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연재] 20대 대선! ‘스포츠 외교 국제문제 해결사’(제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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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20대 대선! ‘스포츠 외교 국제문제 해결사’(제17회) 
  • 피터 킹
  • 승인 2021.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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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이미지상승 경제활성화 매우 유용
스포츠외교 선진화 ‘글로벌 사회공헌’도

소프트파워 시대 ‘외교수단 강력한 무기’
‘동하계올림픽’은 지구촌 평화 각인 계기

● 국제스포츠 개최 ‘종합국력 상징’

오늘날의 국제 스포츠행사는 단순히 체육경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메이저 국제대회 개최를 통하여 냉전시대에는 공산권국가와 수교를 맺고 눈부신 경제성장 이루었으며 스포츠강국이 되었다. 한국 정부는 국제스포츠 행사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였으며, 국민들의 자긍심을 일깨워 일등 세계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스포츠는 종합국력을 반영하는 상품으로써 소프트파워 시대에서 외교의 유용한 수단이다.

외교는 국가의 목표와 국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 하위 개념인 스포츠 외교는 스포츠를 외교 수행에 이용함으로써 국가 이익을 취하는 정책이다. 이 스포츠 외교는 전통적 외교와는 구별되는 공공 외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 군사적 하드파워가 아닌 스포츠라는 소프트 파워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외형적 성과만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이미 스포츠선진국 대열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기간에 손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간의 정책 지원을 통한 체계적인 계획과 집중적인 투자의 달콤한 열매다.

이제는 한국은 종합국력 척도 되는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지속된 스포츠 발전정책의 성과물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국가차원 지원정책과 긴밀하게 연결시켜 ‘외교소프트 파워’의 강력한 선진 시스템을 공교히 해야 할 시점이 분명 도래한 것이다.

● 동‧하계 올림픽의 ‘위대한 유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단순한 국제 스포츠 행사가 아니었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대한민국에서 30년 만에 개최되는 올림픽이자, 최초의 동계올림픽으로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정확히 한 세대(30년)가 지나는 동안 스포츠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 국민의식 등 사회 전 영역에서 글로벌 선도국가로 성장하고 변화한 대한민국을 알리는 계기이기도 하다.

▼ 대한민국 최초 개최 ‘평창 동계올림픽’

2018년 동계 올림픽은 2018년 2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군 등에서 개최된 제23회 동계 올림픽이다. 지구촌 최대 규모의 겨울 스포츠 축제인 동계 올림픽은 4년마다 개최되는 겨울 종합 스포츠 대회이며, 보통 하계 올림픽과는 달리, 윤년이 아닌 짝수 해 2월에 열린다. 

2011년 7월 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장 연단에 선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이 ‘PYEONGCHANG(평창) 2018’이라고 적힌 하얀 종이를 보여주며 “평창”을 외쳤다.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세 번의 도전 끝에 힘겹게 이뤄 낸 유치다.

2018년 개최된 평창 동계 올림픽은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동계 올림픽이며 서울특별시에서 개최된 1988년 하계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두 번째 올림픽이었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대회로, 앞서 일본 삿포로시(1972년)와 나가노시(1998년)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린 바 있다. 

또한 하계올림픽과 FIFA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 4대 국제 이벤트를 개최한 5번째 국가(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대한민국)가 되었다. 

평화야말로 평창올림픽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였던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물론, 미중일러 등이 모두 평화를 위한 위대한 진전을 이뤘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에서 불과 80㎞ 떨어진 곳에서 올림픽이 열리면서 일부 국가는 우려를 제기하며 참가를 우려하기도 했던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평화올림픽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 ‘비냉전 올림픽’ 1988년 24회 하계올림픽 

1988년 24회 하계올림픽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아시아 대륙에서 개최된 2번째 하계 올림픽이다. 1988년 하계 올림픽은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의 16일 동안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개최된 하계 올림픽이다. 12년 만에 IOC 회원국 가운데 대부분인 160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이었다.

1981년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는 1988년 하계올림픽의 개최지로 서울을 선정했다. 한국의 서울과 일본의 나고야가 입후보했는데, 이 총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비밀투표를 실시한 결과 52 대 27로 서울이 개최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198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2회 올림픽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60여 개국이 불참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23회 올림픽대회는 소련 등 동유럽 국가 18여 개국에서 역시 불참했다.

이처럼 올림픽이 정치적 대결로 중대한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제24회 대회의 성공적 개최는 세계평화를 정착시키는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었다.

스포츠를 통한 동서의 화해, 그것은 이념과 체제의 갈등을 해소하고 인류의 영원한 전진을 약속한다는 의미에서 더욱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인류의 스포츠대제전이 정치적인 이유로 손상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세계 최하의 빈국으로 전락했던 대한민국이 불과 30여년 만에 한강의 기적으로 일궈낸 눈부신 발전상을 자랑하는 ‘국위선양’의 장이었다.
한국은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공산권 및 미수교국과 경제·문화·스포츠 교류를 활발히 추진하게 되었으며, 한국 국민이야말로 진정으로 평화를 희망하는 민족임을 실천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 ‘한국위상 질적 변화’ 2002년 한일 월드컵! 

