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손자병법’ ‘군쟁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용병에 능한 자는 적의 사기가 날카로우면 피하고, 사기가 느슨해졌거나 사라진 때에 공격한다. 이를 ‘기를 다스린다’고 한다.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이 대목은 군의 ‘사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장군가탈심’ 참조) 작전 중인 군대는 초기에는 사기가 날카롭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힘이 소모되면 사기가 점점 떨어지다가 막바지에 이르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다. 이 계략은 전투 초기에 예리한 적의 사기를 피하고, 사기가 해이해지거나 완전히 바닥이 났을 때 공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요는 적의 사기에 근거하여 결전의 시기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손자는 약 2천 년 전에 ‘사기’를 군대 전투력의 중요한 구성 성분으로 보았다. 손자 이전에도 이미 전쟁의 실천을 통해 사기가 전쟁의 승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좌전’(기원전 597년 선공 12년조)에 인용된 고대의 병서 『군지 軍志』에서는 “먼저 상대의 마음을 빼앗으라”고 말하고 있다. 선배들의 사상을 이어받은 손자는 ‘사기’의 장악과 운용법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이를 적을 제압하는 방법으로까지 발전 시켰다.

기원전 684년,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여 장작(長勺)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노나라 장공은 제나라 군대가 지치길 기다리지 않고 바로 출전하려다가 조귀(曹劌)의 만류로 멈추었다. 그리고 제나라 군대가 큰 북을 세 번씩이나 울리며 진군해 왔다가 실패한 후, 반격을 가해 물리쳤다. 이 전투가 끝난 다음 장공이 조귀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치를 묻자, 조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무릇 전투는 용기입니다. 단 한 번의 북소리로 기세를 올려야지, 두 번이면 힘이 빠지고 세 번이면 기진맥진입니다. 저쪽의 힘이 다하고 우리 쪽이 넘치면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조귀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제나라와 같은 대국을 얕잡아보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병사를 매복시켜놓고 우리를 유인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바퀴 자국을 살피고 저들의 깃발을 관찰한 다음에 추격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작전 중 군대의 사기를 장악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양배물종 참조)

‘백전기법’ ‘피전(避戰)’에서는 “싸움에서 적이 강하고 내 쪽이 약하며 초반에 적의 기세가 날카로우면 그를 피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적이 지친 틈을 엿보다 공격하면 틀림없이 이긴다.”고 했다. 189년, 한의 장수 황보숭(皇甫嵩)은 진창(陳倉) 전투에서 왕(王)나라를 물리칠 때 이 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했다. 당시 왕 나라는 진창을 포위하고 있었는데, 좌장군 황보숭과 동탁이 4만 군대를 이끌고 구원에 나섰다. 동탁은 ‘속히 구하면 보전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성은 끝장’이라는 생각에서 속전속결을 주장했다. 그러나 황보숭은 ‘백전백승’을 한다 해도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만 못하다며, 용병에 능한 자라면 먼저 상대가 나를 이기지 못하게 만든 다음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는 법이라고 말했다.

진창은 작기는 해도 튼튼해서 쉽게 함락될 성이 아니었다. 왕 나라가 강하긴 하지만 진창을 공격해 함락하지 못하면 병사들이 지칠 것이고, 바로 그때 공격하는 것이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황보숭의 상황 분석이었다. 그리하여 진격을 멈추어 예봉을 피하고 적이 쇠퇴해졌을 때 공격한다는 기본 방침이 정해졌다.

왕 나라는 겨울부터 봄까지 80여 일 동안 성을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했다. 바로 이때가 전기라고 판단한 황보숭은 적을 추격하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탁이 나서 ‘궁지에 몰린 적은 쫓지 말고 철수하는 군대는 막지 말라’는 병법을 들먹이며 반대했다. 그러나 황보숭은 동탁의 반대를 물리치고 왕나라 군대를 추격하여 만여 명을 베었다.

현대 전쟁의 형식을 천여 년 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또 적의 사기도 지휘관이 수레에 앉아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적의 예기를 피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적을 섬멸한다는 이 사상은 본질 면에서 여전히 귀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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