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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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소요유
  • 김덕권
  • 승인 2022.03.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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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 BC 369?~BC 289?)의 ‘소요유(逍遙遊)’ 라는 것이 있습니다. 장자는 춘추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입니다. 도가(道家)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인물이지요.

장자는 천지만물의 근원인 ‘도(道)’는 정의할 수 없는 진리이며, 만물 어디에도 도가 존재한다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을 주장했습니다. 장자는 인간이 사물의 양면성, 즉 전체를 살피지 못해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이며, 세상의 유동성을 이해하고 사물의 진실을 연구한다면 자유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인간이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의식을 바꾼다면, 사물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죽음과 삶도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장자는 만물은 하나이고, 차별 없이 평등하고, 생사도 하나이며, 꿈과 현실도 하나라고 했지요.

그의 사상은 ‘호접몽(胡蝶之夢)’이라는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장자가 호랑나비가 되어 근심 없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지요. 그 꿈이 지나치게 현실 같아 잠에서 깨어난 장자는 자신이 호랑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지, 호랑나비가 자신이 된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장자는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한계나 경계도 없다. 인생은 도의 영원한 변형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며, 도 안에서는 좋은 것, 나쁜 것, 선한 것, 악한 것이 없다.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환경, 개인적인 애착, 인습, 세상을 낫게 만들려는 욕망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장자는 도가 어디에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아무리 미천한 것에도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장자야말로 무애자재(無碍自在)의 도를 깨친 위대한 사상가였든 것입니다. 장자 사상의 중요한 특징은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서 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기계적, 소모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장자는 우리에게 인생에 있어서 ‘일’을 권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풍’을 권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삶을 수단시하지 마라. 삶 자체가 목적임을 알라. 이 삶이라는 여행이 무슨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이 여행 자체를 즐겨라.」 바로 이것이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인 것입니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소(逍)’자는 소풍간다는 뜻이고, ‘요(遙)’자는 멀리 간다는 뜻이며, 유(遊)자는 노닌다.‘는 뜻입니다. ‘소요유(逍遙遊)’는 묘하게도 글자 세 개가 모두 책받침 변(辶으)로 되어 있습니다. 책받침 변(辶)은 원래 ‘착(辵)’에서 온 글자인데, ‘착’이란 그 뜻이 ‘쉬엄쉬엄 갈 착(辵)’이지요.

그러니 ‘소요유’를 제대로 하려면 내리 세 번을 쉬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는 것’입니다. 장자는 이렇게 자연의 도를 추구하며 무위(無爲)로 돌아가야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인간이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의식을 바꾼다면 사물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죽음과 삶도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장자의 이러한 사상은 아내가 죽었을 때의 일화에서도 드러납니다. 아내가 죽자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친구 ‘혜시(惠施)’가 장자에게 이유를 물었지요.

이에 장자는 “본래 삶과 죽음은 없었던 것이며, 뿐만 아니라 형체와 기(氣)도 없었던 것이네. 혼돈 속에 섞여 있던 무언가가 변하여 기가 생겼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생겼고, 형체 속에서 삶이 생긴 것이네. 오늘 아내도 이렇게 변해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일 뿐, 이것은 춘하추동 사계절이 반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삶의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으며 강물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네.”라고 말했습니다.

장자가 죽어갈 때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안장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습니다. 이를 보고 장자는 “염려하지 마라. 나는 천지를 관으로 삼고, 해와 달을 벗으로 삼으며, 별들을 보석으로 삼고, 만물을 휴대품으로 삼으니 모든 장구(葬具)는 갖추어진 셈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 좋게 하겠느냐?”

그리고 장자는 또 “노천(露天)에 버리는 것은 까마귀나 독수리 떼에게 뜯어먹도록 주는 것이며, 땅에다 묻는 것은 개미 떼나 땅강아지가 먹도록 주는 것이니 이 둘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것은 이쪽에서 식량을 빼앗아 저쪽에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나이 까지 살아 보니 이 ‘장자의 소요유’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갑니다. 벌써 가족들에게 유언도 해 두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우리 선산(先山)에 뿌리라”고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1년, 원기 107년 3월 1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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