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뉴스프리존]"이근대원(以近待遠)...가까움으로 먼 것을 기다린다"

다음은 ‘손자병법’ ‘군쟁편(軍爭篇)’에 나오는 대목이다.

‘가까운 곳에서 먼, 길을 온 적을 기다리고’, 아군을 편안하게 해놓고 피로한, 적을 기다리며 아군을 배불리 해놓고 굶주린, 적을 기다린다. 이는 체력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자기편이 전장에서 가깝다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먼, 길을 행군해온 적군을 맞아 승리하는 비결을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자치통감’ 권42~43의 기록을 예로 들어보자. 36년 12월, 동한의 장수 오한(吳漢)은 약 3만 군사를 이끌고 이릉(夷陵)으로부터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촉의 공손술(公孫述)을 공격했다. 이보다 앞서 동한의 광무제는 오한에게 다음과 같은 경계의 말을 해주었다.

“성도(成都)에는 약 10만 군대가 있으니 섣불리 함락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광도(廣都)에서 단단히 수비하며 공손술이 출병하여 공격하기를 기다려야지 맞붙어서는 안 된다. 만약 공손술이 쉽사리 공격해오지 않으면 진영을 천천히 전진시켜가며 그를 압박하고,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한은 광도를 내버리다시피 하며, 보‧기병 2만을 이끌고 성급히 성도를 공격했다. 오한은 적으로부터 20여 리 떨어진 강북에 주둔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강무제는 크게 놀라며 오한을 꾸짖었다.

“내가 그렇게 만반의 주의를 기울이라고 일렀거늘 어째서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만든단 말인가! 섣불리 적 진영 깊숙이 들어가고 또한 유상(劉尙)과 별도로 진영을 쳤으니, 만약 긴급한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서로 호응할 수 없지 않은가? 적이 출병하여 너를 공격하고 다른 부대로 유상을 공격하면, 유상도 너도 모두 깨지고 말 것이다. 아직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속히 광도로 부대를 돌려라!”

아니나 다를까, 광무제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공손술은 대사도 사풍(謝豊) 등으로 하여금 10만 대군으로 오한을 공격하게 하는 한편, 1만여 군대로 유상을 공격하여 구원하지 못하도록 했다. 오한은 하루 동안 격전을 치렀으나 실패하고 진영으로 후퇴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오한은 각 장수들을 소집하여 격려의 말을 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곤경을 겪었으며, 천 리 길을 달려와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이제 적의 성 바로 앞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 유상도 포위를 당해 서로 호응할 수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비밀리에 포위를 뚫고 강남에서 유상의 부대와 합류하여 적과 상대해야 할 것이다.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자발적으로 싸움에 임한다면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패배할 것이다. 성공과 실패의 관건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한은 전군의 정신을 통일한 후 병사들의 식사를 개선하고 말과 식량을 증강하여 군영을 굳게 닫은 채 3일 동안 싸움에 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곳곳에 불을 붙인 깃발을 꽂아 연기가 나게 했다. 밤이 깊어지자 오한의 부대는 슬그머니 유상의 부대와 합류하기 시작했다. 사풍의 군대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날, 사풍은 일부 병력을 보내 강북의 한 나라 군을 공격하게 하는 한편, 자신은 몸소 강남의 한 군을 공격했다. 오한은 전 병력으로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치열하게 맞싸워 공손술의 군대를 대파했다. 이 싸움에서 오한은 적장 사풍과 장군 원길(袁吉) 등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렸다. 이어서 그는 군을 광도 쪽으로 철수시키고 유상의 부대를 남겨 공손술을 방어하게 했다. 오한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광무제에게 보고하는 한편,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다. 광무제는 이런 말로 그를 위로했다.

“광도로 철수한 것은 정말 시기적절한 조치였다. 공손술은 쉽게 유상을 공략하지 못할 것이다. 공손술이 만약 유상을 공격한다면, 장군은 광도에서 보‧기병을 데리고 50리 정도 행군하여 응원하라. 그때쯤이면 공손술의 군대는 피로에 지쳐 있을 때라 분명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오한은 광도와 성도 사이에서 공손술과 여덟 번 싸워 모두 이기고 마침내 성도를 손에 넣었다.

광무제 유수(劉秀)가 오한에게 광도를 굳게 지키라고 한 것은 ‘이근대원’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처음 오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섣불리 적진 안으로 들어갔다가 결과적으로 양면에서 적을 상대하게 되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그 뒤 ‘이근대원’의 계략을 취함으로써 연전연승할 수 있었다. 이 책략은 말하자면 ‘대기(待機)’ 전략의 하나라 할 수 있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