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의 물성을 활용한 '색채의 연금술사' 평가
"최소화 후 스스로 변하는 것이 창조의 힘"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추상화가 홍정희 작가가 지난 19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1969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홍 작가는 1970년대 중반 '자아-한국인' 연작으로 시작해 1980년대 '탈아(脫我)', 1990년대 '열정', 2005년 '나노' 시리즈를 발표했다. 물감만을 활용하는 조형 기법으로 물감의 유동과 응고, 흘러내림과 엉킴 등을 만들며 '색채의 연금술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홍정희 작가
홍정희 작가
물감들의 유동과 응고, 흘러내리다가 엉키고 씻기고 긁힌 자국 같은 섬세한 뉘앙스와 다채로운 표면의 자취를 보여주었다.
고인의 마지막 전시가 된 2019년 이길이구 갤러리 개인전은 우연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맛, 본인의 신체와 호흡, 운동과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야말로 색채의 연금술사라는 상징적인 평가를 끌어내는 중요한 자리였다.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 76년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하는 한국미술대상전과 78년 중앙일보사에서 주최하는 중앙미술대상전, 96년 석주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홍정희 작가의 작품
홍정희 작가의 작품
색을 자유자재로 다룬 홍 작가는 어린시절 한복과 단청의 색이 주는 한국적 미의식에 감화되어 색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물감에 톱밥과 커피가루를 섞거나 유화 특유의 기름기를 걷어내고 푸근한 맛을 살리기 위해 생선뼈를 갈아 넣는 등 색채 표현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미술계에서 유명하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 탄생한 색은 강렬하면서도 깊고 다채롭고 원숙하다.


2005년 '나노' 시리즈는 우주의 합일 사상을 담은 작품으로 기존에 홍 작가가 선보였던 색면추상의 세계에서 좀 더 간결하고 순수해진 형식미가 두드러진다. 이미지를 간결화 시키고 강렬하게 응축된 색은 깊이감을 더하며 무한하게 확장되는 우주와 인간의 내면 세계를 표현했다. 기호화된 꽃, 집, 산 등의 반복되는 이미지를 리듬감있게 배치하고, 체로 쳐낸 톱밥을 물감에 섞어 두터운 질감을 내는 독특한 마티에르를 만들어냈다.우주에 축적된 시간을 표현하기 위한 기법이었다. 응축과 팽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색의 리듬감 뿐 아니라 생성과 증폭의 에너지를 담아냈다.

 

홍정희 작가의 작품
홍정희 작가의 작품

대상은 단순히 형태적 근원을 가진 재현적 형상에서 기호화된 이미지로 환원되고 또한 그 이미지의 반복적 배치는 캔버스를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끊임없이 자가 생성되는 생명력을 보여줬다. 바로 나노화된 응집체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무한한 차원의 공간으로 증폭되는 긍정적 생성과 창조의 장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가 역설했던 새로운 것이 생산되는 세계 즉 새로움과 창조성의 능력을 가진 세계라 하겠다.
홍정희 작가는 ‘스스로 움직여 생명의 열을 만들어내는 것, 최소화 후 스스로 변하는 것’을 창조의 힘이라 했다. 그가 한국현대미술에 던지고 간 장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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