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대통령 되려면 오만한 서울대 근성을 버려야

원희룡, 실력인가 운발인가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의 기세가 무섭다. 그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나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일대일 가상 대결에서 승리한다는 몇몇 여론조사 결과까지 발표된 터이다.

원희룡은 당초에는 승산 낮은 약체 후보로 꼽혔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전의 준결승 진출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유력한 4강 후보자였다. 그렇지만 최재형은 정치 초년생으로서의 미숙함을 잇달아 노출한 탓에, 황교안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해야 마땅할 태극기부대에 의존한 까닭에 8강에 만족해야만 했다.

원희룡이 대입 학력고사 전체 수석이었음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화가 되었다. 그는 한나라당 시절에는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정병국 전 의원 등과 함께 남원정 트리오의 일원으로 불리며 당내 소장개혁파로 활동하면서 이름값을 높였다.

보수진영이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차례로 거치며 개혁보수의 길이 아닌 꼴통보수의 길로 폭주하면서 원희룡의 존재감은 대중의 기억에서 차츰차츰 희미해져갔다. 그는 마지막 승부수로 민선 제주도지사가 되는 자발적 하방을 선택했으나, 서울로 전해지는 제주도 관련 소식은 거의 모두가 우울한 보도들 일색었다. 원희룡은 이른바 시골 사또로 그의 정치 경력을 쓸쓸히 마감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13일 오후 KBS 제주방송총국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자 제주 토론회 시작 전 후보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원희룡, 유승민, 홍준표, 윤석열 후보. 2021.10.13 [제주도사진기자회]
13일 오후 KBS 제주방송총국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자 제주 토론회 시작 전 후보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원희룡, 유승민, 홍준표, 윤석열 후보. 2021.10.13 [제주도사진기자회]

운명의 반전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나타나곤 한다. 원희룡이 대권도전을 선언하자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치생명 연장을 도모하려는 얄팍한 꼼수 정도로 해석해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전쟁이든 정치든 늘 상대적이기 마련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는 독일군 전차의 밥이었던 미국의 셔먼 탱크는 태평양 지역의 전장에서는 변변한 대전차 무기를 갖추지 못한 일본군을 만만한 먹잇감으로 삼아 무시무시한 밀림의 강철 괴수로 돌변했다. 일본군 대본영이 함선 건조와 항공기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느라 현대적 전차전의 준비에 터무니없이 소홀했던 덕분이었다.

원희룡의 상승세를 이재명의 침체와 부진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게으른 토끼가 있기에 부지런한 거북이가 빛나듯, 이재명과의 뚜렷한 대비효과가 없었으면 원희룡은 있으나 마나한 식물 대선주자였을 것이다.

원희룡이 이재명을 상대로 신나게 만끽하는 중인 최고의 비교우위는 그가 국민의 인식에서 이재명보다 압도적으로 젊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실제로는 1964년생 동갑내기다. 생일은 원희룡 전 지사가 2월로 12월생인 이재명 지사보다도 외려 10개월이 빠르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늙어 보이고 원희룡은 젊게 여겨지는 현상에는 그럴만한 맥락과 사정이 개입돼 있다. 이재명 지사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염두에 두고서 선거 전략을 수립했고, 따라서 경륜 있는 인물의 분위기를 풍기려고 시종일관 노력해왔다. 유권자들에게 원숙한 인상을 주는 일차적 방법은 머리를 의도적으로 백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다. 반면에 원희룡은 어떻게든 어려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그는 두발 염색과 머리카락 파마는 기본이었고, 심지어 얼굴 일부에 칼을 대는 성형수술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대장동이 원희룡을 대장주로 만들다

젊게 보이려는 발버둥이 인시에 해당했다면, 성남시 대장동에서 불거진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는 참담한 부동산 게이트는 원희룡에게는 때 맞춰 찾아온 천시와 같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였다.

그는 기존 정치인들과 기성 언론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난해한 접근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대장동 사건의 핵심을 평범한 일반 국민의 눈높이 수준에서 이해하기 쉽게끔 간단명료하게 정리ㆍ요약한 유튜브 방송을 신속하게 띄움으로써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김만배 전 기자와 남욱 변호사, 그리고 아직은 베일에 휩싸인 ‘그분’이 대장동에서 천문학적 돈을 벌어갔다면, 대장동 일타 강사를 자처하는 원희룡은 억만금을 주고도 사기 어렵다는 대중의 관심과 인민의 민심을 자신의 수중에 두둑이 챙겼다.

필자는 원희룡의 기적적 부활과 놀라운 약진에는 두 가지 요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첫째는 우연히 습득한 요소이다. 그는 제주도지사였다. 제주도는 망국적 지역구도에서 헤어날 기미가 없는 영남이나 호남과는 다르다. 맹목적 진영논리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울과 비슷한 정치적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로 인해 유연하고 창의적 시도를 정치현장에서 역풍과 반발에 대한 부담 없이 실행에 옮길 수가 있다. 원희룡이 이를테면 대구시장이나 전남지사였다면 경쾌하고 발랄한 행보를 밟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는 주체적으로 창출해낸 요소이다. 원희룡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젊은 남성들 위주로 선거조직을 꾸렸다. 내년 3월에 치러질 예정인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어느 후보자도 젊은 여성층의 지지를 싹쓸이하지 못할 게 확실시된다. 대신에 젊은 남성들 표는 대량으로 득표할 수 있다.

원희룡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과 신경전을 예상 밖으로 조기에 수습해 2030 세대 남성들의 공적이 될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그는 유튜브 채널 「크로커다일 남자훈련소」의 제작팀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일에도 성공했다. 필자는 해당 방송의 주장과 논조에 크게 공감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내용에 대한 찬반을 떠나 기획의 참신함과 발상의 파격성은 높이 평가하는 쪽이다. 고색창연하고 퀴퀴하기 짝이 없는 남한 주류 진보세력의 양대 취약점인 창의성 결핍과 사고의 천편일률성에 원희룡 캠프는 제대로 치명적 일격을 가한 셈이다.

한국사회에서 입시와 부동산 문제는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산불처럼 번지는 민감한 주제들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몰락에는 그와 그의 가족이 입시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의혹이 결정타를 날렸다. 그날그날의 기지와 하루하루의 이벤트로 순간순간은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장동 게이트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발목을 한동안 붙잡을 것이다.

원희룡은 누리꾼들이 그를 ‘귤재앙’이라고 일제히 야유하자 스스로를 그와 같은 별명으로 낙인찍으며 비난을 찬사로 여유 있게 받아넘겼다. 그는 서울대학교 졸업생들의 고질병 중 고질병일 남의 말 죽어라 듣지 않는 불통 습성을 현재까지는 나름 잘 다스리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가 더욱 유리한 상황에 올라설 경우 서울대 출신 정치인들의 오랜 지병인 오만하고도 도도한 엘리트주의가 재발할 가능성은 물론 언제든지 상존한다.

더욱이 원희룡의 괄목상대의 일등공신일 이재명 지사의 신상과 거취에 중대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개연성 역시 전적으로 배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허나 분명한 사실은 이제는 원희룡조차 이재명에 대한 승리를 공공연히 장담할 지경으로 여론의 지형이 완전히 변모했다는 데 있다. DJ의 명제대로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 글쓴이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초대편집장,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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