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커튼콜 /(사진=Aejin Kwoun)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커튼콜_(앞줄)러너 영(최인영), 다윈 영(김용한), 니스 영(윤형렬) & 음악감독(김길려)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2018년 초연, 2019년 재연을 거치며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하며 관객들의 사랑과 평단의 호평 릴레이를 받아온 작품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의 세 번째 시즌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3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펼쳐진 이번 작품은 살인사건의 진실 뒤에 감춰진 선과 악의 갈등 그리고 이를 둘러싼 계급과 정의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성장 추리물로 좋고 선한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강한 것만 살아남는 진화의 법칙을 바탕으로 인간이 가진 악의 본질과 그 기원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며 2021년 관객들과 다시 만나 서울예술단만의 성공적 레퍼토리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사진 /(제공=서울예술단)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사진 | 상위 1지구 엘리트 학교 프라임스쿨.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우등생 다윈(김용한)은 열여섯 문앞에서 주변 친구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조금은 진지한 모범생이다. /(제공=서울예술단)

공연은 ‘맨홀’, ‘합체’ 등을 집필한 천재 작가 박지리의 약 856쪽에 달하는 방대한 서사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의 요절로 인해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원작 소설의 매력은 사후 한국출판문화상 수상과 뮤지컬의 제작뿐 아니라 2020년 사계절출판사에서 ‘박지리문학상’을 만들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그의 이름이 더 오래도록 기억되길 소망하고 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사진 | 열여섯 소년들. 제이(윤태호), 니즈(윤형렬), 버즈(금승훈)는 삼총사였다. 어느 날 밤. 제이가 하위지구에서 일어난 '12월 폭동'의 선동대 후디에게 살해되고, 모두의 운명은 뒤바뀐다. /(제공=서울예술단)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사진 | 열여섯 소년들. 버즈(금승훈), 니즈(윤형렬), 제이(윤태호)는 삼총사였다. 어느 날 밤. 제이가 하위지구에서 일어난 '12월 폭동'의 선동대 후디에게 살해되고, 모두의 운명은 뒤바뀐다. /(제공=서울예술단)

초연과 재연에서 멋진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사해 주었던 배우 최우혁, 박은석, 강상준에 이어 이번 세 번째 시즌은 배우 이창섭(그룹 비투비), 김용한, 민우역, 윤형렬 등 가창력과 연기력을 겸비한 실력파 배우들의 참여로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높은 작품 완성도를 이끌어내며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왔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창작진도 주목할 만하다. 극작/작사는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최후진술’, ‘해적’ 등을 집필한 이희준 작가가 입체적인 캐릭터 구축과 은유를 담아낸 서정적인 가사로 극을 써 내려갔다. 작곡은 뮤지컬 ‘엑스칼리버’, ‘팬텀’, ‘빅 피쉬’의 음악 작업에 참여한 뮤지컬 성덕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박천휘 작곡가, 연출은 뮤지컬 ‘레드북’, ‘시티오브엔젤’, 연극 ‘킬미나우’를 만들어낸 오경택 연출이 맡았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사진 | /(제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사진 | 30년 전, 혁명을 이끌었던 어린 러너(이기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삼촌 제이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 조카 루미는 니스의 아들 다윈과 함께 진실을 쪼ㅉ는다. 그리고 제이의 죽음에 근접할수록 어두운 비밀이 드러나고...그리고 또다시 그들의 역사는 뒤엉킨다. /(제공=서울예술단)

‘다윈 영’에 더블캐스팅된 서울예술단 김용한 배우는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변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새로운 연기 변신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초연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서울예술단의 배우 최인형, 송문선, 이기완, 금승훈도 다시 만났다. 몰입력 있는 연기와 풍부한 가창력으로 객석을 압도했던 최인형 배우는 ‘영 가문 상부자’의 뿌리인 ‘러너 영’ 역으로, 혁명을 이끌었지만 순수한 이면을 지닌 소년 대장 ‘어린 러너’ 역에는 초연과 재연 당시 호평을 이어갔던 이기완 배우가, 신분이나 나이 등에 대한 차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해 알리는 '버즈 마샬' 역에는 서울예술단에서 감각적인 안무로 시선을 끌어안는 금승훈 배우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또한, 지난 7월 ‘윤동주, 달을 쏘다’의 백인준 역을 맡아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신예 이동규 배우가 자유를 갈망하는 프라임 보이 ‘레오 마샬’역을 맡아 스토리의 흐름에 탄탄한 힘을 더해주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커튼콜 /(사진=Aejin Kwoun)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커튼콜_(앞줄)로이드검사/대대장(이종한), 어린 러너(이기완), 버즈 마샬(금승훈), 레오 마샬(이동규), 루미 헌터(송문선), 제이 헌터(윤태호), 조이 헌터(김백현), 어린 조이(김나연), 해리 헌터(이지수)  /(사진=Aejin Kwoun)

대극장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성장 추리물이자 한국 창작극으로 재공연과 음원발매 등에 대한 문의와 요청이 쇄도했던 이번 공연은 오히려 초연과 재연의 호평에 새로운 도전을 멈추기보다는 안정적으로 극을 다지는 데 몰두했던 듯하다. 하지만 이는 신선했던 초연과 새롭고 과감한 시도가 가득했던 재연 이후 이번 삼연에서도 당연하게 새로운 시도가 더해질 것이라 여겼던 편견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서울예술단만의 독특한 가무스타일이 기존의 상업 뮤지컬 스타일로 희석되는 듯함은 너무나 안타깝게 여겨질 뿐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커튼콜 /(사진=Aejin Kwoun)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커튼콜 /(사진=Aejin Kwoun)

살인, 스릴러, 추리, 계급사회로 나눠진 독특한 세계관과 스타일을 무대 문법에 걸맞은 27개의 다채로운 넘버와 입체적이고 다변적인 캐릭터로 구축한 무대화 작업으로 “기존 대극장 공연에서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지금, 정형화된 문법에서 쉬이 벗어날 수 없는 해외의 라이선스뮤지컬 작품과 달리 창작뮤지컬은 동시대성에 맞춰 변화가 용이할 것이다. 서울예술단만의 색깔 있는 뮤지컬이 계속해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나가기를 다시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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