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칼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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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 김덕권
  • 승인 2022.01.10 0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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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을 선언하고 선대위를 해산했습니다. 윤 후보는 선대위 쇄신 방향에 대해 “국회의원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것이 아닌, 철저한 실무 형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큰일입니다. 새는 두 개의 날개로 날아야 하는데, 이 중요한 대선 판이 무너지는 듯 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당대표 간의 포옹으로 극적인 봉합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대선은 대장정(大長征)입니다. 그 멀고도 험한 길을 혼자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야말로 이 먼 길을 가려면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 함께 가는 것을 국민의 힘과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미물인 ‘기러기의 세 가지 덕목’에서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톰 워삼(Tom Worsham)’이 쓴 ‘기러기’의 일부입니다.

‘기러기’는 다른 짐승들처럼, 한 마리의 보스가 지배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랍니다. 먹이와 따뜻한 땅을 찾아 ‘4만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기러기의 슬픈 이야기가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옵니다. 기러기는 리더를 중심으로 ‘V 자’대형(隊形)을 유지하며, 삶의 터전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시작합니다.

가장 앞에서, 날아가는 ‘리더의 날개 짓’은 기류(氣流)의 양력(揚力)을 만들어 주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대장 기러기는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들이 혼자 날 때보다, 70% 정도의 힘만 쓰면 날 수 있도록 맨 앞에서, 온 몸으로 바람과 마주하며 용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냅니다. 우리가 듣는 그 울음소리는 실제 우는 소리가 아니라,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겹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입니다. 기러기는, 부산에서 서울 간을 ‘왕복 40번’에 해당하는 머나먼 길을 옆에서 함께 날개 짓을 하는, 동료와 서로 의지하며 날아갑니다.

만약, 어느 기러기가 총에 맞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離脫)하게 되면, 다른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서,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 할 때까지 동료의 마지막을 함께 지키다, 무리로 다시 돌아옵니다.

어쩌면 ‘미물(微物)’인 새가 그럴 수 있을까요? 만약 제일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지치고 힘들어지면, 그 뒤의 기러기가 제일 앞으로 나와, 리더와 역할을 바꿉니다. 이렇게 기러기 무리는, 서로 순서를 바꾸어, 리더의 역할을 하며, 길을 찾아 날아가는 것이지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의 의미를 여기서 깨치는 것입니다. ‘기러기의 세 가지 덕목’을 알아볼까요?

첫째,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킵니다.

보통 수명이 15~20년 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고 합니다. 동지도 마찬 가지입니다. 한 사람도 버리면 안 됩니다.

둘째, 질서를 지키는 동물입니다.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 갈 때도 ‘행렬(行列)’을 맞추며, 앞서가는 놈이 울면, 뒤따라가는 기러기도, ‘화답(和答)’을 하여, ‘예(禮)’를 지킨다고 합니다.

셋째, 흔적을 남깁니다.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한 번 온 동지는 나름대로, 기국(器局)대로 일이라는 흔적을 남깁니다.

어떻습니까? 인간이 추구하는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한다고, ‘규정(規定) 짓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의미(意味)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아픈 사람에게는 ‘치유의 존재’가 되어야 하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지혜(智慧)’를 나누어 주며, 인정이 메마른 곳에는, ‘사랑의 감동’을 나눌 수 있어야 훌륭한 조직, 단체, 사회, 정치라 하겠습니다.

부디 ‘국민의힘’도 더 이상의 갈등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 가지 ‘기러기의 덕목’을 교훈 삼아 여당과 당당하게 겨루었으면 하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화동(和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다름(差異)을 인정하고 그 용인(容忍)과 조화(調和)를 도모한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이 <태화(太和)>입니다. 태화라는 것은 음양이 분리되기 이전의 어떤 혼융(混融)한 조화로운 기운이 어리고, 그것이 전부 크게 화하여있는 기운을 가리키는 상태를 말합니다.

원불교에는 <청정주(淸淨呪>라는 주문(呪文)이 있습니다.

「법신청정 본무애(法身淸淨本無碍)/ 아득회광 역부여(我得廻光亦復如)/

태화원기 성일단(太和元氣成一團)/ 사마악취 자소멸(邪魔惡趣自消滅)」

진리는 깨끗하고 더러운 것도 없고 원망과 불평도 없고, 애착과 탐착도 없고, 선과 악도 없고, 두려움과 공포도 없고, 불평과 불만도 없고, 아름답고 추한 것도 없어서 어떠한 것에도 걸리고 막힐 것이 없는 자유자재 함을 뜻합니다.

우리 모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덕화만발이 지향하는 목표가 아닐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월 1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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