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문 정부 적폐청산 수사’ 발언에 분노, 문재인 ‘검찰개혁’ 정조준 

[뉴스프리존] 20대 대선이 한달도 안남은 가운데 현직 대통령과 야권후보가 정면충돌하는 사상초유의 선거구도가 등장했다. 역대 대선을 보면 현직 대통령은 ‘엄정중립’을 기치로 선거에서 물러나 있고, 야권후보는 현직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자 여의도문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선판은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후보간 피할 수 없는 최후의 결전으로 바뀌었다. 
      
윤석열 후보는 9일 공개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 거기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집권 시 전 정권 적폐 청산 수사를 할 거냐’라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돼”라면서 문재인 정부를 ‘적폐청산 수사대상’으로 규정했다. 

언론보도에 대해 첫날 청와대는 "매우 불쾌하다. 지켜야할 선이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면 불쾌할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 맞받았고, “적폐 수사 문제될게 없다. 내가 하면 정당한 적폐의 처리이고 남이 하면 보복인가?”라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보였다.   

이에 문 대통령이 직접 등판하게 됐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참모회의에서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를 향해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재직 시절엔 이 정부의 적폐가 있는데도 못 본 척 했다는 말이냐" 며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 사정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동안 대선에 거리를 두어 온 상황에서 이같은 반응은 이례적이다. 특히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기존 화법상 상당히 감정적이고 강렬한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유감 표명에서 더 나아가 윤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한 상태다. 이는 윤 후보의 반응을 계속 살피며 직접 논쟁에 뛰어들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청와대의 예상외 강한 반발에 윤석열 후보는 "저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며 일단 한발 물러서며 발언 수습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 하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의 담당자로 선택됐다가 검찰개혁을 무력화 하고 이제는 야권 후보로 현 정부에 칼을 겨눈 윤석열 후보. 문재인 대통령의 분노는 어쩌면 검찰개혁을 완수 못한 것에 있지 않을까?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하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의 담당자로 선택됐다가 검찰개혁을 무력화 하고 이제는 야권 후보로 현 정부에 칼을 겨눈 윤석열 후보. 문재인 대통령의 분노는 어쩌면 검찰개혁을 완수 못한 것에 있지 않을까?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윤 후보는 10일 오후 재경 전북도민 신년인사회 참석 이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적폐 청산 발언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했다'는 기자들의 질의에 대해 "문 대통령님과 저는 똑같은 생각이라 할 수 있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후보는 "우리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사정을 강조해오셨다"며 "저 역시도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늘 법과 원칙,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려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건 제가 검찰에 재직할 때나 정치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는 무엇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오늘은 그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사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거듭 "제가 아까 다 말씀을 드렸다"며 "우리 문 대통령님의 생각과 제 생각이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답했다.

첫날 ‘문제될게 없다’는 태도에서 정면충돌을 피하는 자세로 태세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특히 ‘우리 문재인 대통령’이라며 ‘우리’를 자주 언급하면서 화해 제스추어를 취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확전을 피하겠다는 의사로 보인다.  

정치인의 발언은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둔 정략적인 발언이 대부분이다. 즉흥적이라고 한다면 평소에 지론이거나 자기 ‘확신’이 반영되어 나올 뿐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후보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불릴만큼 여야 후보가 선거일 한달도 안남은 상태에서 우세를 장담할 수 없을만큼 ‘박빙 판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추세로는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근소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 본인과 배우자 장모 등 ‘처가리스크’는 상존하며, 아직은 큰 실수 하나로 판세가 출렁거릴 수 있다. 

이제 윤 후보에게 남은 기간 대선에서의 변수라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사면받은 박근혜씨의 입장 표명 등이 있지만 큰 변수는 아니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단일화 대상으로 삼기에 미미하고, 박씨의 발언 또한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후보들의 경합으로 매우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정권심판론이 50%를 넘는데, 윤 후보는 그 지지율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지 못하다. 반면 가장 최근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해 ‘잘하고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43%였다. 11월 3주차부터 이번 조사까지 11번의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7~9일 18세 이상 1007명에게 실시해 10일 공개한 2월 2주차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모두 40%를 넘겼다. 임기 말 지지율이 떨어지던 과거 대통령의 전례와는 다르다. 여당 후보인 이재명 후보 또한 문 대통령 지지율을 넘고 있지 못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후보의 ‘문 정부 적폐청산 수사’ 발언은 바로 높은 정권심판론을 자극, 야권의 대표주자로 자신을 드러내고 지지층 결집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지지율 변동에 따른 단일화 협상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윤 후보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물론 민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후보가 정치보복을 사실상 공언한 건 본 일이 없다”며 “우리가 통합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데, 보복 또는 증오, 갈등, 분열이 우리 사회를 정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보복이 아니라 통합의 길로 가시길 참으로 진심으로 권유드린다”며 정중하지만 뼈있는 언급을 남겼다. 

민주당 국회의원 172명 전원은 10일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연 뒤 성명서를 내고 “윤 후보는 정치보복 발언을 철회하고 즉각 사죄하라”며 “윤 후보는 더 이상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의원 일동은 “윤 후보의 정치보복 선언은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헌적 발상이자, 민주정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라며 “역사를 과거로 돌리고 대한민국을 혼란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정치선동”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수사, 정치보복의 결과를 똑똑히 목도했다”면서 “다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을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도 했다.  

여권의 공세에 대해 이준석 대표는 1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권을 막론하고 부정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공정하게 진행했던 우리 후보가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청와대가 발끈했다”며 “원칙론에 대해서 급발진 하면서 야당 후보를 흠집내려는 행위는 명백한 선거개입에 해당한다. 앞으로 28일간 청와대가 야당 후보를 사사건건 트집잡아 공격하려고 하는 전초전이 아니길 바란다”며 공세에 나섰다.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 수사의 원칙을 밝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사과를 요구한 것은 부당한 선거 개입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여권의 지지층 결집을 가져올 수 있는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를 ‘대선 개입 시도’로 반격하며 방어막을 친 것이다. 

반면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지지율 답보 상태에서 ‘울고싶은데 뺨 때려준 격’으로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친문반이’ 지지층 결집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를 총괄선거대책위원장직에 앉히고,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이 “문 대통령을 퇴임 후 지켜낼 후보는 이재명”이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후보에 반감이 있는 일부 호남과 친문 지지층, 지지 의사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샤이 민주당’ 유권자까지 흡수하려는 시도다.

어차피 대선 막바지, 임기말의 문 대통령도 마냥 거리만 둘 형편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가 여권 지지층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반작용으로 ‘정권 심판론’을 자극해 윤석열 후보로의 야권 결집 동력이 될 수도 있다. 투표일이 가까울수록 정권심판론과 정권유지론의 진영 대결 구도가 더욱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 

임기를 두달 여 남긴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윤 후보와의 대립을 통한 정치공학적 표 계산 같은 것 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재명 후보를 통한 ‘정권유지’가 최선이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법개혁, 특히 검찰개혁을 이루지 못한 회한이 큰 짐으로 남았을 것이다.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자신이 선택한 윤석열 후보가 야권의 유력후보로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현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 대통령은 모든 것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대선은 '문재인+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로 확대됐다. 윤 후보의 실언이든 아니든 검찰권력은 대선과 함께 다시 한번 국민적 관심사가 됐고, 서슬 퍼런 문 대통령의 참전은 선거결과에 따라 ‘검찰권력’에 어떤 형태든 제한적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대선은 20여 일 남았다. 국민의 선택을 더 지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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