은 더더욱 넓고 두터워졌다. 그의 딸인 미모의 여대생 유담 씨의 선풍적 인기는 유승민의 몸값 상승에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그러므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무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기 직전까지만 하여도 유승민 전 의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란히 3강 구도를 형성을 것이란 전망과 예측은 별다른 무리가 없어 보였다. 고발사주라는 초대형 악재가 터지기 전까지는….

고발사주는 윤석열 전 총장이 검찰조직의 총수로 재임하던 시절에 야당 정치인에게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을 고발하도록 부추겼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일은 윤 전 총장이 고발을 사주했다고 주장하는 조성은 씨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느닷없이 싸움에 끌어들이면서 실체가 묘연한 오리무중의 사건이 돼버렸다. 검찰과 공수처가 설령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고 한들 문재인 정권이 국가 사정기관을 확고하게 장악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국민들은 정부 측 발표를 전혀 신뢰하지 않을 게 확실하다. 따라서 해당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라

문제는 조성은 씨가 고발사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목한 김웅 의원이 하필이면 유승민 전 의원 경선본부의 공식 대변인직을 맡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성은의 주장이 나오자마자 김웅은 며칠 동안 연락두절 상태가 되었고, 그의 급작스러운 잠적은 유승민 선거캠프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다시피 했다. 조성은 씨는 윤석열을 겨냥해 핵폭탄을 투하했는데, 엉뚱하게도 유승민이 폭심(Ground Zero)이 되고 만 모양새였다.

필자는 저 혼자 살겠다고 유승민 진영을 회복불능 지경으로 초토화시킨 김웅의 무책임한 행태를 언젠가는 추궁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조성은의 주장대로 고발사주가 맞는지, 아니면 야당의 반박처럼 누군가 그를 꼬드겨 신고에 나서도록 음모를 꾸민 제보사주가 분명한지에 대해서도 나는 솔직히 관심이 없다. 폭로 한 방으로 판을 뒤집고, 물길을 바꾸는 미개한 시대는 이미 지나도 한참 전에 지났기 때문이다.

관건은 유승민 캠프에 합류한 김세연 전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오랜 시간과 막대한 노력을 기울여 야심차게 준비해온 미래비전이 거의 휴지조각이 됐다는 데 있다. 유승민은 대장동 게이트로 만신창이가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가족 문제로 수시로 세간의 구설수에 오르는 윤석열과 달리 깔끔하게 검증 절차를 마쳤다. 그는 홍준표와는 다르게 칙칙하고 구태의연한 꼰대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유승민이 집권하면 박근혜 시대와 문재인 시대를 거치며 거꾸로 돌아간 역사의 시곗바늘이 다시금 앞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발사주 사건이 모든 걸 망쳐놓았다. 그 후과로 말미암아 유승민은 기후변화 대신에 항문침을 거론하고, 메타버스가 아니라 무속인 이름을 읊어대는 네거티브 공세에 열중해야만 하는 옹색한 처지로 내몰렸다.

유승민은 본인을 치타에 비유하고 있다. 치타는 날개가 달리지 않은 짐승들 중에는 가장 빠른 동물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치타는 빨리는 달리되 오래는 달리지 못한다.

유승민은 치타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방식을 본떠 조기에 승부를 내는 단기결전에 전략의 중점을 두었다. 이와 같은 승부수는 더 이상은 구사가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단기결전 전략에 미련을 거두지 못한 까닭에 홍준표에게나 어울림직한 민망하고 말초적인 주제의 얘기가 유승민 입에서 자꾸만 흘러나오는 기현상이 빚어져왔다.

필자는 유승민이 치타에서 낙타로 근본적 방향을 전환하기를 주문하고 싶다. 낙타는 치타에 비하면 매우 굼뜬 동물이다. 그렇지만 낙타는 황량하고 건조한 사막지대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서 횡단하는 발군의 지구력을 갖고 있다. 치타가 지금 여기에서 결판을 내려 한다면, 낙타는 먼 훗날을 내다보며 차분하면서도 착실하게 앞길을 개척한다. 국민의힘에 이준석 대표 체제가 출범하며 유승민은 탄핵의 강을 자연스럽게 건너게 되었다. 한데 탄핵의 강을 건넌 그의 눈앞에 막상 펼쳐진 건 기름진 옥토가 아닌 광막한 사막이었다.

치타처럼 무조건 빠르게만 질주해 사막을 무사히 통과할 수는 없다. 뚝심 강한 낙타같이 느리지만 끈질기게 걸어야만 건조한 모래바다를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유승민의 운명은 기구하게도 이번에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건너야 할 차례이다. 사막 건너편 땅에 당도해야만 그는 자기의 주전공이자 전문분야인 미래를 국민들에게 비로소 제대로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이다.

* 글쓴이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초대편집장,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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