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의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뜻이지요. 급하게 서두르면 일을 망치기 쉽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 성질이 불같아 실패의 쓴잔을 수없이 마셨습니다. 이만큼이라도 느긋해 진 것은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하고 ‘마음공부’를 한 덕분이지요.

조선의 문신 정탁(鄭琢 : 1526~1605)은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 대유학자 이었습니다. 배움을 마친 정탁이 스승에게 하직 인사를 했더니 스승은 정탁에게 “뒤란에 황소 한 마리를 매어 두었으니 타고 가라”고 일렀습니다.

정탁이 아무리 소를 찾아도 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멍하니 서 있자 스승이 나직이 말했지요. “자네는 말과 행동, 그리고 의기가 너무 민첩하고 날카로운 것이 질주하는 말과 같네. 그러다가는 넘어지기 쉬우니 매사에 신중하고 차분하고 둔해야 비로소 멀리 갈 수 있네. 그래서 ‘마음의 소’를 타고 출사(出仕)하라는 얘기일세.”

정탁은 이순신 장군이 원균 일파의 모함으로 옥에 갇혔을 때, 상소 한 장으로 장군의 목숨을 구한 의인(義人)이었습니다. 그의 기백과 용기는 스승이 가르쳐준 ‘우보(牛步)’의 철학에서 나왔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명리(名利)를 따라 말처럼 빨리 내달리면 결코 웅지를 펼 수 없을 것입니다.

불가(佛家)에서도 수행자의 자세로 여유와 진중함을 강조합니다. 갓 출가한 제자가 노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제가 노력하면 얼마 만에 도(道)를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한 3년쯤이면 되겠지.” 성미가 급한 제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3년은 너무 깁니다. 저는 밤잠도 자지 않고 불철주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얼마 만에 도를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30십년은 걸리겠구나.” 제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지요. “방금 3년이면 된다고 하시더니 어째서 더 열심히 노력하는데 30년이 걸린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도를 이루고 싶습니다.”

스승이 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300백년은 걸리겠구나.” 그러고선 제자에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월급월만(越急越慢)!” 급할수록 천천히 하라는 뜻이지요. 무슨 일이든 너무 서두르면 꼭 사고가 터지게 마련입니다.

꼭 젊은 시절의 제 모습이 그랬습니다. 스승의 엄한 질책(叱責)이 있어도 금방 까먹고 또 실수를 거듭합니다. 그러니 하는 일마다 실패의 쓴 맛을 볼 수밖에 없었지요. 성격이 급해 이런 일들이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났습니다. 급하게 서두르다 일이 난감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두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로마의 영웅 ‘씨저’가 암살을 피하지 못한 것도 너무 바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역사가(歷史家)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암살을 모의한 의원들은 ‘아르테미도로스’를 비서로 채용해 거사 계획을 세웠지요. 그런데 거사의 서류를 보관한 ‘아르테미도로스’는 평소에 ‘씨저’를 매우 존경했습니다.

그는 원로원 의원들이 암살을 모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편지로 써서 카이사르 비서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씨저’가 바쁜 일정에 쫓겨 그 기밀 편지를 미처 읽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서일까요? ‘씨저’ 양자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좌우명은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였습니다.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씨저’ 사후에 벌어진 혼란을 수습하고, 번영의 초석을 놓은 것은 모순적인 지혜를 현명하게 실천한 덕분일 것입니다. 만약 급한 마음으로 서둘렀다면, 로마제국은 더 큰 혼란에 빠졌을지 모릅니다. 우보천리(牛步千里)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진중하게 일을 해야 목표를 이루고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난세(亂世)입니다. 이러한 난세를 무사히 넘기는 비결(秘訣)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바로 이 난세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비결을 내려 주셨습니다.

「처세에는 유한 것이 제일 귀하고/ 강강함은 재앙의 근본이니라.

말하기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 편안할 때 위태할 것 잊지 말아라.

일생을 이 글대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참으로 대장부니라,

이대로 행하는 이는 늘 안락하리라.」

백번 천 번 옳은 말씀 아닌가요? 부드러운 태도와 바보처럼 조심하는 행동과 급한 마음 늦추고 위태로움에 대비하는 것이 난세의 비결입니다. 이 비결도 모두 마음의 여유를 챙겨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강한 것이 얼핏 보기에 부드러운 것보다 더 좋고, 당장은 이긴 것 같으나, 오랜 시일이 지나고 보면, 그 부드러움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무엇이든지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가 생기고, 재앙이 생기며, 심지어는 척을 짓고 원수를 삼아 필경은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 큰일일수록 돌아가는 것입니다. 황소걸음이라야 천리를 갑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도를 이루려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 그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꼭 지금의 대통령 당선자 진영의 성급함이 마음에 몹시 걸립니다. 저 역시 도문(道門)에 입문한지 40년이 다 돼서야 이제 도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이나 할 수 있게 된 것 같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3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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