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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함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지하 6층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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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함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지하 6층 앨리스"
보이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나를 기억해 줘!"
  • 권애진 기자
  • 승인 2021.11.24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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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꽂히는 듯한 작품 “지하 6층 앨리스”는 ‘가슴 아프지만 대단하지 않은 것’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청소노동자 ‘앨리스’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수학교수였던 루이스 캐럴이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되어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이 보는 나와 나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상상하라’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게 하는 이번 작품은 참 가슴 아리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세상을 이상하지 않게 여기는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사진=김동재, )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차의 엔진소리와 바퀴가 바닥에 갈리는 '끽끽' 소리들과 휙휙 켜지는 불빛들 사이 알람 소리가 들리고, 앨리스는 로잘린과 함께 지하 6층 자신의 보금자리인 듯한 곳에서 잠에서 깨어난다. /(사진=김동재, 기지)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연우소극장에서 75분간 펼쳐진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 즉 ‘그림자 노동자’들을 이야기하는 작품 “지하 6층 앨리스”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극단 기지의 대표 박주영 연출가는 “앨리스의 모험을 통해 스스로 사라지고 싶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고 누워있던 시절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같은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새로운 첫걸음을 응원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며 기묘하고 이상한 동화 같은 이야기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하였다.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근무 중 잠깐 쉬는 시간,  카우보이가 유일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3분 20초 후에 가장 맛있는 차를 우려내 가지는 티타임이다. 오고가는 모든 차들의 종류와 시간대, 주차구역까지 꿰며 수십억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대단하다 말하는 이는, 함께 티타임을 가져준 이는 앨리스 뿐이다. /(사진=Aejin Kwoun)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근무 중 잠깐 쉬는 시간, 카우보이가 유일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3분 20초 후에 가장 맛있는 차를 우려내 가지는 티타임이다. 오고가는 모든 차들의 종류와 시간대, 주차구역까지 꿰며 수십억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대단하다고 멋진 일을 한다고 말하는 이는, 함께 티타임을 가져준 이는 앨리스 뿐이다. 아무도 기억 못하지만 생각하고 말하는 머리가 '여기 있다' 말하기 위해 그는 모자를 쓴다. 그리고 앨리스에게도 작지만 대단한 모자를 선물한다. (사진=Aejin Kwoun)

보이지 않는 사람들 틈에 숨어 사라지고 싶었던, 아주 특별하고 보편적인 존재 앨리스는 지하 6층에 살고 있다. 그는 ‘누워있는 학생’의 제안으로 토끼 ‘로잘린’과 함께 지상층으로 모험을 떠나 카우보이(주차안내원), 망태 할아범(경비원), 경자 씨(지상층 청소노동자), 박스병(택배원)을 만나며 희미했던 자신의 존재를 점점 인식하게 된다. 작품 초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앨리스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한 대사가 반복될수록 관객들은 앨리스는 왜 지하층에 머무르며 지워내고 청소하는 일을 반복해 왔는지, 가슴 아프지만 대단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다.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사진=김동재, 기지)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고함을 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수시로 학생들의 체온을 재고 다니는 학교의 경비로 근무하는 망태할아범. 매일 드나드는 학생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는 그지만, 그의 얼굴과 이름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런 망태할아범의 말상대가 되어 주고 뭉친 어깨를 풀어준 이는 앨리스 뿐이다. 망태할아범을 연기한 문진식 배우는 이번 작품을 위해 삭발을 하는 투혼을 보여주며, 예민하고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속정 깊은 할아범을 사실감 넘치게 보여주었다. (사진=김동재, 기지)

