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항쟁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지난 2019년 6월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2회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2019.6.7
지난 2019년 6월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2회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2019.6.7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전날 퇴원했다. 퇴원 후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하루 만에 다시 쓰러졌다. 가족이 배 여사를 발견하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들 뜻을 이어받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 온 배 여사는 아들이 떠난 지 35년 만에 아들 곁으로 갔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이 모두 병원에 도착하는 대로 부검 여부 및 장례 절차 등을 결정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1987년 6월9일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불길이 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아들의 죽음은 배 여사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배 여사는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배은심 여사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지자 아들의 뒤를 이어 민주화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9일 오전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에 꽃바구니가 놓여있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배은심 여사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지자 아들의 뒤를 이어 민주화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9일 오전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에 꽃바구니가 놓여있다.

배 여사는 ‘한열이의 이름으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해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1929-2011) 여사와 박종철 열사 아버지 고 박정기(1928-2018)씨 등과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현장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힘을 보탰다.

배 여사는 유가협 회장을 맡아 1998년부터 422일 동안 국회 앞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2019년에는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아 힘을 보탰다.

배 여사는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고 이소선 여사 등과 함께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배 여사는 훈장을 받는 자리에서 ‘서른세 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배 여사는 앞서 2018년 6월 이 열사가 다니던 연세대학교와 이한열기념사업회가 함께 주관해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31번째 추모제에서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되어 한 발짝씩 온다. (열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믿는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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