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아버지와 오랜 갈등 끝에 만 27세의 젊은 나이로 7월의 한여름 땡볕 삼복더위에 쌀 담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 죽은 사도세자와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에 생을 마친 정인이, 그리고 동거남의 9살 아들을 여행 가방 안에 두고 숨지게 한 사건들이 시·공간을 넘어 한 자리에서 만나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만난다. “굿-사도”는 관객에게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어내며 역설적으로 아주 기나긴 사유의 시간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공연사진 | /(사진=옥상훈, 2021 창작산실)
공연사진 | 떠도는 누군가가 다시 나를 깨운다/저기에 나를 오라는 누군가가 있다/걷고 또 걷고/그 빛을 따라가리니... /(사진=옥상훈, 2021 창작산실)

바닥과 공중에서 몸으로 표현되는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며 한국적 색채가 강한 움직임으로 '댄스씨어터 창'만의 독보적인 장르로 지난 1월 14일과 15일 양일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 “굿(Exorcism)_사도”는 컨템포러리 서커스와 현대무용의 조화 속에서 수미상관 구조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비정한 부모로부터 학대당한 아이의 죽음과 고통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였다.

공연사진 | 거기엔 ㄴ 아이가 있다/마주 않고 보니 넌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니/얼굴은 푸른 삧이요 온 몸은 검은 빛이다/너도 나 같구나 /(사진=옥상훈, 2021 창작산실)
공연사진 | 거기엔 작은 아이가 있다/마주 않고 보니 넌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니/얼굴은 푸른 삧이요 온 몸은 검은 빛이다/너도 나 같구나 /(사진=옥상훈, 2021 창작산실)

이번 작품은 송강호, 유아인 주연의 영화 ‘사도’를 보고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경험하며 ‘사도세자의 슬픔과 스트레스는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입체적 영상기법인 맵핑작업을 통한 영화적 영상미가 돋보였던 ‘굿_마른오구’를 잇고 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무대 전체에 흩뿌려져 있던 하얀 종이가루들이 무용수의 움직임에 날리며 아름다운 거문고 라이브연주와 어우러지며 시각적이면서 청각적인 자극으로 ‘아동학대’라는 무거운 주제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지금도 과거와 변치 않는 현실을 비춰주었다.

공연사진 | /(사진=옥상훈, 2021 창작산실)
공연사진 | 가정폭력의 가장 무서운 점은 폭력의 대물림일는지 모른다.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가 폭력으로 인해 정신상태가 온전히 성장하지 못했다면...이는 온전히 가정만이 아닌 사회에서 보듬어야 할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사진=옥상훈, 2021 창작산실)

사각의 뒤주를 의미하는 ‘사각’ 프레임은 나갈 수 없는 벽이 되어 따뜻해야 할 가족이 굴레가 되어 가두는 감옥보다 더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 또는 저승과 이승을 오고가는 벽이 되기도 하며 아버지와 아들, 영조와 사도 간에 쉽게 풀릴 수 없는 애정의 간극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용수 5명, 연극배우 2명, 컨템포러리 서커스 퍼포머 3명 그리고 거문고·가야금 라이브 연주자 3명이 무용·연극·서커스·음악의 장르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무대 위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뒤 벌어지는 생각과 사물,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슬픔, 보이지 않는 혼령들의 검무, 현대서커스와 무용과의 만남, 거울을 통해 보여지는 또 다른 나의 모습 등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펼쳐낸다.

공연사진 | /(사진=옥상훈, 2021 창작산실)
공연사진 | /(사진=옥상훈, 2021 창작산실)

사실적이며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며 현대무용의 대중화와 단체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레퍼토리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해 온 '댄스씨어터 창' 대표 김남진은 그만의 아주 강한 에너지와 부드러운 움직임의 무용언어에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고, 한국적인 예술색채를 탐구하여 독창적인 현대무용을 창조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한국적 현대무용을 통하여 세계와 만나고 있다.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그는 아직도 자신의 귀에 들리는 듯한 사도세자의 그 한마디가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증상이 나타난 다음에 대비하는 것은 실상 너무 늦을 때가 많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 인색함이 큰 것일까? 대다수 사람은 몸이 크게 아플 것 같은, 아프기 전에 느껴지는 전조증상만으로 병원을 찾아 진료받는 사실에 어색함을 많이 느낀다. 몸이 아플 때조차 미리 챙기기 힘들어하는 이들은 마음을 돌보는 일에는 더욱 인색하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에, 다른 이들의 몸과 마음이 아프고 멍들어가는 그것을 보더라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커튼콜사진 /(사진=Aejin Kwoun)
커튼콜사진_너무나 아름답도록 슬픈 현실을 우리에게 절실히 느끼게 해 준 무용수 5명, 연극배우 2명, 컨템포러리 서커스 퍼포머 3명 그리고 거문고·가야금 라이브 연주자 3명 /(사진=Aejin Kwoun)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관객은 있을 수 있어도, 한 번만 만나는 관객이 있긴 힘들 듯한 매력이 가득한 '댄스씨어터 창'의 작품 “굿_사도”는 어둡고 무겁지만, 우리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아동학대’라는 문제를 직접적이지만 자극적이지만은 않게, 왜 우리가 모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가슴이 찢길 만큼 아프지만 너무나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의 기억을 함께 안겨준 이번 작품은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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