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 -‘새로운 자본주의’를 논하다

1947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출생. 와세다대학 정치학 석사 과정을 수료. 미쓰이물산 입사 후 미국 워싱턴사무소장을 맡는 등 오랜 기간 미국 근무. 이후 와세다대학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교수, 미쓰이물산 임원 등 역임. 현재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 회장이자 타마대학 학장, 재단법인 일본총합연구소 회장으로서 공공정책을 분석. 저서로 『신경제주의선언』, 『국가의 논리와 기업의 논리』, 『우리 전후세대의 '언덕 위의 구름'』, 『데라지마 지쓰로의 발언』, 『20세기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1900년으로의 여행』, 『뇌력 레슨』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기시다岸田 정권이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걸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virtuous circle’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자본주의의 위기’가 시대의 논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하는 건지, 이야기는 명확하지 않다. 메이지 유신을 거쳐, 일본도 자본주의 사회에 진입해 약 150년, 세계사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재고하고, 자본주의의 본질과 새로운 국면, 그리고 과제와 전망을 직시해야 한다.

애당초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이 제도를 적대시하는 세력이 이것을 설명하고, 비난하기 위해 19세기에 태어난 대치對置 개념이다. 자본(부와 화폐)의 축적을 최상위 가치로 삼는 사회 제도로, 그 추진자(자본가)가 노동력이나 토지, 그리고 정보와 같은 경영 자원을 ‘상품화’해 잉여 가치를 낳고, 나아가 자본 축적을 도모하는 구조로 되어 왔다.

그리고 근대 자본주의의 정의로는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주로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하며, 법적으로는 자유인 개인 간의 교환이라는 시장 원리에 맡겨지는 체제”라는 설명이 등장하며, “개인의 자유와 자립”, 말하자면 democracy(민주주의)와의 상관이 그 성립 여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까닭에 ‘근대 2대 지주’로서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인식이 성립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ć(1953년생. 세르비아계 미국인 경제학자 - 역주)의 『자본주의만 남았다 – 세계를 정복한 시스템의 미래』(원제 : 『Capitalism, Alone :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 2019년. 국내 출판 ; 『홀로 선 자본주의 : 미국식 자본주의 중국식 자본주의 누가 승리할까』, 세종, 2020년 - 역주)는 시사적이며, “왜 자본주의만 살아남았을까”라는 설문은, 일본의 진로 모색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공격하고, ‘탈성장’ ‘인신세人新世’ 등과 같은 논의를 교환하는 국면에서,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경제 사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도, 인식을 깊이 해 두어야 할 논제이기 때문이다. 밀라노비치가 제기하는 ‘민중 자본주의’라는 방향성에 일정한 공감을 품고 있지만, 다양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자본주의가 남은 이유에 관해, 인간 사회의 본질에 관해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 있는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ethos’와 ‘pathos’와 ‘logos’라는 세 개 요소가 서로 뒤엉키고, 그 때문에 선악을 넘어선 차원에서 자본주의가 계속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것 - ethos와 pathos와 logos

