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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현묘한 세상을 풀어 놓는 김선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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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현묘한 세상을 풀어 놓는 김선형 작가
푸르스름한 그림....노자 있고(有) 없음(無)의 관계성 형상화
일상의 비일상 공간 '헤테로토피아'로 힐링공간 창출
11월 5일까지 갤러리마리 특별초대전
  • 편완식 기자
  • 승인 2021.10.25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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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소리,무한한 형태에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작업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김선형 작가
무한한 형태에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작업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김선형 작가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현(玄)자는 까만 색깔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어슴푸레하고 어둑한 상태를 나타낸다. 밤과 낮이 교차되는 여명의 풍경 같이 이것과 저것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은 오묘한 상태다. 김선형 작가의 푸르스름한 그림이 그렇다.

“날마다 새로운 뉴스로 가득한 세상, 눈 뜨면 소설 같은 정치적 이슈와 충격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꽃피고 새우는 그림 한 폭이 대체 무슨 소용 있으랴마는 김선형의 그림을 통해 나는 수많은 꿈을 꾸고 대하소설 같은 서사와 연애 시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서정을 느끼고, 때로는 현실보다 깊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과 자답을 하곤 한다.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고, 기쁨과 슬픔의 서정이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한 상상력으로 구상하고 정제된 표현으로 서술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산보처럼 마음가는대로 치닫는 두서없는 것이다.”

(평론가 김백균)

동양화의 기본 재료인 먹과 서양화 재료인 아크릴 물감으로 묘한 색감을 연출하고 있는 김선형 작가의 작품은 노자가 유(有)와 무(無)라는 두 개의 범주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에 대해 노자 도덕경 첫째 장은 이렇게 말한다.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고 /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 같이 있다는 그것은 현묘하다고 한다. / 현묘하고도 현묘하구나 /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常有, 欲以觀其儌.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노자는 자체 존재성을 없으면서도 구체적인 것을 존재하게 하는 묘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무(無)라는 범주를 썼다. 무는 텅비어 없는 것이지만 유가 존재하고 쓰임새가 있도록 하니 전혀 없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릇이 속이 텅비워있어야 제 구실을 하는 이치다. 노자는 유가나 묵가 등이 여백으로 방치한 무를 유와 더불이 중심축으로 받아들였다. 노자에게 무와 유는 본체와 현상,근거와 구체 같은 질적 차등이 없다. 무는 용(用,편리함)이라는 역할을 하고 유는 이(利,편리함이 발휘되도록 허용)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김선형은 정원으로 상징되는 세상을 노자가 무와 유의 관계로 설명하듯이 비형상과 형상의 관계로 그려내고 있다. 형상이 자신만의 실루엣(경계선)에 갇히지 않고 비형상을 지향하고 있다. 세상은 원래 그런 오묘한 세계다.

“세상의 색은 무한하다. 우리가 오방색이라는 흰(白)색, 빨간(赤)색, 파란(靑)색, 노란(黃)색, 검정(黑)색 5가지 틀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더 많은 나머지 무한한 색들은 배제되어 알지 못한다. 소리도 매 한가지다. 이 세계는 무한한 소리로 가득하다. 이런 소리를 궁 상 각 치 우 라는 5음을 통해서 듣는다면 더 많은 무수한 소리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맛도 5미에 한정하면 그렇다. 우리 모두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미각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김선형 작가에게 예술은 그 무한함을 환기시키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밑그림이 없다. 오솔길을 걸으며 한 생각에 잠기면 그것이 밑그림이 된다. 어떤 틀로도 어떤 개념으로도 보는 것들을 가두려 하지 않는 것이다. 길가에 이름 없이 핀 풀 한포기, 길 위를 구르는 돌멩이 하나, 멀리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 소리. 그에게 들리는 보이는 느껴지는 세계는 개념화된 상징화된 세계가 아닌 이름 없는, 이름 모를, 그리고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세계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 대나무와 매화는 특별한 소재다. 자연스레 그 틀에서 자연스럽지 못하다. 틀을 벗고 나아가려는 몸짓은 그의 독백 ‘대나무 푸른 잎 사이 비 젖은 매화가지 검은 선을 긋고... 그 이름 몰라도 좋을 어여쁜 풀들 자유로이 어지럽고’라는 대목에서 읽어낼 수 있다.

“김선형은 옛 선인들이 ‘예장도(曳杖圖)’를 그려 자유를 노래했던 것처럼 이름 없는 정원을 그려 무한의 자유와 이상을 꿈꾼다. 그의 마음엔 무엇보다 큰 ‘자연’이라는 정원이 있다. 그의 자연 정원은 정치도, 현실도, 문화도 심지어는 재료의 제약조차도 상상력을 제한하지 못하는 순수의 공간이다. 그에게 서양화니 동양화니 하는 문화적 논쟁이 의미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마음은 슬픔과 기쁨 같은 감정만 남긴 채 모든 상대적 가치를 떠난 저 방외(方外)에서 노닌다. 이제 그가 그린 자연에 또 다른 서사와 서정을 만들어가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평론가 김백균)

김선형 작가는 결국 노자가 유무관계로 세상을 설명하듯 무를 통해 유를 그리고, 유를 통해 무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감을 흘리거나 어린아이 같은 선 긋기로 놀이 하듯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은 장자의 ‘유’(遊)를 떠올리게 해준다. 그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노닐고자 하는 ‘미적’인 세계다.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의미의 공간인 ‘헤테로토피아’라 할 수 있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hetero(다른, 이질적인)와 topia(공간, 장소)의 합성어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시한 용어다. 일상 속에 있는 비일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부모 몰래 숨고 싶어하는 이층 다락방 같은 공간, 신혼의 달콤한 꿈을 꾸는 여행지, 놀이공원 같은 공간으로 실제화된 유토피아라 할 수 있다.

김선형이 화폭에 펼쳐내는 세계다. 그 속에서 우리는 파라다이스 힐링의 바다에 빠져들게 된다. 11월 5일까지 갤러리마리 특별초대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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