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산 칼럼] 피갈회옥

피갈회옥(被褐懷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70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겉은 허름한 베옷을 입고 있지만, 가슴 속에는 영롱한 옥을 품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진정 강한 자는 겉으로는 그렇게 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늘 유연하고 부드러움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진정 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정말 강한 자는 겉은 강하게 보이지 않고, 정말 위대한 사람은 보기에 그렇게 위대해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섬기기에 더욱 강하고 위대할 수 있다는 노자의 가르침은 지난 2,500년 동안 ‘진정 강함’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깨우침을 줍니다.

​진정 위대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그 능력을 가슴 속에 품고 겉으로 굳이 내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빛나는 광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빛을 뽐내어 남을 눈부시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섬기고 비우는 것이야말로 강하고 높고 채운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이지요.

​비움은 채움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섬김은 높음을 전제로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채우고, 강해지며, 높아진 사람만이 위대한 비움과 섬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채우지도 않고 무조건 비우라는 것은 열심히 살지도 않고 무조건 버리라는 것은 공허(空虛)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양대 명문사학을 꼽으면, 동부의 하버드대학교와 서부의 스탠퍼드대학교를 말합니다.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노부부가 사전약속도 없이 하버드대학교 총장실을 찾았습니다. 사전 약속도 없이 총장을 만나겠다고 찾아온 시골촌뜨기 노인들이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비서는 총장이 오늘 하루 종일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그 노인들의 요구를 한마디로 딱 잘라 거절했지요. 하지만 끈질긴 노부부의 간청에 비서는 면담을 주선했습니다. 총장은 초라하고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들을 만나는 것이 자기의 권위와 사무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못마땅해 했지요. 하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습니다.

먼저 부인이 총장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 학교에 1년 다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무척 행복하게 생활했었습니다.” 그리고는 눈시울을 적시면서 1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리고 오늘 총장을 뵈러 온 것은 캠퍼스 내에 그 아이를 위한 기념물을 하나 세우고 싶어서라고 말했습니다.

총장은 감동은커녕 놀라움만 나타냈습니다. “우리는 하버드에 다니다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해 동상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곳은 아마 공동묘지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노부인이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아니에요. 총장님 그게 아닙니다. 동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해 하버드에 건물 하나를 기증하고 싶어서 오늘 총장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총장은 의아해 했습니다. “건물이라고요? 건물 하나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나 하시는 말씀입니까? 현재 하버드에는 750만 달러가 넘는 건물이 여러 채 있어요.” 잠깐 말이 끊기고 총장은 내심 이제 돌아가겠거니 하고 기뻐하며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대학교 하나 설립하는 데 비용이 그것밖에 안 드는가 보죠? 그러지 말고 우리가 대학교 하나를 세우지 그래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때 총장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고, 두 노부부는 말없이 바로 일어나서 곧장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고향 ‘팔로알토’로 향했습니다.

이곳에 바로 하버드대학교에서 푸대접받고 더는 돌보아주지 않는 아들의 영혼을 위해 자기들의 이름인 ‘스탠퍼드 리랜드(Leland Stanford)’에서 따온 이름인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를 설립한 것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총장은 겉모습이 남루한 노인을 보고 오만함과 편견으로 굴러 들어온 복을 걷어차 대학을 더 크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편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오히려 속이 알찬 사람들은 겉으론 검소하고, 그 빛남을 속으로 감추고 있지요.

정산(鼎山)종사께서는 「명대실소(名大實小) 후무가관(後無可觀) 최후승리(最後勝利) 실력위상(實力爲上)」이라고 했습니다. 실력이란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대개 나타나 보이는 것은 믿으나 나타나지 않는 것은 믿지 아니하며, 외부의 영화에는 정신이 몰두하나 내면의 진실은 찾아보지 아니합니다.

꼭 화려한 제 뿔만을 사랑하고 잘못 생긴 제 다리는 미워하던 사슴이 포수에게 쫓기어 숲속을 헤쳐 나올 때 저를 살려 준 것은 잘못 생겼으되 잘 뛰어준 다리였고, 저를 죽일 번하게 한 것은 화려하되 숲에 거리끼기만 하던 뿔이었다는 얘기는 라는 한낱 우화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사철 검은 바지에 흰 저고리 그리고 검은 조끼에 운동화 한 벌로 지냅니다. 그렇다고 속이 알찬 사람도 못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곳에 가든지 뒷전으로 물러나 빙긋이 미소나 짓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피갈회옥>의 정신을 본 받아 알찬 내면을 만들어 가면 어떨 런지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