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지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입니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지금이기에 오히려 관객들과 만남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연극이 있다. 빠른 전염성으로 하루가 멀다고 연습과 공연이 취소되는 시기에 어떻게 지금 시기이기에만 만남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를 냉철한 시선으로 풀어내 주목을 받은 극작가 이현화와 ‘닭쿠우스’, ‘조치원 해문이’ 등 특유의 위트로 유쾌하게 작품을 해석하며, 관객과 신명 넘치는 놀이 한 판을 펼쳐내는 이철희 연출이 만난 작품 '불가불가(不可不可)'는 단 한 명의 배우가 남더라도 무대를 이어가도록 만든 특유의 무대진행으로 때로는 극작가, 배우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출이 직접 배우로 등장하며 관객들이 배우의 공백을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며, 지금 이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연극을 이어가고 있다.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연출은 무슨 생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연출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즘 같은 시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 모두 어깨가 무겁기 그지 없다. /(사진=Aejin Kwoun)

대본이 수정되거나 검열을 통과해야만 공연을 할 수 있던 1980년대 시절의 희곡 '불가불가'는 발표 당시에만 잠시 주목받고 사라졌던 현대 희곡 중 하나다. 서울연극제(1987), 동아연극상(1988), 백상예술대상(1988)에서 희곡상을 받은 바 있는 극작가 이현화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당시 현실을 그려내며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계속한다. 이에 서울시극단은 극작가가 표현한 은유를 개인의 자아를 잃게 만든 현대적 상황과 사회적 시스템으로 재해석하여 지난 3월 26일부터 오는 4월 10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관객들과 다시금 만나게 하고 있다.

아내를 죽이고 전장으로 나가는 계백의
아내를 죽이고 전장으로 나가는 계백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을사늑약이 진행되던 때 고종과 대신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금 이 시기 무대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우리는 무수히 많은 암울한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암울한 시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묵묵하게 우리의 자리를 지키며 내일을 이어갈 것이다. /(사진=Aejin Kwoun)

내키지 않지만 찬성해야 하는 ‘불가불(不可不), 가(可)’,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불가(不可), 불가(不可)’를 의미하는 제목의 이번 작품은 공연 하루 전,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등 우리나라 역사상 암울했던 다섯 장면을 재현하는 작품 리허설이 진행되는 극장을 배경으로 배우들의 연습장면 등을 담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흔히 접하기 어려운 무대 준비 과정 및 무대 리허설 과정까지 함께 하며 더욱 작품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무대에 출연하려던 배우가 모두 함께 오르
무대에 출연하려던 배우가 모두 함께 오르지 못했음에도 이번 작품은 너무나 훌륭하게 관객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커튼콜에서 만날 수 있는 배우들이 오늘과 내일이 달라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공연 취소는 없다"를 외치는 이 공연을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쉽지 않은 포지션의 변화 속에서 오랜 기간 무대를 지켜온 중견배우들이 무게를 잡아주고, 신진배우들의 재기발랄함으로 공연내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들어주고 있는 이번 작품을 많은 이들이 만나 좋은 에너지를 가져가길 바란다. /(사진=Aejin Kwoun)

자신의 자리에서 어려운 시기 또 하나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이철희 연출은 “연극이 관객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번 작품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비대면 시대에 우리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편은 온라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하나의 수단일 뿐 결코 연극의 본질이 될 수는 없습니다”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뚝심있게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일을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영업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교육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희망을 바라며 기도하듯 우리의 연극은 계속될 것입니다. 설사 내일 막이 내려도 다른 방법을 찾고야 말 것입니다”라는 그의 기도가 담뿍 담겨 있는 작품이기에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은 답답한 마음이 시원하게 뚫린 것 같은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듯하다.

40여 년 전의 작품이지만 역병의 시대에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들이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듯, 우리의 작품도 어려운 시기 담겨진 함축되고 함축된 그 시절 울분과 회한들은 미증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시기이기에 오히려 더 가슴 깊이 다가올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리허설이라는 특유의 상황을 재치있게 활용한 이철희 연출가의 연출과 불시에 생긴 빈자리를 더욱 완벽하게 메우며 작품을 채워가는 배우들의 에너지는 평범하기에 특별하지 않던 지난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채워가고 있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