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칼럼] 스승의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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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칼럼] 스승의 자비
  • 김덕권
  • 승인 2022.01.0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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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란 두말 할 것도 없이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분’이시지요. 그런데 남의 스승이 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스승이 될 그릇과 실력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사실은 스승을 만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編)>에는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그 안에 있다. 그 선(善)한 자를 택하여 그를 따르고, 그 불선(不善)한 자는 그것을 고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의 원문이지요.

‘스승’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특별히 고명하신 어떤 분을 찾아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청을 드리고, 그 밑에서 도제식(徒弟式)으로 학문을 전수받는 방식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거나 형편이 되지 않아 스승을 모실 수 없는 사람은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스승은 내가 꼭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내 주변에 늘 있을 수 있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면 될 일이고, 나보다 못하다면 반면교사(反面敎師),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배우는 사람의 자세이지요.

예전에 하루는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가시나무를 보았는가?” “예 보았습니다.” “그럼, 가시나무는 어떤 나무들이 있던가?” “탱자나무, 찔레꽃나무, 장미꽃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이 있습니다.” “그럼 가시 달린 나무로 굵기가 한아름 되는 나무를 보았는가?” “못 보았습니다.”

“그럴 것이다. 가시가 달린 나무는 한아름 되게 크지는 않는다. 가시가 없어야 한아름 되는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시가 없는 나무라야 큰 나무가 되어 집도 짓고 상량(上梁)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가시 없는 큰 나무는 다용도로 쓸 수 있지만, 가시 있는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시가 없는 사람이 용도가 많은 훌륭한 지도자이고, 꼭 필요한 사람이며, 정말로 성현이 될 수 있는 그릇이다.” “가시는 남을 찔러서 아프게 한다. 그리고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한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의 가시, 손발을 통해서 나온 육신의 가시, 욕심을 통해서 나온 마음의 가시이다.”

“나무가 가시가 없어야 다용도로 널리 쓰이듯, 사람도 가시가 없어야 우주를 살려내고, 인류를 살려내는 성현이 되느니라.”

얼마나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인가요? 언제나 너그럽고 부드럽게 덕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면서 내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시를 만든 적이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말이나 글의 가시로 남의 마음을 찌르며 할퀴고 있지 반조(返照)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렇게 큰 지침을 주시고, 바른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님에게 우리는 어떻게 모셔야 할까요?

첫째, 스승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천만 사람이 천만 가지로 그 스승을 비방할지라도, 거기에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혹 직접 보는 바에 무슨 의혹되는 점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사량 심(思量心)을 두지 않는 것이 신(信)입니다.

둘째, 스승의 모든 지도에 오직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견과 고집을 세우지 않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승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셋째, 스승의 엄교(嚴敎) 중책(重責)을 따르는 것입니다.

혹 스승이 대중의 앞에 허물을 드러내며, 혹 힘에 과한 고역을 시키는 등, 어떠한 방법으로 대하더라도 다 달게 받고 조금도 불평이 없어야 합니다.

넷째, 스승에게 허물을 숨기거나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스승에게 직고(直告)하는 것이 신입니다. 조금이라도 스승을 기망(欺妄)하면 안 됩니다. 그래야 스승과의 사이에 진정한 ‘심심상련(心心相連)’이 이루어집니다.

이 네 가지를 구비하면 특별한 신심이라, ‘능히 불조(佛祖)의 법기(法器)를 이루게 되리라’는 정산(鼎山) 종사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살던 새까만 중생인 제게도 스승님을 만나는 기연(奇緣)이 있었습니다. 한 번 스승으로 모신 후, 저는 한 번도 스승님의 명을 거역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스승님과의 약속을 지켜보지 않은 일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습니다. 40여 년간 스승님이 내려주신 <스승님 팔훈>을 지금까지 인생의 지침으로 받들어 살고 있습니다.

<스승님 팔훈>

하나, 말의 억양을 낮추어라

하나, 겸양 이상의 미덕은 없다.

하나, 말 보다는 행이 앞서라.

하나, 너그럽고 부드럽게 덕을 베플라.

하나, 거짓말 하지 말라.

하나. 중죄를 짓지 말라.

하나. 공부와 사업에 몰두하여라.

하나. 교당과 회상과 일체생령을 위한 대인이 되어라.


어떻습니까? 스승님의 자비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 세상에 아름다운 인연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스승, 사제(師弟)간의 인연만큼 아름다운 인연이 또 있을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월 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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