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민간설화나 괴담을 주로 모아놓은 책인 ‘요재지이(聊齋志異)’에 이런 우화가 나온다. 목동 두 명이 깊은 산 속 이리 굴에 들어갔다가 새끼 이리 두 마리를 발견한다. 그들은 각자 한 마리씩 안고 약 열 걸음 떨어진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어미 이리가 돌아와 새끼들을 찾았다. 한 목동이 새끼 이리의 귀를 당기며 장난을 치자 이 새끼가 죽는다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어미는 새끼의 울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황급히 달려가 나무 아래에서 울부짖으며 둥지를 마구 할퀴어댔다. 그런데 다른 나무에 있던 목동이 어미 이리의 울부짖음에 깜짝 놀라 새끼 이리의 다리를 꽉 잡아당겼다. 이 이리 새끼도 죽는다고 울어댔다. 어미 이리는 이번에는 그쪽 나무로 달려갔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저 나무에서 이 나무로‧‧‧‧‧‧, 이렇게 두 나무 사이를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며 울부짖던 어미 이리는 그만 탈진하여 죽고 만다.

‘일능노지’에서 ‘일(逸)‘은 편안하다는 뜻을 가진 ’일(佚)‘과 같다. 이 말의 출전은 『손자병법』 「허실편」이다. “따라서 적이 편안하면 피로하게 만들고, 배부르게 먹고 있으면 굶주리게 만들고, 안정되어 있으면 동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에다 전문적인 주를 단 ’십일가주손자( 十一家注孫子)‘에서 매요신(梅堯臣)은 “적이 편안하게 안정되어 있으면 적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태평천국 신군 운동전(太平天國 新軍 運動戰)’이라는 기록에 보이는 장종우(張宗禹)의 말을 빌리자면 “적에게 싸울 능력이 있으면 맞붙어 싸우지 말고, 오직 피로하게 만들어야 한다.” 안정되어 있을 때는 힘을 비축할 수 있지만, 지치면 사기가 떨어지고 전투력이 감소된다는 사실이 실제 전쟁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 때문에 모종의 방법으로 적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병가에서 보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책략이다.

기원전 512년, 오나라는 초나라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병력 면에서는 초나라가 우세했다. 오나라 장수 오원(伍員)은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돌아가며 초군을 괴롭혔다. 초군은 모든 군사를 다 동원하여 이를 상대했다. 오군은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여 1년 동안 모두 일곱 차례 초군을 괴롭히며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전군을 동원, 총공격을 퍼부어 초를 물리쳤다.

북송 때의 명장 조위(曹瑋)는 군사를 거느리고 당항(黨項)에서 강족과 작전을 펼쳤다. 당항 지역의 강족은 몇 차례 전투에서 좌절당하자 자진 후퇴하여 기회를 엿보려고 했다. 조위는 적과 일대 결전을 벌여 완승을 거두려고 했지만 적군의 추격을 이끌어낼 수가 없었다. 적은 아주 일찌감치 물러나 있는 것 같았다. 조위는 부하들에게 소나 양과 같은 가축이나 군수품을 추스르게 하면서 천천히 군대를 되돌렸다. 그러다 보니 대열이 자연 흩어지게 되고 군기도 다소 어수선해졌다. 이때 수십 리 밖에 있던 당항의 강족이 조위의 군대가 흩어졌다는 보고를 듣고 서둘러 반격을 가해왔다. 

조위는 이 상황을 보고 받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대를 더욱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그러다가 유리한 지형에 이르자 군대를 멈추게 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적을 맞도록 했다. 적군이 접근하자 뜻밖에도 조위는 사신을 보내 먼, 길을 오느라 지쳤을 터인데 우리는 상대가 지친 틈을 타서 공격하고 싶지 않으니 휴식을 취한 다음 싸우는 것이 어떠냐는 뜻을 전달했다. 적장은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알았으랴! 느긋하게 심신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무섭게 느닷없이 조위의 군대가 무서운 기세로 공격을 펼쳐왔다. 이리하여 조위는 당항의 강족을 크게 무찔렀다. 한 부하 장수가 이 승리의 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조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적군이 후퇴한 후에 아군은 가축과 물자를 탐내는 듯한 거짓 꼴을 꾸며냈다. 이는 적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 싸우고자 고의로 행한 작전이었다. 적이 물러났다가 다시 오면 쉬지 않고 백 리 이상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므로 상당히 지친 상태가 된다. 그러나 바로 싸운다면 적의, 예기가 아직 완전히 꺾이지 않은 상태이므로 이기더라도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쉬었다가 다시 싸우자고 해서 적의 투지를 흩어놓은 것이다. 잘 알다시피 먼, 길을 온 사람이 일단 휴식을 취하게 되면 금세 힘이 빠지고 따라서 싸울 의지도 사라지고 만다. 바로 이때 공격하는 것은 호랑이가 양 떼를 쫓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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