21세기 들어 처음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 이 대회는 아시아에서 열린 첫 FIFA 월드컵 대회이자 유럽과 아메리카 밖에서 열린 첫 대회이며, 전 대회 우승국 자동 출전권이 적용된 마지막 FIFA 월드컵이었다. 또한 이 대회는 역사상 유일하게 2개 이상의 나라에서 공동으로 개최된 FIFA 월드컵으로 기록되었다.

2002년 5월 31일부터 2002년 6월 30일까지 32개국이 대한민국과 일본에 각 10개씩 위치한 무려 총 20개 경기장에서 64경기를 치렀다. 5월 31일 서울 상암구장에서 화려한 개막식에 이어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 경기로 시작된 지구촌 최대의 축구잔치에는 32개국 선수단이 참가,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한 달 동안 전 세계를 축구 열기로 달아오르게 했다.

대한민국은 개최국으로서 4강 진출의 신화를 창조하며 그 감동의 무대의 중심에 서있었고 많은 것을 얻었다. 성공적인 대회 개최로 국가 역량을 인정받았고, 4강에 진출해 축구 강국 대열에 당당히 섰으며, 무엇보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72년의 월드컵 사상 최초로 유럽‧남미대륙을 벗어나 아시아에서 열리는데다 전례 없이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최된 한일 월드컵은 빈틈없는 협조 속에 역대 어느 월드컵에 비해 도 손색없는 완벽한 대회를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장 큰 유산은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서 서울을 위시 ‘수원‧대전‧ 제주‧ 부산‧전주‧ 광주‧ 대구‧ 울산‧인천’등 당시 최고의 기술로 만들었던 축구 경기장과 같은 인프라 조기 구축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은 아시안 게임, 인천문학경기장은 전국체전, 대구스타디움은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 광주월드컵경기장은 하계 유니버시아드 유치 등 월드컵 이후에도 많은 스포츠 행사에 사용되었다.

● 스포츠외교 ‘국가의 적극적 뒷받침’

이처럼 단순한 수준의 스포츠 ‘행사’가 본격적으로 ‘외교’의 성격을 띠게 된 계기는 중국이 14명의 미국 탁구 선수 대표단을 자국에 초대한 1971년의 ‘핑퐁 외교’다. 적성국이었던 두 나라의 선수단이 왕래한 것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이 사건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핑퐁외교’ 이후 10개월 만에 미 대통령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진전된 것이다. 냉전 당시 두 나라가 스포츠라는 매개체를 통해 긴장 관계의 물꼬를 트게 한 이 사건은 현재 스포츠외교의 고전이자,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동하계 올림픽 ‘성공적 개최’는 국제스포츠 행사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였으며, 국민들의 자긍심을 일깨워 일등 세계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의 동하계 올림픽 ‘성공적 개최’는 국제스포츠 행사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였으며, 국민들의 자긍심을 일깨워 일등 세계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스포츠외교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나 전략적 연구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오늘날 그 어떤 선진국도 스포츠의 가치를 저평가하지 않는다. 스포츠가 국민적 수준은 물론 국가적 수준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원과 요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스포츠외교가 이성적, 논리적 힘으로는 해결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 외교 관계를 풀 마지막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융성의 관점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스포츠가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영화, 연극 등 다른 문화영역들과 융합되어 발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미흡하다. 스포츠 안에 여타 문화영역의 콘텐츠가, 여타 문화영역 안에 스포츠의 콘텐츠가 융합되어 한국만의 독특한 스포츠문화 또는 문화스포츠의 영역을 적극 개척해야 한다.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은 한국이 글로벌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안착시키데 있어 이렇게 조언을 아끼질 않는다.

“한국 스포츠계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한국의 외교적 위상이 줄어든 탓도 아니요,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려워져서도 아니다. 다만 국제무대에서 끊임없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을 지속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세계 체육계에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하고 키워 내야 한다.”

국제스포츠네트워크 구축, 인물 양성 및 스포츠 국제기구 진출, 스포츠이벤트 및 민간기관의 교류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스포츠외교의 발전 방안은 국제회의 참석 및 스포츠외교를 위한 후속세대의 양성, 정부의 장기마스터플랜 구축 및 적극적인 예산 확보가 응당 선결되어야 한다. 

이는 스포츠의 국제경쟁력 강화(Greatness in Game), 스포츠이벤트를 통한 국제협력 강화(Expertise in Event), 스포츠를 통한 글로벌 사회공헌(Togetherness in Trust)이 입체적으로 3박자가 맞아야 한다. 

국제정세에도 부합된 스포츠외교의 지속적 발전과, 이를 통해 스포츠외교의 선진화를 앞당겨야 한다. 이제 ‘스포츠외교’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스포츠와 외교의 장점 모두를 두루 포섭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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