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공연
극단 피악 20주년 기념공연 2 -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시리즈 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별들이 반짝이는 듯한 천장 조명과 촛불을 든 배우들 앞에 선 정동환 배우의 마지막 모습은...절로 숙연해지는 순간을 맞게 했다. /(사진=Aejin Kwoun)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별들이 반짝이는 듯한 천장 조명과 촛불을 든 배우들 앞에 선 정동환 배우의 마지막 모습은...절로 숙연해지는 순간을 맞게 했다.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인문학적 사유에 의한 깊이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 인간 존재의 실존적 의미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극단 피악과 피악의 인문학적 성찰시리즈에 지속적으로 함께하고 있는 배우 정동환이 함께하였다. 공연 속 음악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공연전과 빈 시간마다 서화영 피아니스트가 들려준 연주곡들은 공연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인터미션 때 공연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며 공연의 품격을 한껏 끌어올려 주기도 하였다.

지난 12일부터 31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20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거장이자 선구자로 한국 문학계에 누구보다도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하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문제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 2부로 나누어져 3시간씩 총 6시간 동안 공연되었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고전을 현대 연극으로 만나는 이번 작품은 2017년 국내 최장기 공연(7시간)으로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고전의 무대화에 이상적인 표본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해설자이자 1인 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부 | 해설자이자 1인 5역의 명연기를 보여준 정동환 배우. 이반의 대서사시 속 '대심문관'은 찰흙과 물감으로 그로테스크한 행위예술을 연상시키며 뇌리에 남는 명장면을 보여주었다. /(사진=이강물, 극단피악)

작품을 연출한 나진환 연출가는 “이반의 서사시, 대심문관 장면은 17년도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대심문관과 파우스트’에 이어 3번째 버전으로 해석하였다. 이 3개의 해석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라고 전하며, 흡사 행위예술로도 보이던 장면들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였다. 전작들의 장면들을 부분 부분 나누어 작품의 중간중간에 배치한 그의 연출은 긴 작품 속에서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부 | 이반(한윤춘)과 스메르자코프(조창원)의 애증에 찬 듯한 그들의 대화는 손전등만으로 벗겨지고 덧씌워진 그들의 모습을 비추며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고가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사진=이강물, 극단피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부 | 이반(한윤춘)과 스메르자코프(조창원)의 애증에 찬 듯한 그들의 대화는 손전등만으로 벗겨지고 덧씌워진 그들의 모습을 비추며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고가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사진=이강물, 극단피악)

지난 달 12일부터 31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펼쳐졌던 이번 작품은 20세기 초 세 차례의 러시아 혁명이 발발했던 당시의 도스토옙스키적 사고, 철학적 주제인 선과 악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부터 신의 존재와 허무주의까지 방대하지만 세심하게 묘사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철저하게 해부하며, 관객들에게 소설의 세계를 무대에서 온전하게 보여주는 도전을 하였다. 그리하여 원작이 가지는 인문학적 힘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현대적인 무대와 만나, 오늘날의 가장 본질적인 인간 문제에 대한 예술적인 탐색을 관객들과 함께 도모하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 | 광기에 잠식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 | 광기에 잠식해 가는 한윤춘 배우가 연기한 이반은 한 시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사진=이강물, 극단피악)

극단 피악의 2017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어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단테 신곡-지옥편’ 등에 연이어 함께 하고 있는 정동환 배우는 그 누구보다 연극의 힘과 함께 하는 동료 연극인들과의 파트너십을 믿는 배우이다. 이는 50년이 넘는 배우 인생에서 그가 연극 무대를 놓지 않고, 계속 실험적인 과정을 즐기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극단 피악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나진환 연출가와 함께 그 어떤 배우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1인 5역(해설자, 조시마 장로, 대심문관, 식객, 변호사)의 6시간 연극 여행에 다시 도전하였다. 오직 순수하게 연극만을 위한 열정으로 오롯이 만들어진 두 명콤비는 각자의 배역을 힘 있게 끌고 나가는 주요 배역의 배우들 뿐만 아니라 코러스의 춤과 명료한 대사들과 함께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박힐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 | 드미트리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 | 드미트리(주영호)와 그루셴카(박결이)의 불타는 듯한 사랑은 쉬이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들의 열정은 뜨겁게 느껴진다. /(사진=이강물, 극단피악)

어지러운 세상을 표현하는 듯 무대 전면에 흩뿌려진 지푸라기와 재판정을 바라보는 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코러스의 목소리들 또한 무대를 마치고 쉬이 지워지지 않는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극장의 특성 상 음향이 뒤편까지 전달이 용이하지 않기에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사용한 듯 하지만, 배역마다 고르지 않은 에코로 대사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변사들의 음성처럼 들리는 듯한 부분은 조금 아쉽기도 하였다. 하지만 6시간을 온전히 끌고가는 그들의 노력과 에너지는 작품을 좀 더 깊이있게 파고들고 싶게 만들었고, 쉽지 않은 고전을 다시 한 번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 커튼콜 /(사진=Aejin Kwoun)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 커튼콜 /(사진=Aejin Kwoun)

극단 피악이 그동안 밟아왔던 창조 미학인 몸의 인문학은, 극단의 공연 작품들이 대부분 고전으로서 인류의 보편성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며 ‘몸의 형상학적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극단 피악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나진환 연출가는 극단의 공연들을 ‘불친절한 작품’이라 이른다. 이러한 미학적 탐구를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극단 피악의 상징들을 만나는 시간을 조금은 불친절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독특하기에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면 또 다른 연극의 미학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극단의 다음 행보 또한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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