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봉송 현장 '올림픽 반대' 외침에 음성 없애고 중계해 논란
보험 부정판매 문제 후속보도 주춤…권력 압박에 '굴복' 지적

일본 공영방송 NHK의 조작 방송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도쿄 올림픽 관련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인물이 '돈을 받고 올림픽 반대 시위를 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문제의 장면은 NHK가 운영하는 위성방송 채널 BS1이 가와세 나오미(河瀨直美) 도쿄올림픽 공식 기록영화 총감독을 소재로 작년 12월 26일 방송한 '가와세 나오미가 주시한 도쿄올림픽'이라는 제목의 특집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다.

NHK는 한 남성이 걷는 모습을 보여주며 "올림픽 반대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는 남성"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이어 이 남성이 공원에서 앉는 장면에서는 "실은 돈을 받고 동원됐다고 털어놓았다"는 설명을 역시 자막으로 표시했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이 남성이 "시위는 전부 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니까 (주최자가) 쓴 것을 말한 후에 말할 뿐"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이어졌다.

시청자가 이를 봤다면 도쿄올림픽을 반대하는 시위는 돈을 받고 조직돼 순수성이 없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방송 후 올림픽 반대 시민단체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시민단체는 돈을 주고 동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론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방송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NHK는 최근 공개한 내부 조사 보고서에서 문제의 자막이 사실과 다르다고 결론을 내렸다.

잘못된 방송 인정한 조사보고서= '돈을 받고 도쿄올림픽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취지의 자막을 내보낸 NHK의 다큐멘터리에 관한 NHK의 내부조사 보고서에 "잘못된 내용의 자막"(붉은 사각형)이라는 판단이 담겨 있다.
잘못된 방송 인정한 조사보고서= '돈을 받고 도쿄올림픽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취지의 자막을 내보낸 NHK의 다큐멘터리에 관한 NHK의 내부조사 보고서에 "잘못된 내용의 자막"(붉은 사각형)이라는 판단이 담겨 있다.

취재 당시 남성이 '밥값 정도의 돈을 받고 여러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올림픽 반대 시위는 가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증가하니까 나는 올림픽을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음성 자료가 남아 있었다.

도쿄올림픽과 관계없는 시위에 가서 돈을 받은 적이 있으나 올림픽 반대 시위에는 참여한 적이 없었음에도 NHK는 이 남성이 돈을 받고 올림픽 반대 시위를 한다고 보도한 것이다.

조작 방송을 사전에 걸러낼 기회는 있었지만 확인이 허술해 바로잡지 못했다.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디렉터(PD)의 상사는 내용을 미리 점검하는 내부 시사회 때 남성이 참가한 시위가 올림픽 관련 시위인지 묻고서 이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NHK 방송센터
NHK 방송센터

하지만 디렉터는 올림픽 반대 시위에 참여했는지를 남성에게 확인하거나 시위에 관한 추가 취재를 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이어진 추가 시사회 때도 상사와 디렉터 사이에 이와 관련한 철저한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

NHK 조사팀은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토대로 뒷받침할 취재도 하지 않은 채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상사의 점검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잘못된 내용의 자막을 붙인 장면이 방송된 것이 밝혀졌다"고 조사 보고서에서 밝혔다.

NHK의 신뢰를 손상한 사례가 하나 추가됐다.

특히 정권을 곤란하게 하는 이들의 도덕성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조작 방송을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강행한 지난해 도쿄올림픽은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는 자민당 정권을 곤란하게 하는 재료 중 하나였다.

NHK의 다큐멘터리는 결과적으로 올림픽 반대 시민단체 등을 비윤리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올림픽 관련 방송을 둘러싼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4월 1일 NHK가 나가노(長野)현 나가노시의 성화 봉송 장면을 방송할 때 근처에 있던 시민이 "올림픽에 반대", "올림픽 필요 없어"라고 외쳤고 이 소리가 중계됐는데 직후에 약 30초 동안 음성이 없이 영상만 방영해 공영방송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도쿄 올림픽 반대 시위
도쿄 올림픽 반대 시위

NHK는 음성을 차단한 이유에 관해 "지역과의 관계 등 저마다의 생각으로 달리는 성화 주자에 대한 배려를 포함해 대응했다"면서도 판단 기준 등에 관해서는 "답변을 삼가겠다"고 했을 뿐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권력의 눈치를 살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NHK는 2018년 4월 시사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겐다이(現代) 플러스(+)'에서 우편·금융 그룹인 닛폰유세이(日本郵政) 계열사의 부적절한 보험 상품 판매를 고발했는데 예고했던 후속 취재·보도가 주춤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닛폰유세이 그룹 간판[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닛폰유세이 그룹 간판

취재를 위해 제보를 요청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닛폰유세이 측의 항의하자 동영상을 삭제했으며 후속편 방영도 늦췄다.

닛폰유세이 측이 NHK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경영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압박하자 경영위원회는 우에다 료이치(上田良一) 당시 NHK 회장에게 엄중 주의 처분을 내렸다.

우에다는 이후 닛폰유세이 측에 사실상 사죄하는 문서를 보내는 등 굴욕적으로 대응했다.

일본 총무성
일본 총무성

총무성 사무차관 출신인 스즈키 야스오(鈴木康雄) 당시 닛폰유세이 상급부사장이 NHK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NHK의 취재 방식이 "마치 폭력단 같다"고 공개적으로 맹비난하기도 했다.

총무성은 NHK를 감독하는 정부 기관이다.

스즈키는 특히 총무성 재직 중 방송행정을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를 지낸 이력이 있어 NHK가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낳았다.

NHK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은 신뢰받는 언론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권력의 압박에 맞설 용기도 필요하고,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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