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이포대기(以飽待飢)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뉴스프리존]‘이근대원’과 함께 ‘손자병법’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아군의 식량이 넉넉하고 적의 식량 보급선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을 때 취할 수 있는 계략이다. ‘백전기법’ ‘양전(糧戰)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적과 진지를 쌓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승부가 나지 않을 때는 식량이 넉넉한 쪽이 승리한다. ‧‧‧‧‧‧적에게 식량이 없으면 병사들이 틀림없이 도망갈 것인데, 그때 공격하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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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군쟁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군대에 군수품이 없으면 패배하고, 식량이 없으면 패배하고, 비축된 물자가 없으면 패배한다.

총명한 장수는 아군의 식량 공급을 중시할 뿐 아니라 적군의 식량 부족과 사기의 저하 따위를 잘 살펴 적시에 공격하여 승리를 거둘 줄 안다. 

619년 8월, 산서 북부를 거점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던 유무주(劉武周)는 신강(新絳) 지역에 압박을 가하여 하진(河津)을 탈취하기 위해 송금강(宋金剛)으로 하여금 하동(河東) 지구에 군대를 주둔시키게 했다. 이에 맞서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훗날 당태종)은 군을 이끌고 정벌에 나서, 신강 일대에서 유무주의 주둔 부대와 대치하게 되었다. 이세민의 군대는 식량 부족으로 사기가 덜어져 있었다. 이세민은 후방으로부터의 식량 운송을 독촉하는 한편, 약간의 병력으로 적 후방을 공격하여 적에게서 식량을 취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작지만 두 차례의 승리를 거두었고 이로써 사기는 회복되었다. 여러 장수들은 이를 전기로 삼아 공세를 취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세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송금강의 군대는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축적된 식량이 없고 노략질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속전속결로 나올 것이 뻔하다.우리는 군영을 굳게 지키며 힘을 비축해놓고 송금강의 식량이 다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적은 제풀에 지쳐 물러갈 것이다. 지금 속전속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

620년 4월이 되자 송금강의 군대는 과연 식량이 떨어졌고 보급도 어려워졌다. 이제 후퇴하는 길 외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이때 이세민은 이들을 추격하여 여주(呂州-산서성 곽현)‧작서곡(雀鼠谷) 등지에서 송금강의 군대 수만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았다. 유무주는 송금강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태원(太原)으로 도주했다.

고대 전쟁에서 식량의 충족 여부는 전쟁의 승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른바 ‘군사와 말이 움직이기 전에 식량이 앞서 간다’는 말이 바로 그 점을 잘 대변한다. 이세민이 처음 송금강과 대치했을 때는 식량 부족으로 진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식량 조달이 해결되어 공세를 취할 수 있게 되자 오히려 ‘이포대기’의 책략을 취하여 끝내는 적을 대파했다. 이는 당시의 군사 작전에서 식량이 부족한 군대는 적극 공세를 취하지 않아도 절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현대전에서는 새로운 특징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후방, 특히 병사들의 가족들에 대한 생활 보장은 전투력의 발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이포대기’가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군사들뿐 아니라 후방의 가족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포대기’의 책략은 현대전에 임하는 지휘관들에게 중요한 귀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값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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