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볼모'로 잡은 이준석 정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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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볼모'로 잡은 이준석 정치의 한계
  • 조경일 기자
  • 승인 2022.03.3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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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칼럼] 왜 다수가 불편할 때만 소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나?

장애인들에게는 한심한 정치인들이 ‘비문명적’

나는 양천구 신정동에서 산다. 그래서 퇴근하면 지하철 5호선 신정역에서 내린다. 그런데 가끔 옆동네 화곡동 까치산역 근처에서 사는 친한 형과 마주칠 때가 있다. 평생 휠체어를 탄 사람이다. 그는 집에서 2분정도 걸리는 가까운 까치산역을 이용하지 못한다. 지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정거장 앞 신정역에 내리거나 한 정거장 더 가서 화곡역에서 내려 집으로 간다. 어떤 날은 건너편에서 시속 8km정도로 달려가는 형을 목격할 때도 있었다. 비오는 날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때론 보슬비를 맞으며 가는 뒷모습을 본적도 있다. 까치산역은 서울지하철역 중에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몇개 안 되는 역 중에 하나이다. 

현재 서울시 지하철 전체 역사는 278개이다. 이가운데 16개 역은 여전히 ‘1역사 1동선(출구에서 승강장까지 연결된 통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역사 안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여러번 갈아타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 그나마 다행인 경우다. 서울시가 내년도 예산안에 12개 역사 공사비는 책정했지만 4개 역사(고속터미널·까치산·복정·상일동)에 대해선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까치산역을 포함한 4개 역 근처에 사는 휠체어 탄 사람들 역시 집앞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엘리베이터 설치가 늦어지는 이유도 다양하다. 예산을 반영하지 않거나 예비타당성조사 핑계를 대기도 한다. 물론 정책결정자의 의지가 없는 탓이 제일 클 것이다. 장애인들이 그나마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지하철이다. 버스는 여전히 요원하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를 종종 한다. 

그런데 혐오와 갈라치기가 마치 유행처럼 돼버린 요즘, 장애인 단체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가 논란이다. 전장연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서울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휠체어로 지하철 문을 닫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했다. 전장연의 입장에서 선택한 나름의 효과적인 시위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지체되어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고, 곧바로 정치권에서 반응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규정대로라면 집회신고허가를 받지않아 불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시위의 ‘불법성 여부’가 본질이 아니다. 결과로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문제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이다. 

전장연은 오랫동안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정치권 모두를 향해 투쟁했다.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그 동안 계속 요구했던 문제다. 그런데 이번에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반응했다. 물론 전장연의 목소리가 아니라 시위 행위에 반응한 것이다. 논란이 됐고 곧바로 정치권으로 번졌다. 정치권은 전장연의 요구내용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이준석 당대표의 “볼모” 발언 때문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사진=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볼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를 향해 “출퇴근 하는 서울시민을 볼모로 잡지말라”며,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전장연과 싸우고 있다. 전장연의 시위는 원칙대로라면 불법이 맞고, 출퇴근하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시위가 다소 과격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준석 당대표의 말은 한 마디로 “시위를 얌전하게 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정치인 이준석의 눈에는 시위의 적법성 여부가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왜 전장연이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그런 시위를 하고 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이준석은 전장연을 비판하고, 민주당은 이준석을 비판한다. 이슈의 흐름이 어딘가 어색하다. 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여태까지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보고싶었다. 하지만 양쪽 다 사과는 없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개인자격으로 사과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소수이자 장애인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정치권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비롯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노력은 있었으나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기재부는 장애인들의 권리보장 요구를 예산규모로만 판단했다. 동네 체육관 몇개 덜 짓고 그 예산을 반영했으면 아마 오래전에 해결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때부터 정치인들이 약속했던 ‘서울지하철역사 엘리베이터 100% 설치’ 공약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장애인들에게 이동권은 기본 권리이다. 기본권리에 대한 예산이 없다는 것은 장애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자 동등한 권리에 대한 문제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는 것을 예산이니 예비타당성조사니 하는 행정절차로 질질 끌어서는 안되는 사안이다. 누구든 다쳐서 이동에 불편할 수 있다. 최소한의 이동권은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이준석의 말은 사실 강자들의 언어

정치인 이준석은 기계적 수평만 맞으면 그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준석은 전장연에게 ‘잘못된 의식’을 버리라고 말했다. 오히려 “전장연이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볼모로 잡으면 정치가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반문 한다. 전장연의 주장을 들어주면 잘못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도 말한다. 다시말해 사람들 괴롭히지말고 얌전하게 시위를 하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 불편하게 하지말고 얌전하게 권리투쟁을 하라는 이준석의 말은 사실 강자들의 언어다. 다른 말로 폭력이다.

