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고문후유증 시달린, 이을호 우석대 김근태연구소 부소장 별세
1983년 민청련 창립때 ‘정책연구실장’ 맡아...1985년 남영동·남산 고문으로 정신질환

‘독재 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비운의 천재’. 26일 오전 10시45분 67살을 일기로 별세한 이을호 우석대 김근태연구소 부소장을 두고 지인들이 평소 했던 말이다.

고 이을호 김근태연구소 부소장의 서울대병원 빈소. 민청련동지회 제공
고 이을호 김근태연구소 부소장의 서울대병원 빈소. 민청련동지회 제공

유족은 이날 고인이 지난해 12월 코로나19에 감염돼 그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1955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전주고를 수석 졸업한 고인은 74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한 뒤 철학과로 전과했다. 4학년 때인 77년 소설가 김영현·시인 김사인 등과 함께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첫 구속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창립에 뛰어든 그는 85년 검거돼 고 김근태 의장과 더불어 남영동 대공분실과 남산 안기부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운동권의 뛰어난 수재로, 민청련에서 ‘이론’을 담당하며 정책연구실장을 맡았던 고인은 이때 정신질환 증세가 나타나 정신병원 감정 유치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다. 고인은 훗날 남영동과 남산에서 당한 혹독한 물고문 등의 경험을 이렇게 증언했다. “머리를 물에 처박아 숨을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몇 번인지도 기억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는 변이 안 나왔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변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한 뒤 내가 올빼미로 생각되고 밤새 옥돌을 갈고 있는 환상 속을 헤매었다.”

1988년 6월 김근태 의장 석방 때 함께한 민청련 간부들 기념사진. 앞줄 맨왼쪽부터 원혜영, 김근태, 최민화, 이을호, 임태숙. 민청련동지회 제공
1988년 6월 김근태 의장 석방 때 함께한 민청련 간부들 기념사진. 앞줄 맨왼쪽부터 원혜영, 김근태, 최민화, 이을호, 임태숙. 민청련동지회 제공

고인의 민청련 동지이기도 했던 부인 최정순 서울시의원은 “김근태 의장보다 이틀 앞서 체포된 남편에게 김근태를 죽이는 근거를 찾기 위해 극심한 고문이 가해진 것 같다”고 밝혔다. 고인은 1986년 6월 구속집행 정지 결정으로 풀려났지만, 2011년까지 25년 동안 1년에 3개월 정도는 정신이상 증세로 입원을 할 정도로 평생 고문후유증에 시달렸다.

고인은 대학 졸업 뒤 출판사 지학사와 중원문화 등에서 일했고 <세계철학사>(전 12권, 중원문화)를 번역했다.

유족으로 자녀 준의·준아(작가), 사위 정병훈씨가 있다. 민청련동지회장으로 장례를 치르며 27일 오후 6시 서울대병원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이다. (02)207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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