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위주의 지역주의 타파

정계 입문 전 부터 그가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며 군사독재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에 대해 저항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변호인에 그 장면들이 묘사돼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며 E. H. Carr가 소련사를 연구했고 소련에 체류했다는 사실 만으로 그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불온서적으로 분류하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막지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내용은 아마도 실화였던듯 합니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지금 대학생 필독서이고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서두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당시 군사정권의 철권통치는 반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이기도 했거니와 그만큼 무식하고 맹목적이며 저급한 통치세력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은 정계 입문 전부터도 이런 군부 세력에 대해 투쟁했고 정계 입문 후에도 철저히 군부세력과 그 계승자들에 대해 선을 그었습니다.

이는 민주세력의 맹주였던 김영삼이 3당 합당으로 군부세력과 연합하여 정권을 창출한 것, 김대중이 DJP 연합을 하여 정권을 창출한 것과는 차별화 되는 모습입니다.

노무현의 관점에서는 유신독재의 계승자들과 5공화국 계승자들 뿐만 아니라 3김정치도 구태 권위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정계 입문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합당을 한 후 결별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 은퇴 선언후 복귀하자 이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합류하지 않았습니다(나중에는 합류했고 이후 김대중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함).

어쨌든 3김정치도 제왕적 보스 정치였고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구태적 속성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계 진출 이후에 5공 실세들에 대한 거침 없는 비판으로 청문회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1998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이명박 전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선고 전 서울시장 경선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 사퇴를 하는데 이 때 노무현은 보궐선거에서 이명박의 지역구였던 종로에서 당선 됩니다.

그러나 다음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 높은 종로를 놔두고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하여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이 생겼습니다. 이 역시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결단이었으며 향후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법조계의 기수문화와 보수적인 인사관행을 뒤엎고 여성 법무장관 강금실을 임명하고, 여성 헌법재판관 전효숙, 여성 대법관 김영란을 탄생시켰습니다.
 

김영란 법으로 잘 알려진 분이죠?

 

2. 경제적 성장, IT강국으로 발돋움
실제로 노무현 정권 시기 우리나라 주가가 많이 뛰었습니다. 경제 성장률도 높았습니다.

물론 글로벌 경제가 호황이었던 것이 뒤 이어 바톤을 이어 받은 이명박 정권이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격탄을 맞았던 것에 비해 운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IMF 위기를 막 극복한 상황에서 국가 경제를 완전히 정상화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 노무현이 경제를 망쳤다는 주장들도 많이 있었지만 이는 노무현이 주가를 많이 올렸다는 말 만큼이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고 죽이는 것보다 사이클에 영향을 받는 요인이 더 크다는게 제 생각입니다(개인적 생각).

각 정권 마다 집중적으로 육성한 산업들이 있는데 예컨대 김대중 정권은 벤처산업(코스닥 기업들이 대박을 친 시기), 이명박 정권은 토건산업(개인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다른 사람들처럼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이건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라고 봄, 개인적 생각임)을 육성했다고 한다면 노무현 정권은 IT산업을 육성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우리 IT산업을 대통령이 키웠다고 한다면 그것도 어처구니 없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노무현이 재벌, 대기업과 적대적일 것 같은 인물임에도 삼성출신 관료들도 세웠고, 한때 "노무현은 삼성, 이명박은 현대"란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 때 우리 IT산업이 도약하게 됩니다(누누히 얘기하지만 대통령 덕분에 그랬다는 것은 아님. 일정 부분 기여했고, 때마침 그랬다는 것임).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도 삼성 출신 진대제씨였습니다.

 

 

3. 참여민주주의 확립
노무현 정부는 타이틀이 "참여정부"인 만큼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는 위에 1번 2번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권력이나 관이 주도하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내고 국민의 관여도가 높은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IT기술을 활용해 전자정부 서비스를 구축하고 국민들이 편리하게 행정업무를 하고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3. 남북관계 진전
노무현 정부는 전임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승하여 남북 교류를 확대하고, 남북정상 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정책 기조가 바뀌고, 금강산 관광객 피살 등 악재가 겹치면어 빛이 바래게 되었습니다. 이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남북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나 현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없는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결함과 우리가 알 수 없는 전근대적 정치체제인 북한 내부의 상황 때문에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봅니다.

대북 강경책도 연속적이었다면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개인적 생각임)

여기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봤는데 빼먹은 것도 많고 어수룩하게 쓴 부분도 많은 것 같네요. 쓸수록 지구력이 떨어져서...

노무현 대통령은 사후에도 자주 언급되는 정치인 증 한 분입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선거운동 할 때 노무현이 nll을 포기했다는 발언을 했는데 당시 국정원 문건을 열람했다는 의혹을 받자 증권사 찌라시에서 봤다고 해명했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내정자도 노무현 정권에 비판이 청문회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고요.

 

 

성완종 게이트에 있어서도 리스트에 올라간 인물들에 대한 의혹과 함께 참여정부 당시 특별사면이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좀 지루했을테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애창하던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와 작은 연인들 입니다.

 
또 다른 애창곡 아침이슬입니다.

 

 
인물에 대해 좋아하느 감정이나 싫어하는 감정을 배제하고 있는 사실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혹시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싫어하시는 분이나 제가 쓴것 중 불편한 것 있으면 제가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용서해 주시고요. 서거 6주기를 맞아서 현대 정치사에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인 노무현에 대해서 상식 차원에서만 알아보고자 한 것이니 의도를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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