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토론 등으로 기성 담론과 확연히 차별화된 색깔 보여줘야

철종과 트루먼은 이렇게 달랐다

강화도령 철종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허수아비 통치자의 대명사로 통용되는 인물이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무명의 가난한 농촌 총각 이원범은 나라의 실권을 쥐고서 세도정치를 일삼아온 안동 김씨들에 의해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조선왕조 제25대 임금으로 옹립된다. 철종은 즉위 초기 나름 의욕을 갖고서 여러 가지 개혁정책들을 시도·추진했지만 그를 지존의 자리로 밀어올린 안동 김씨 가문의 견제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주색잡기에 광분·탐닉하다가 겨우 서른네 살의 나이에 허망하게 요절하고 말았다.

집권세력이 허울뿐인 군주를 전면에 앞세워 부정부패를 자행하고 기득권 체제의 연장을 도모한 사례는 동서양 역사에 비일비재하다. 명치유신 이전의 일본 국왕들은 대부분 막부의 꼭두각시였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 부의의 경우에서 목격되듯 중국 역시 역대 왕조의 말기마다 힘없는 명목상의 군주들이 수시로 교체되며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다.

후세에 진실을 증언할 변변한 회고록 하나 남기지 않고 무책임하게 눈을 감은 최규하 전 대통령은 격동과 질곡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오욕의 무늬만 대통령이었다. 남한판 막부로 평가될 전두환의 신군부 무리가 최규하에게 퇴진을 종용했을 때 그를 목숨을 걸고서 지키려 애쓰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만만한 얼굴마담으로 간주되었다가 스스로의 탁월한 능력과 치열한 노력에 힘입어 훌륭한 지도자로 괄목상대하게 성장해간 인사들도 여럿이다. 영조는 수구적 노론 집단의 충실한 종복 겸 대변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훗날 협치와 통합의 탕평책을 펼치며, 그의 후계자인 정조 시대에 접어들어 소론과 남인이 권력의 중심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해리 트루먼은 미국에서도 궁벽한 촌동네로 손꼽히는 미주리 태생의 고졸 정치인이었다. 젊었던 시절 자그마한 양복가게를 운영했을 정도로 평범함 그 자체였던 트루먼은 바로 그러한 보잘것없는 출신 성분과 사회생활 경력 덕분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사후 미국을 실질적으로 의원내각제 국가처럼 운영할 심산이었던 민주당 중진 의원들의 눈에 띄어 부통령으로 선출, 정확히는 간택되었다. 그렇지만 루스벨트의 사망 직후 대통령직을 자동 승계한 트루먼은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과감하고 유능한 리더십을 선보이며 미합중국을 전 세계 최강의 강대국 반열에 확고하게 올려놓았다.

박지현의 정치적 생존과 성공을 위한 비단주머니 세 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한국정치의 프리마돈나로 순식간에 부상한 경위를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는 N번방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 추적 등의 사회적 활동으로 세간의 시선을 모으기는 했지만, 이와 같은 이력이 1996년생의 젊은 여성을 국회 원내의석 172석을 보유한 거대 정당의 공동당수로 깜짝 영입하기에 충분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기름기를 걷어내고 아주 직설적으로 얘기한다면 박지현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당권을 양분하고 있는 친문진영과 이재명 세력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일 뿐이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박지현 위원장의 전격 합류로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와 호감도가 급속히 높아진 건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물론 이는 이대남들의 전폭적 지지와 열화 같은 응원을 받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향한 또래 여성들의 지독한 반감이 선물해준 반사이익이 성격이 짙다.

그런데 머리로 박아 집어넣건 발로 차서 들어가건 간에 축구경기에서는 똑같은 한 골인 것처럼, 반사이득도 결론적으로 이득은 이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패배의 충격을 부분적으로나마 완화한 데에는 박 공동위원장의 기여와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다고 하겠다.

문제는 지금부터 1~2년가량이 경과한 뒤에도 이준석이 제도정치권에서 중요한 주체 노릇을 여전히 하고 있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박지현 위원장이 그때쯤에도 지금 같은 각광을 계속 받을지에 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란 점이다. 대다수 정치 전문가들은 박지현을 더불어민주당이 선거 패배의 후유증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 타자만 상대하고 투수판에서 강판시킬 중간계투 요원쯤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정치의 오랜 고질적 병폐이자 악습인 낙하산 정치를, 내리꽂기 정치를, 사람 한번 쓰고 곧바로 용도폐기하는 일회용품 정치를 극도로 혐오하고 경멸해온 터이다. 필자가 박지현이 세간의 질시어리고 통념 가득한 예측을 보기 좋게 비웃으며 롱런해주기를 희망하는 연유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박지현 위원장에게 진지하게 부탁하고 싶다. 그가 이제껏 숱하게 들었을 기존의 50대 아저씨들의 당부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이색적 주문이리라.

첫 번째로, 글의 형식으로 발표되는 본인 명의의 메시지들만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검토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간단한 사실확인 작업만 거쳤어도 연평도 해전과 천안함 폭침 사건을 혼동하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촌극은 빚어지지 않았으리라. 진보좌파 성향의 젊은 여성 정치인이 남한 인민의 대북경각심을 제고하고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행사에 공식적으로 참석하는 일은 굉장한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박지현이 발휘한 남다른 용기와 결단이 몇몇 사실관계의 착오로 말미암아 빛바랜 상황이 나는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두 번째로, 나가서 일단은 깨지더라도 원정경기를 뛰라는 것이다. 원정경기라고 하여 경쟁정당인 국민의힘 본진으로 무작정 쳐들어가 시쳇말로 도장 깨기에 나서라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주제에 제한이 없는 일대일 토론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흔쾌히 응하란 의미다. 박지현이 말발로 당장 이준석을 이길 수는 없다. 반면, 열정과 참신함으로 이준석을 압도하는 쾌거는 불가능하지가 않다. 일반대중은 토론자의 언변의 능숙함과 화려함을 중시하지 않는다. 얼마나 진솔하고 겸손한 자세로 토론의 장에 임하는지에 주목한다.

세 번째로, 외연 확장의 과제에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도전하라는 것이다. 박지현 위원장은 젊은 여성들의 기수로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장에 낙점되었다. 허나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꼭 페미니즘에 관련된 주제만 다루라는 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좌파적 목소리만 내라는 법은 더더욱 없다. 나는 박지현이 선거법 개정에서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까지, 미국과 중국의 갈등부터 최근의 심상치 않은 물가폭등 동향까지 광범위한 쟁점과 다방면의 의제에 걸쳐서 자신의 견해를 서슴없이 피력해줬으면 좋겠다.

박지현이 대담하게 개진한 의견이 더불어민주당의 주류를 형성해온 기득권 586 세대가 완강하게 고집해온 낡고 칙칙한 기성 담론과 확연히 차별화된 색깔을 띤다면 금상첨화일 게다. 박지현 공동위원장이 민간기업의 창의와 자율성을 존중하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공무원 숫자 감축을 비롯한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을 개혁할 조치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소신을 당당하게 밝힌다면 20대 여성 정치인은 50대 남성 지식계급의 거울 혹은 확성기 구실만 하기 마련이라는 세간의 그릇된 편견과 비뚤어진 고정관념에 통렬하게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인재는 소중하다. 비주류 배경을 지닌 젊은 여성 인재는 더욱더 소중하다. 박지현 공동위원장의 건투와 무운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 글쓴이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초대편집장,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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