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꿈(1)

임인 년(壬寅年) 새해 어떤 꿈을 구고 계신가요? 저도 어김없이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여야 4당 대선 후보들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며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눈물 흘리는 이재명 대선후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눈물 흘리는 이재명 대선후보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후보도 있었고요. 눈시울을 적시는 후보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해야겠다는 뒤늦은 깨침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저 역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아주 좋아 했습니다. 그래서 논두렁시계 파동으로 모진 누명을 쓰고 김해 봉하 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날려 낙화(落花) 했을 때, 저도 천리 길은 마다않고 달려가 부엉이 바위에 올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당시 그분의 마지막 글이 심금을 울렸습니다. 우리도 그 노무현 정신이 왜 이 어지러운 대선 판에서 여야 대선후보들이 눈물을 흘리며 칭송을 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노무현의 꿈>이 알아보기 위해 2회에 걸쳐 그 글을 올립니다.

【연일 제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의혹으로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몰랐다고, 모함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느냐고 따져 묻지도 않겠습니다. ‘노무현’ 답 게 하겠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누구든 벌을 받아야 하며,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제 제가 할 선택으로 상처받을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어떤 꾸중과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서운하고 노여운 마음, 부디 저의 마지막 진심을 담은 이 편지로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빕니다. 누군가 저의 인생을 ‘싸움’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정말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 인간 ‘노무현’의 삶도 그랬습니다.

그 최초의 상대는 ‘가난’이라는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게 아니라, 사람을 비겁하고 치졸하게 만드는 고약한 놈이었습니다. 어쩌다 먹을거리가 하나 생기면, 형제들이 볼 새라 저만의 비밀 장소에 감춰두고 먹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너무나 배가 고파 나눠 먹을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집이 풍족하여, 화기 애애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눠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저의 꿈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가난과의 긴 싸움을 끝냈을 때, 저는 어느새 처자식을 거느린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무 전문 변호사로 돈을 좀 만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제 아이들이 어린 날의 저처럼 먹을 걸 숨겨두고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양보해라, 나눠 먹어라, 힘주어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려 요트도 타고 멋도 좀 부렸습니다. 안사람은 그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종종 추억하곤 합니다.

정말로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그 행복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 나이가 되도록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나와 내 가족의 목을 죄는 가난과 싸우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풍요와 여유에 취해갔지만, 눈에는 자꾸 그런 것들이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곧, 세상엔 수없이 많은 ‘노무현’들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죽어라 이 악물고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먹을 걸 숨길 수밖에 없는 건 예전의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 왜 나라는 성장하는데, 가난한 이들은 왜 학교에조차 갈수 없는 가난을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되는가! 점차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곡된 역사가, 도처에 널린 반칙과 특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들을 외면하고, 저 혼자 소시민적 행복을 느끼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저의 삶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인권변호사가 되었고, 국회의원이 되었고, 청문회에 나가 이름도 얻었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늘 예전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돈이 없고 힘이 없어 세상으로부터 매 맞고 짓밟히는 이들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 그 눈물을 멈추게 할 힘이 내게 없다면, 최소한 내 손등으로 닦아주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대세’니 ‘주류’니 하는 것에 우루루 몰려갈 때, 원칙을 지키며 버티려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글이 심금을 울리지 않으신지요? 이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 받아 발전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대한민국과 대선후보들과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 아닐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2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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