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발언을 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팽팽한 각을 세우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정치보복'을 운운하자,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분노’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9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게 정중히 사과한 인물이다. 비극적인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그가 이 전 대통령을 향해 날선 비난을 가한 것이다.

전·현직 대통령 간의 갈등이 깊어가는 가운데, 손석희 앵커가 9년 전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포착된 사진 한 장을 다시금 꺼내 들었다. 이 사진에 담긴 스토리를 풀어낸 손 앵커는 "프레임을 바꿔 위기를 탈출하려는 것 아닌가"라며 현재 이 전 대통령의 행보에 물음표를 던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5월 당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자 장례집행위원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발표는 물론 장례 절차를 치르는 내내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공개적으로 눈물 흘리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난 18일 손 앵커는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2009년 5월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故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장면을 화면에 띄웠다. 늦봄의 따가운 햇볕이 쏟아졌던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이 고인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 앞마당에서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엄수됐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 부부가 헌화하러 나서자 장내가 술렁였다.

그 중에는 이 전 대통령(당시 현직 대통령)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 내외가 헌화하는 순간 "어디서 분향을 하냐"며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이명박 사죄하라”고 외치며 뛰어나오다 청와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한 것이다. 백 의원은 경호원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오면서도 “정치보복으로 살인에 이른 정치살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사죄하십시오”라고 반복해서 외쳤다.

이 전 대통령은 흘끗 고개를 돌렸지만 흔들림 없는 자세로 분향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팽팽한 긴장감이 장내를 가득 채우던 그때 상주의 자격으로 왼팔에 완장을 차고 있던 당시 문 대통령은 현장을 수습한 뒤 이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조문 오신 분에게 예의가 아니게 됐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 장면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백 의원은 특수공무집행 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문 대통령은 정중하게 이 전 대통령에 고개를 숙인 뒤 앞서 벌어진 소란스러움에 대해 대신 사과했다. 노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친구'라 불렀던 문 대통령은 그 사과가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다. 문 대통령은 2010년 4월 29일 백 의원의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서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분들은 (백원우 의원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 SBS 뉴스 화면 캡처

9년 뒤, 영결식장에서 정중한 사과를 받았던 이 전 대통령은 측근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청렴결백함을 호소했다. 한편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기자회견에서 '정치 보복'과 '보수의 궤멸' 등을 논하던 이 전 대통령은 갑자기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손 앵커는 "많은 이들로부터 적어도 그 죽음의 간접적 책임의식이라도 요구받고 있는 그가 이를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무엇일까"라며 반문했다. 이어 "이른바 프레임을 바꿔 위기를 탈출하려는 것. 즉, 법적 책임의 문제를 정치적 싸움의 수로 돌파하기 위한, 어쩌면 '보수의 재결집'을 노린 승부수"가 아니겠냐며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놓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언급한 데 대한 불쾌감이 있었을 수 있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그것을 넘어서는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분노는 (MB 성명이) 사법질서를 부정하고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손 앵커는 "분석은 넘쳐나지만 그런 분석조차 필요 없이, 광장을 통과해온 시민들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라며 앵커 브리핑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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