20세기 후반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우리의 노동이 왜 이토록 고되고 지루하며 우리의 꿈과 늘 대립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그림자 노동자들은 그나마 급여를 받는 노동자라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작품 속 노동자들은 노동계 안전망 밖으로 밀려나 있는 ‘약한 고리’이면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필수노동자’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의 환경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바꾸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사진=김동재, 기지)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앨리스를 진심 가득히 챙겨주는 경자 씨는 앨리스에게 강하고 강한 슈퍼히어로이고 캡틴마블이고 블랙위도우, 엘사이고 모아나에서 헤라, 아르테미스, 바리데기, 다이아까지 굉장한 존재 자체이다. 눈에 띄지 않기에 모든 곳을 자세히, 깊게 살필 수 있는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김동재, 기지)

KERIS(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펴낸 ‘아직 두렵다면? 교사를 위한 인권교육!’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을 크게 틀고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벽돌 기술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하종강,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고 말하는 네덜란드 중학생이 있을 수 있었던 데에는 숙련된 벽돌공의 수입과 일반 대학교수의 수입에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본인의 능력과 재능, 적성과 흥미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는, 각 직업이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때야만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을 방법은 노동운동을 통해 개개인의 권리는 보장받을 때 가능하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대우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될 때, 비정상적으로 경쟁적인 입시제도와 교육제도의 문제 또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사진=김동재, 기지)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도도와 함께 다니며 소중한 고객님들에게 택배상품을 배달하는 박스병은 파손될지 모르는 항상 화가 많고 성격이 급한 붉은고객님의 상품 때문에 당장 일을 그만두고, 보상으로 빚더미에 앉을 것을, 고객님의 화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고 걱정한다. 하지만 그 고객은 친절한 하얀고객님이었다. 고객의사랑과 자신의 자격을 이야기하는 그는 심장이 터질 만큼 힘들지만, 앨리스에게는 방 안에 있는 사람과 처음 이야기를 하고 눈을 마주친 사건은 가슴 두근거림이었다.  (사진=김동재, 기지)

게임의 효과음인 듯한 소리가 들리면 앨리스가 이동한다. '눈에 띄면 안 되는 존재'인 앨리스를 발견하는 이들은 역시 같은 그림자들 뿐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 모자장수, 공작부인을 만나 방해를 받거나 도움을 받는 것처럼 그림자로 존재하는 이들과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위로를 주고 받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보람을 이야기하며 감사하다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왜 이리 아프게만 들릴까? 나는 다르다고, 갈 곳이 없다고 슬프게 울며 말하는 지친 그들의 손을 잡고 응원해 줄 수는 없을까? 사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그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며 웃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가슴 아프지만 대단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사진=김동재, 기지)
"지하 6층 앨리스" 공연사진 | 점점 몸이 무거워져 위층에서 1층까지 내려온 누워있는 학생은 앨리스에게 어딘가에 무언가를 놓고 왔다고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잊어버린 것은 '가슴아프고 대단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원하는 곳이 없고 갈 곳이 없던 누워있는 학생은 자신의 인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비관한다.  /(사진=김동재, 기지)

2020년 연출가 모임 플럭스프로토콜 ‘창작산재-올해의 신작’을 시작으로, 2021년 ‘창작산재-올해의 레퍼토리’로 규모가 작은 창작집단들이 모여 함께 공연을 올리는 소규모 공연예술축제는 국내 가장 큰 문화예술 사업으로 가치 있는 창작을 선보이고 있는 창작산실과 규모는 다를지언정 내실 있는 작품들로 관객들과 함께하고 있다. 올해는 극단 기지,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에스메이커가 함께 하였으며 내년에는 어떤 극단이 어떤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보일지 기대가 모아진다.

"지하 6층 앨리스"의 배우들 /(사진=Aejin Kwoun)
"지하 6층 앨리스"의 배우들_카우보이(김민하), 망태 할아범(문진식), 경자 씨(오수혜), 누워있는 학생(김현빈), 앨리스(정제이), 박스병(장석환) | 바닥에 흩뿌려진 종이꽃들은 그들의 땀방울과 눈물인 것만 같다. 그렇게 사방에 흩뿌려 있건만, 왜 우리는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사진=Aejin Kw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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