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 군사정권 시절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미명아래 불법감금 등 인권을 유린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1970-80년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을 짜내어 이룩한 것이다. 더 나아가 수많은 이들의 '사회적 배제'도 이를 뒷받침했다. 한국의 군사정권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 대신에 이들을 '격리'시켰다.

▲사진: 형제복지원대책위원회 위원들이 17일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복지원사건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이준화기자

형제복지원대책위원회는 17일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와 판결에 외압이 있었다"며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조사대상 사건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과정에서 '저항'이 발생하면,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해결했다. 야당 정치인들부터 시작해 노동운동, 학생운동, 인권운동 등 '색깔론'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전천후로 활용됐다. 영화 <1987>의 박처원 치안감의 대사처럼 "너는 애국자냐, 월북자냐?"는 질문으로 온 국민을 꼼짝 못하게 만들던 시기다.

이들은 이날 회견에서 "1975년 국가는 내무부훈령을 근거로 '부랑인'이라는 허구 개념을 만들어 집이 없거나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낙인을 찍고,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수용소'에 잡아 가두도록 지시했다"며 "형제복지원 사건은 이런 국가 주도하에 진행된 불법 감금, 폭력, 노동 착취, 사망 등 국가 폭력의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영화 <1987>의 '흥행'으로 당시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많은 이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제도적 민주주의가 전두환 정권의 독재정치에 항거하며 거리로 나온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쟁취된 것임을 영화를 통해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의 실체를 드러내고 낙마시킨 힘이 2016년과 2017년에 걸친 촛불집회였던 것과 마찬가지다.

또 "당시 검찰 수사는 박인근 원장의 개인 횡령 등을 중심으로 수사하다가 피해자 인권침해로 전환하려는 순간 수사 중단 외압을 받았고 그로 인해 강제수용과 폭력, 강제노역, 성폭력, 과다약물 투여, 사망사건 등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를 착수 할 수 없었다"며 "수사기간 중 폭력으로 사망한 수용자의 사망진단서에 '자연사'로 기재된 것을 발견하고 허위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촉탁의를 기소하려는 것 조차 윗선의 압력으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영화 <1987>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소중함을 많은 이들이 되새기고 있는 현재, 여전히 '나중'으로 미뤄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과 사람들이 있다.

당시 사건 담당 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도 이날 회견에 참석해 재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였다. 김 변호사는 "31년 전 오늘은 형제복지원장을 구속한 날"이라며 "울주군 야산 작업장에서 복지원 노동자들이 강제노역하는 것을 발견하고 수사하려 했지만 부산지검장과 차장검사가 조사를 막았다"며 "수사방해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 지시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형제복지원 사건 재조사한 뒤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국회에 촉구하고 '재조사 촉구 제안서'를 대검에 제출했다. 지난 2017년 12월 7일부터 국회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그중 하나다. '한국의 아우슈비츠 사건'이라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전두환 정권 때 자행된 최악의 인권 범죄 중 하나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내무부 훈령 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을 근거로 가난한 이들을 '부랑인'이라는 허구의 개념을 이용해 시설에 가두고, 때리고, 착취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87년 군사정권 동안 발생한 집단인권유린 사건이다. 부산에 본원을 둔 형제복지원은 수용인원이 3000여명이었으며 무연고자들을 데려다가 불법감금한 뒤 강제노역을 시켰다. 탈출하는 수용자들은 무차별 구타했고 암매장 당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12년간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2014년 3월 확인된 사람만 551명에 달한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사건은 그 실체조차 아직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이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김용원 변호사(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는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검찰 수사가 축소됐다"고 증언했다. 김 변호사는 "울주군에 있던 작업장에 복지원 수용자들이 강제노역하는 것을 알고 부산 본원 수사를 하려 했지만 부산지검장과 차장검사가 조사를 좌절시켰다"며 그 배후에 전두환 대통령이 있었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 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 사건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인 박인근은 특수감금죄 등에 대해 무죄로 판단받고 징역 2년6월만 선고받았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7일 국회에 '형제복지원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의견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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