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금산님이 세상에 펼치는 것은 <감사발전소>입니다. ‘감사발전소’란 금산(錦山) 권도갑(權道甲) 원불교 교무님이 주창한 사회운동입니다. 권도갑 교무님은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에서 ‘마음공부 방법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매월 ‘행복가족 캠프’와 사회단체, 일반 학교와 국회 등에서 마음공부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세상에 어느 사람이 행복할까요? 감사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극락 생활을 하고, 원망생활을 하는 사람은 지옥 생활을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덕화만발과 인연 맺는 분들이 각자 <감사발전소>를 가동하시어 행복하시기를 축원 드리는 뜻에서, 금산 권도갑 교무의 <나는 나를 사랑해. 고마워>를 소개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 고마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나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조용히 숨 쉬면서 ‘나는 나를 사랑해. 고마워. 내가 좋아. 자랑스러워. 대단해. 수고했어.’ 하며 진심으로 말해 줍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계속 사랑을 보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부터 가슴으로 껴안습니다. 기분 나쁨, 두려움, 불안, 외로움, 자존심 상함, 화나고 속상할 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때가 나를 스스로 믿고 사랑해야 할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 고마워. 나는 내가 참 좋아 자랑스러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능한 존재야. 훨씬 위대한 존재야. 훨씬 멋진 존재야. 이렇게 나를 사랑하면 다른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나 스스로 충만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미소를 보내며, 사랑을 가슴에 담을 수 있나요? 이렇게 하여 나의 사랑으로 나의 가슴이 열리면 비로소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주 나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나는 아무 조건 없이 나를 공감해 주고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 주기를 그토록 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더 많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껴안는 것보다 사실은 자기를 껴안아 주는 것이 더 큰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이 스스로 행복을 얻는 비결이지요. 잊지 마십시오. 자기사랑은 그 어떤 어려움도 해결하는 위대한 작업입니다.】

어떻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닌가요? 많은 수행자들이 내생을 준비하면서 현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삶은 언제나 지금 여기뿐입니다. 전생과 내생은 관념에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현실은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현재밖에 없습니다. 그럼 지금 행복하셔야지요. 이를 위해 숨 쉬면서 감사하고, 내 쉬면서 <하하하하하하!> 마음껏 웃어주는 감사발전소를 가동하면 된다는 것이 금산 님의 주장이십니다.

감사발전소는 지금 여기에서 현존합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단순한 비결입니다. 행복은 지금 내가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주어진 삶을 조건 없이 감사하며 기쁨에 넘치고 마냥 재미있게 산다면 신선한 축복이 쉼 없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금산 교무님은 ‘무엇이 진정한 정의이고 불의인가?’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인간의 가장 큰 불의는 ‘나와 너를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나누고 죄와 복, 고와 낙을 나누어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 선과 악, 죄와 복, 고와 낙, 옳고 그름을 하나로 보는 것이 가장 큰 선이며 정의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진리를 둘로 나누어 분별하는 것이 가장 큰 악이며 불의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죄와 악, 고와 그름, 불신과 탐욕 등을 악이며 불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과 선, 낙과 옳음, 신뢰와 자비 등을 선이고 정의라고 하지요. 이러한 악과 불의, 선과 정의는 취하고 버려야 할 취사(取捨)이며, 둘로 나누어서 분별하고 있는 것임을 성찰해야 합니다.

언제나 나와 너를 나누어서 내가 먼저 인정받아야 하고, 나의 잘 남을 들어내며, 내가 앞서고 나부터 만족해야 하는 모습으로 살아온 나는 과연 누구인가요? 나는 항상 옳고 당신은 틀리다고 분별하고 있지 않는가요?

‘내가 더 잘나고 당신은 못났다. 나는 신심(信心) 있고 정의로우며, 너는 신심 없고 불의를 행하는 자이다.’는 판단을 하며 지나친 자부심으로 오만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나를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요?

언제나 나, 나, 나를 주장하며 더 나은 나가 되려고 발버둥 치지 않으셨는지요?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를 비난하며 고치려 하였고, 동지의 허물들을 용납하지 못하며, 크게 들어내고 이웃이 잘 되는 것을 질투하는 것 모두가 서로를 나누어 취하고 버리는 분별이며 이것이 온전함을 외면한 악이고 불의였습니다.

우리 이제야 정의와 불의를 확연하게 알았습니다. 이렇게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죽기로서 버리는 것이 진정한 정의가 아닐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3월 3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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