전장연의 의식이 잘못된게 아니라 장애인들에게 이동조차 불편한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전장연 장애인들에게 잘못된 의식을 버리라고 말하지 말고 잘못된 사회의 구조적 장벽들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이준석은 현상만 바라보며 조롱의 정치와 피아를 확실히 구분해서 갈라치는 정치에 능하다. 이것을 요즘 세대의 스타일이라고 강변한다. 별로 동의할 수가 없다. 

보통 다수가 불편한 것은 이슈가 되고, 소수가 불편한 것은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소수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수를 불편하게 하므로 자신들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이 아닌 이상 소수인 그들에게는 유일한 행위다. 아무에게도 불편을 주지않으며, 권리를 얻은 사례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얌전한 투쟁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수가 소수에게 관심을 가질 때는 다수가 소수때문에 불편할 때이다. 

전장연 사태를 보면서 유독 눈에 자주 띄는 단어가 있다. 바로 ‘언더도그마’라는 단어다. 언더도그마는 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오류이다. 즉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고 인식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표현하는 단어다. 맞다. 언더도그마에 빠지기가 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통은 약자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물론 약자가 언제나 선하지는 않다. 약자든 강자든 정의롭지 못한 불법앞에서는 그게 누구든 평가와 기준이 같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약자는 강자를 괴롭힐 수가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약자가 강자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는 있어도 그것이 힘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강자다. 이제 여당의 대표이지 않은가. 정치권은 강자다. 전장연은 정치권을 괴롭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하철 시위를 선택했다. 그래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불법이 맞다. 이준석과 정치권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전장연이 얌전하게 시위했으면 처다보지도 않았을 그들이 이제와서 마치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듯 과격하게 시위하지않아도 해결해줬을 것처럼 말하는 행태에 정말 우리 모두 분노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표가되는 예산에만 혈안이 되어있지 언제 장애인 이동권 보장같은 약자들의 일에 관심이나 가졌는가? 동네 체육관 몇개 더 짓는 일을 조금만 늦춰도 그 예산이면 장애인들 이동권 보장이 지금보다는 더 가능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사건은 애초에 예산문제도 아니다. 우리사회가, 우리 정치권에서 사회구성원인 소수에게 얼마나 포용적인 정치를 해오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명동밥집 봉사에서 “힘든 분께 먼저 손 내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손길이 닿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준석 당대표는 연일 전장연과 싸움이다. 기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대신 얌전하게 요구하도록 길들이고 있는 셈이다. 과격한 시위를 멈추면 협상파트너로 대해주겠다는 식이다. 이준석은 전장연의 시위방식을 비판한 지장협(지체장애인협회)와는 진지한 정책적 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과격한 시위를 하지않는 장애인단체만 정책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말은 장애인단체 갈라치기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입으로 말을 내뱉는 것이고, 또 가장 어려운 것도 입으로 내뱉은 말을 주워담는 것이다. 말로 흥한자 말로 망한다는 이야기도 있지않은가. 이준석 당대표는 소위 ‘말빨‘로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올라갔다. 사람들의 기대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준석은 ‘말’ 때문에 위기다. 정치인은 때론 자신이 믿는 것이 옳다고 해도 입밖으로 내뱉는 것을 참아야 한다. 자당 대표가 쏟아낸 말을 자당의 의원들이 주워담는 웃지못할 진풍경이 정말 시민들이 기대했던 정치란 말인가.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모두 함께 서로에게 너그러운 사회를, 최소한의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꿈꿔본다. 

* 조경일 작가·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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