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당 윤석열 대선 후보가 열차를 타고 가면서 구두를 신은 채 반대편 의자에 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돼 큰 비난을 받고 있다.

문득 30년도 넘은 옛날에 벌어졌던 비슷한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 1989년 당시 제1야당이었던 평민당 김대중 총재의 유럽 순방에 따라나섰던 일부 국회의원이 외국여행에 익숙치 않은 나머지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를 수행 취재했던 조선일보 기자가  「좌파에도 우파에도 손짓 /수행의원들 추태 만발-김대중 총재 유럽 순방 뒷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로 조졌던 것이다.

수행의원들의 추태가 기사의 본질이 아니고 김대중 총재의 유럽 순방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분명한 기사였지만 의원들의 추태를 곁들임으로써 순방단의 성과와 위신을 결정적으로 훼손시켰음은 분명하다.

이때 보도된 의원들의 추태 중 하나가 한 농촌 출신 의원이 귀국 비행기 안에서 맨발로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그때 ‘비행기 안 맨발’의 컨셉은 ‘무례’ ‘촌놈’ ‘허접’ ‘수준낮음’ 등이었다. 이 기사에 분노한 평민당이 대대적으로 조선일보를 비판했고 조선일보가 더 크게 반격하면서 이 사건은 정치권-언론의 정면대결로 비화했다. 결국 명백한 승패없이 전쟁은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평민당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윤석열 열차사건’의 컨셉은 ‘무례’ 외에도 ‘조폭’ ‘오만방자’ ‘더러움’ ‘특권’ 등이 겹친다. 그럼에도 국힘당은 언론에 반발할 수도, 마땅히 변명할 수도 없게 됐다.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언론사를 파산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고 처음으로 옳은 소리를 하면서 (사실은) 언론을 위협한 직후이긴 하지만 그 역시 턱도 없는 일이다. 이 사건의 명명백백한 증거가 되는 사진이 있는데다 그 사진마저도 자기 진영에서 스스로 언론에 제공한 것이어서 별 도리 없이 당하게 됐다.

또 하나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잘 아는 (성질이 보통이 아닌) 젊은 (여성)친구 하나가 아주 꼴보기 싫은 상사 밑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느 더운 여름날 그 상사가 사무실에서 양말을 벗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바로 (살짝 웃으면서) “부장님~ 족(足) 까고 계시네요~” 했더니 처음에는 사무실 동료들이 충격을 받고 당황하다가 금방 왁! 하고 폭소가 터졌단다.

부장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힌 채 주섬주섬 양말을 신고...구두를 신으나, 양말을 벗으나, 다 족(足)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윤 후보의 ‘열정열차’는 도리없이 ‘족발열차’가 됐다. 그 자신 ‘멧돼지’라는 별명도 있으니 ‘족벌열차’가 크게 잘못된 이름붙이기도 아니다.

자동차가 등장하고 고속도로가 깔리기 전에는 미국 대선에서도 기차 정거장 유세가 가장 중요한 선거 캠페인 방식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이준석 국힘당 대표가 이에 착안해 ‘비단주머니’ 3개 중 하나로 ‘비단열차’를 만들었을 텐데 그만 ‘비난열차’가 되고 말았다. 윤 후보 본인에게는 ‘비탄열차’가 더 어울리겠다.

철도노조가 “철도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냈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열정열차’가 서민들에게는 ‘민폐열차’라는 말이다.

내 고등학교 동창 하나는 단톡방에 “채권회수 조폭스타일”이라고 극혐을 표현했다. ‘조폭열차’라는 이야기. 무궁화호를 이용한다는데 무궁화호가 아니라 ‘무뢰배호’다.

‘비 내리는 호남선’이란 흘러간 옛노래가 있다. 왜 특별히 호남선에만 비가 내리나. 호남이 오랫동안 겪어야 했던 차별과 열악한 처지 때문에 호남을 달리는 열차마저 슬프기 때문일 것이다. ‘비 내리는 호남선’의 2절 마지막 가사는 다음과 같다.

‘(다시 못 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
속을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 내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지금 호남선을 타고 있는 윤석열과 그 일행에게 ‘열정열차’는 ‘웬수열차’일지도 모른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