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명(鹿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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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명(鹿鳴)
  • 김덕권
  • 승인 2022.01.2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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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어질고 선한 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잔치를 베푸는 내용

《시경(詩經)》에 <녹명(鹿鳴)>이란 말이 나옵니다.‘사슴록(鹿)’에 ‘울 명(鳴)’ 즉,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사슴들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울음소리 세상에 또 있을까요?

수많은 동물 중에서 사슴만이 먹이를 발견하면 함께 먹자고 동료를 부르기 위해 운다고 합니다. 여느 짐승들은 먹이를 발견하면 혼자 먹고, 남는 것은 숨기기 급급한데, 사슴은 오히려 울음소리를 높여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시경》에는 이 <녹명>을 사슴 무리가 평화롭게 울며 풀을 뜯는 풍경을 어진 신하들과 임금이 함께 어울리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이렇게 <녹명>에는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카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살인사건이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사랑했는데, 그 형제끼리는 왜 역사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며 싸워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권력과 돈 앞에서는 왜 형제가 아닌지, 가족이 아닌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자신의 동생 둘을 잔혹하게 죽입니다.

오늘날 재벌가의 유산상속 분쟁도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한정된 재화나 권력을 독차지할 수 있는 비극적 사실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는 너를 잡아먹어야 하고, 내가 성공하기 위해 너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현실들이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인 스터디 셀러 작가로 유명해진 ‘리처드 도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보호하면 그 남이 결국 내가 될 수 있다.” 서로를 지켜주고 함께 협력하는 것은 내 몸속의 이기적 유전자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도킨스’의 주장은 약육강식으로 이긴 유전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상부상조를 한 ‘종(種)’이 더 우수한 형태로 살아남는다는 게 ‘도킨스’의 주장입니다. 결국 이기심보다 이타심, 내가 잘 살기 위해 남을 도와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소리들로 넘칩니다. 사람역시 좋아도 울고, 슬퍼도 울며, 이별에 울고, 감격에 겨워도 웁니다. 시인 조지훈은 “울음이란 지극한 마음이 터지는 구극의 언어” 라고도 했습니다.

혼자 먹으면 개나 돼지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함께 먹어야지요. 그걸 우리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합니다. 자리이타는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로움을 나의 이로움으로 삼는 것입니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編)>에 ‘사마우가 사람들은 형제가 있는데, 나만 혼자인 것 같다’는 말에,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그런 걱정 말라며, “군자가 공경하여 실수가 없고, 사람을 사귀는데 공손하고 예의를 갖추면, 사해(四海) 내의 모두가 형제라 하니,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근심하겠는가.”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해’는 이 세계 전체를 말합니다. 동포는 같은 부모를 가진 동기(同氣), 즉 형제와 자매를 말하지요. 따라서 이 땅에 사는 같은 민족이나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사람을 사해형제 또는 사해동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진리적으로 볼 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은 법신불의 화신(化身)입니다.

그래서 ‘정산(鼎山) 종사’는 동기연계(同氣連繫)를 설하셨습니다.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라는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 ‘시방일가 사생일신(十方一家 四生一身)’ 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 지구 위 모든 존재는 자리이타로써 서로 도움이 되고 피 은(被恩)이 된다 하신 것입니다.

수행(修行)도 마찬 가지입니다. 자신만의 열반(涅槃)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도(菩薩道)의 실천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사회화도 같은 의미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동포 은’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하는 욕망에 빠져들 때, 인간은 갈등과 상극의 세계, 심지어는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약육강식(弱肉强食) 현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강자 약자의 진화상 요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강자와 약자는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 해 있습니다. 강자가 강자인 것도 약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약자는 강자로 인해 진보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자는 약자에게 강을 베풀 때에 ‘자리이타’법을 써서 약자를 강자로 진화시키는 것이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이요, 약자는 강자를 선도자로 삼고 어떠한 천신만고(千辛萬苦)가 있다 하여도, 약자의 자리에서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여 가는 것이 다시없는 강자가 되는 길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한낱 미물인 사슴도 먹이를 찾으면 ‘녹명’으로 무리를 불러 모아 함께 먹습니다. 우리 ‘자리이타’법을 써 모두 강자가 되면 어떨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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