Michel Beaud의 『A History of Capitalism - 1500-2010』(2001년)과 Jerry Z. Muller의 『Thinking About Capitalism』(2002년) 등, 16세기부터 오늘에 이른 근대 자본주의의 역사에 다가가는 문헌을 새로 확인하며, 숙고하면, 자본주의를 추동해 온 세 개의 요소를 알게 된다. 바로 자본주의는 차원이 다른 세 개의 요소가 뒤엉켜서 혼연일체가 되어, 그 생명력을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요소는 ethos로서의 자본주의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5년)에서 제기했듯이, 자본주의의 기점에는, 근면, 극기 분발, 계약을 지키는 성실함, 경쟁을 통한 연찬 등을 가치로 삼는 윤리성이 존재하며, 영리 활동에도 종교적 윤리성이 있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베버의 이런 시각에 대해,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한 것은, 오히려 유대교의 윤리였다는 사실을 검증한 것이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의 『The Jews and modern capitalism』(1911년)이었다. 그의 관점은 유대인의 이산離散과 이동이 자본주의 요람기에 자극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산한 유대인은 중세 유럽에서, 금융업으로 실적을 올렸다. 구약성서의 모세 5경의 「신명기」(23장 20)가,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 다만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점에 근거해, 금융업이 정당화되고, 신의 의사로 ‘대금업’을 영위하는 자가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16세기, 1492년 스페인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당해,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산한 유대인이 네덜란드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런 유대교적 ethos(신의 뜻에 따라 진지하게 근면․성실하게 산다)가, 면방적 등 섬유 사업, 담배 산업, 보석업 등으로 성공을 이루고, 산업 창성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좀바르트는 나치의 반유대주의 교전敎典으로 이용되어, 저평가된 면도 있지만, 유럽의 근대 자본주의 추진자가 유대인과 손을 맞잡고 걸은 점은 역사적 사실로 인식해야 하리라.

자신이 유대계 프랑스인이기도 한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유대인, 세계와 화폐 – 일신교와 경제의 4000년사』(원제 : 『The Jews, the World and Money, an Economic History of the Jewish People』, 2002년 - 역주)는, ‘음모론이 아닌 유대인 역사로서의, 자본주의 역사의 주역으로서의 유대인이라는 존재를 「창세기」 이후 유대인의 경제 활동을 검증함으로써 설득력을 갖추고 이야기한다. 600쪽을 넘는 방대한 책의 결어結語로 아탈리는 “적어도 유대인, 세계, 화폐의 역사는, 이러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모든 인간은, 구원받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라고 진술한다. “인류사가 유대인을 필요로 해 왔다”라는 선언으로도 들지만, 신의 단일성 발견과 화폐 가치의 침투(민족 이산에 의한 역경을 넘어 살아남기 위한 전능全能, 무류無謬, 신뢰 대상으로서의 화폐)를 이뤄낸 유대인(nomad)의 역할은, 적어도 서양 사회에서는 과장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가 ‘경제 도덕 합일설’을 이야기하며, 『논어와 주판』에서, 검약, 포시布施, 보덕報德,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이야기한 것도, ethos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선호였다. 프로테스탄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없는 일본에서, 메이지 시기의 자본주의 초창기의 기업가들이 높은 윤리성과 문화성을 지닌 것에 놀라게 되는데, 예를 들면, 에도 시기의 상인 학자 야마가타 반도山片 蟠桃(1748~1821년)처럼, 유학․난학蘭學을 깊게 익힌 문리융합文理融合의 실학자가 높은 식견과 가치 기준을 겸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야마가타 반도가 탁월한 경제 사상사였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상을 뒷받침하는 사회 구조 기반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에도 시기의 상업 자본인 ‘상인’들은, ‘미쓰이 가문三井家 가훈’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을 규율하는 규범성(ethos)를 가지고 있으며, ‘무사 이상으로 윤리의 굵고 단단한 뼈대’를 가진 경제인이 메이지 시기의 자본주의의 기반이 된 것은 확실하다.

이어서,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두 번째 요소는, pathos로서의 ‘욕망’이다. 자본주의 참가자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자기 이익의 최대화를 목적하는 욕망, 정열을 내재하고 있다. 이윤이나 수익이라는 성과를 통해 성취감을 맛보는 본능이, 자본주의를 활성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원점인 17세기 초반의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 참가한 사람들의 심정은, 위험을 무릅쓴 투자가와 모험 상인의 욕심과 동반자의 정념으로 넘치고 있었다.

막스 베버는 앞에서 말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20세기 초반의 미국 자본주의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營利의 가장 자유로운 지역인 아메리카합중국에서는, 영리 활동은 종교적, 윤리적인 의미가 제거되어 있으며, 순수한 경쟁의 감정에 결부하는 경향이 있다. …장래, 철의 감방 안에 사는 자는 누구일까, 완전히 새로운 예언자들이 나타날까, 혹은 일찍이 사상과 이상의 힘찬 부활이 일어날까. 그렇지 않으면 – 그 어느 쪽도 아니고 – 일종의 이상한 거만으로 분식된 기계적 화석化石으로 화하게 될까,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베버는 “최후에 나타나는 ‘마지막 인간’들”에 관해, 그 유명한 말인 “정신없는 전문인, 심정 없는 향략인”이라는 표현을 던졌다(『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돈벌이라는 게 나쁜 건가요?”라고 반문한 오늘의 하게타카 펀드(경영 파탄에 빠진 기업에 투자해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이익을 회수하는 펀드를 비판적으로 이르는 말 – 역주) 경영자의 생명감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에, 베버가 말한 ‘마지막 인간’의 이미지가 겹친다.

‘대공황’과 몇 번의 금융 위기를 거쳐도, 월스트리트의 뻔뻔한 사람들에 의한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는 멈출 줄을 몰랐다. 100년 이상이 지난 지금, 베버의 예견은 멋지게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나 자신, 1987년의  Black Monday, 그리고 2008년의 리먼 쇼크와 금융 위기를 뉴욕에서 목격해 왔다. 잇따라 등장인물은 교체되지만, 아침 7시부터 조찬 회의power breakfast가 시작되어, 24시간 가동되는 맨해튼의 머니 게이머들의 돈벌이에 대한 집념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 타오르는 욕망의 pathos야말로 자본주의의 하나의 에너지원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 요소는, logos로서의 자본주의이며, 근대 합리주의에 서서, 경영 자원의 최적 조달과 배치, 경영 효율의 개선을 탐구하는 영리한 의사意思이다. 기술 혁신, 생산․판매 프로세스의 개선에 몰두하고, 그것을 위해 사업 환경 변화에 관한 ‘정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정보 통신 기술․정보 처리 기술의 개발․도입을 도모하는 의사를 가진 경영이 자본주의의 역사를 앞에서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지만, 근대 합리주의의 사상적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1596~1650년)는, 다섯 살에 죽은 딸과 꼭 닮은 자동인형을 만들어,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기분 나쁜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인간 기계론’(인간은 기계처럼 만들 수 있다)은 근대주의자의 꿈이었다. 데카르트는 무신론자는 아니며, ‘전능한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을 믿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런 전제에 서서,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형태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도전한 인물이 데카르트이며, 심신 이원론 앞에 “심신은 결합할 수 있다”고 하여, 딸의 자동인형은 ‘인조인간’에 대한 아주 진지한 도전이었던 셈이다.

오늘, 인류는 궁극의 인조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AI(인공지능)의 진화에 들떠있다. 그리고 컴퓨터야말로 logos의 결정이며, 그 진화가 자본주의 사회를 뒤흔드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컴퓨터 과학을 주도하여, ‘인공두뇌학cybernetics의 아버지’로 불리는 Norbert Wiener(1894~1964년)는 『인간 기계론』에서, 통신과 제어를 일체화하는 ‘전자계산기’의 개발 목적에 관해 “인간의 비인간적 이용에서 해방”이라고 했다. “인간을 쇠사슬로 묶어 동력원으로 삼는 노동”과 “두뇌의 1/100밖에 사용하지 않는 단순 노동”에서 해방되기 위해 컴퓨터의 진보가 요구된다는 인식을 표하고 있었다.

AI 기술 개발의 근저에는 ‘인간 기계론’적 사상이 가로놓여 있다. 앞에서 말한 데카르트의 자동인형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근대는 ‘신’과의 갈등이기도 했다. ‘절대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라는 일신교적 세계관은, 반전하면 ‘과학적으로 인간은 창조할 수 있는 것으로 신의 존재 증명이 된다’라는 사고 회로로 연결된다. 첨단적 AI 개발에 직면해 온 유럽과 미국의 연구자와 마주하면, 일신교적 세계관과의 친화성․상관성을 인상 깊게 받는다.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촉구한 것으로, 전신전화기, 라디오․TV, 그리고 컴퓨터 과학의 진화와 인터넷 보급을 들 수 있다. 이것들에 의해 자본주의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성장으로 벽을 넘었다. ‘노동’ 쪽에서도, 정보 기술 혁신이 일의 내용을 바꾸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코로나 재난으로 ‘원격 근무의 정착’은 자본주의 사회가 전환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새삼, “왜 자본주의만 살아남은 걸까”라는 설문을 총괄한다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윤리’ ‘욕망’ ‘이성’에 기초하여, 선악 쌍방의 잠재력을 유발하는 dynamism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 냉전 후의 새 국면 – 세 개의 자본주의로의 핵분열

우리는 약 400년에 걸쳐 근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 온 게 된다. 1600년, 운명을 가르는 전쟁의 해에 영국의 동인도회사, 1602년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로 출발했다. 배당을 기대하는 투자가가 ‘모험 상인’을 지원하는 구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후,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세계로 전파되어, 상업자본주의를 대신하는 산업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시대를 걸어왔다. 일본도 19세기 후반부터 개국․유신을 거쳐, 면綿․견직물絹織物 등 섬유 공업에서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기복에 휩쓸리어 갔다.

세계적으로는, 20세기에 들어서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역이 교대, 포드 자동차의 T형 Model 등장으로 상징되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맞이한다. 패전 후의 일본은, 패전을 ‘물량의 패배’라고 총괄하고, 오로지 ‘산업력으로 외화를 벌어 풍요로운 나라가 될 것’을 희구해 ‘공업 생산력 모델의 우등생’의 길을 내달렸다. 철강, 전자 공학,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고, 성공 체험을 거쳐 21세기에 들어왔다.

졸저 『일본 재생의 기축』(2020년)에 수록된 원고 「헤이세이平成의 만종이 귀에 남은 동안에」에서, 나는 냉전 종언이 ‘금융 기술 혁명’과 ‘정보 네트워크 기술(IT) 혁명’이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을 논했다. 여기서는, 그 두 가지 혁명이 자본주의의 핵분열을 초래하여, ‘세 가지 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새로운 국면을 형성해, 그 세찬 흐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내내 서 있는 구조를 확인하고자 한다.

먼저 금융 기술 혁명이다. 나 자신이 그 시대의 뉴욕과 나란히 달린 게 되는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에 걸쳐서, 정크 본드의 제왕 Michael Robert Milken(1946년생)과 헤지 펀드의 제왕 George Soros(1930년생)의 등장으로 대표되듯이, 그때까지의 산업 금융(융자를 축으로 하는 은행 업무)과는 다른 ‘행동 파이낸스’가 주역이 되기 시작했다. 배경에는, 냉전 종언이 있으며, 냉전기에 군사 산업을 지원한 물리․수학․공학 등을 전공한 이공계 인재가, 군사 산업 구조조정 속에서, 금융의 세계로 들어와서, ‘금융 공학’의 세계를 열기 시작한 것이 큰 요인이었다. 또한, 냉전 후의 신자유주의(규제 완화, 복지 삭감, 자기 책임, 긴축 재정)라는 사조가, 예를 들면 1929년의 대공황 교훈을 받아 오랫동안 미국의 금융을 속박해 온 「Glass-Steagall Act」(은행과 증권 간 담을 설정)의 폐지(1999년)를 초래한 것도 커다란 전기였다.

더욱이, 그 후의 전개를 주목하면, 금융 공학의 성과로 선전된 ‘subprime loan’ 등 고위험 금융 파생형 상품이 2008년의 리먼 쇼크를 초래하고, 그 반성 차원에서 ‘탐욕스러운 월스트리트를 속박한다’고 하여 오바마 정권이 제정한 「금융규제개혁법」(2020년)은, 트럼프 정권에 의해 환원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시대 환경을 배경으로, 금융은 자기 증식을 반복했다. 산업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촉매 산업으로서의 금융에서 ‘금융 공학을 구사한 행동 파이낸스’ 분야를 개척해, 오래된 금융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 자산의 팽창’으로 생각될 만한 정크 본드, 헤지 펀드, high yield bonds, 가상 통화(무국적 통화) 등의 세계를 비대화시켜 갔다.

금융자본주의의 총본산인 월스트리트가 발신을 계속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말하면, “빚을 내서라도 경기 확대”이며, 세계의 금융 자산은, 어디까지를 금융 자산의 범위로 파악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주식, 채권, 은행 대출 잔액에 헤지 펀드, 가상 통화를 보태, 세계 GDP(실물 경제)의 5배에 육박하는 기세로 비대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안정적 제어가 자본주의 운명에 관계되는 논제가 되어 가는 것은 분명하다.

말하자면, 냉전 종언을 전환의 계기로 삼아, 산업자본주의를 중핵으로 하는 실물 경제를 훨씬 상회하는 금융 경제의 비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구조 변화는 코로나 재난 아래 상식을 초월한 금융 완화와 재정 지출을 배경으로 가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의 트럼프 정권 4년간에, 미국의 실질 GDP는 7.3% 증가인 데 반해, NY 다우지수는 54% 상승했다. 이 차이야말로, 금융자본주의 우위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초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일본의 GDP는 같은 기간에 마이너스 4.0%인 데 닛케이 평균 주가는 40% 상승했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 - ‘세 가지 자본주의’의 상관과 긴장

다음으로, 정보 기술 혁명과 디지털자본주의의 대두이다. IT 혁명으로 현재의 DX(디지털․transformation)에 이르는 조류를 초래한 기점도 역시 냉전 종언이었다. 냉전기, 소련의 핵 공격을 상정해 펜타곤에 의해 개발된 ‘분산계․개방계 정보 네트워크 기술’(ARPANET)이 군사 기술의 민생 전환(군민 전환)이라는 냉전 후 조류의 일환으로 상업 네트워크가 되어 등장한 것이 인터넷이며, 소형 마이크로컴퓨터가 네트워크에 연결됨으로써 대형 범용 컴퓨터를 넘어선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

나아가, 21세기에 들어 정보 기술은 Dataism 시대로 진화했다. big data, crowd를 이용해 ‘데이터를 장악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Dataism의 시대를 창출하고, GAFAM(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실리콘밸리의 IT 빅5 주가의 시가 총액이 일본 GDP의 2배에 육박한다(2021년 8월 말 현재 9.2조 달러)는 사태를 맞이했다.

Dataism을 주도하는 GAFAM은 국경을 넘어 활동을 침투시켜 ‘디지털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새로운 차원의 자본주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상회한다고 하는 특이한 날singularity이 예견되는 지금, 디지털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의 지평을 여는 빛이 될지, 그림자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산업자본주의 초창기를 추동한 것이 ethos(윤리)였다고 하면, 금융자본주의의 에너지원은 pathos(욕망), 디지털자본주의의 그것은 컴퓨터 과학 기술 기반을 탐구하는 logos(논리성)로도 정리할 수 있다. ‘냉전 후’라는 시대는, 그때까지 산업자본주의 주도의 자본주의를 세 가지 자본주의로 핵분열로 치닫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간명하게 도해로 정리하면, 위의 표처럼 되는데, 우리는 세 가지 자본주의가 형성하는 삼각형 속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나아갈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일본은, 너무나도 ‘산업자본주의의 우등생’이라는 고정관념에 도취해 냉전 종언 이후 자본주의의 패러다임 전환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위기 본질은, 냉전 후 세 가지 자본주의로의 핵분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혼미 속에서,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유혹이 높아진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구조적 과제와 해결을 위해 우리는 진지해져야 한다.(『데라지마 지쓰로寺島實郞, 世界』, 202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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