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5년 간 ‘국뽕’에 취해 살아왔던 것이 틀림없다. 개인적으로도 보람있고 행복했던 일들이 많았지만, 한국인으로서 뿌듯하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공적(국가적) 일들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이 「눈 떠보니 선진국」이란 책이었다. 물론 우리가 진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더 배워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가다듬어야 할 것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나 50~60~70~80년대 어리거나 젊었던 시절, 경제적·사회적·정치적·문화적으로 온갖 말도 안 되는 험한 꼴을 당하면서, 미국과 유럽, 심지어 일본을 부러워하며 살아온 나 같은 세대는 제목 「눈 떠보니 선진국」 그 자체에서 느끼는 공감과 감동이 자못 컸다.

불행히도 눈을 다치는 사고를 당해 독서를 대폭 줄이고 관심가는 책들의 소개만 읽고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조국 교수의 「가불 선진국」이란 책이 출간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역시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선뜻 책을 사지 못하고 책 소개만 듣고 본다.

조 교수는 책 소개 영상에서 “선진국 대한민국의 환호 뒤에 가려져 있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 그 빚에 기초해 우리가 선진국이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가불 선진국’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설명했고, 서문에서는 “왜 많은 분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실망하고 불만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책의 내용 역시 내가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외교적으로, 안보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특히 코로나19 재앙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제도적 관습적 정신적으로 고쳐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것들이 바로 우리가 치러야 할 가불 청구서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1일) 내 ‘국뽕’이 완전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가불 청구서가 (조 교수가 이야기 하고 있다는) ▷시민의 자유 확대 ▷노동3권 ▷근로(노동)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주거권 ▷보건·건강권 ▷양극화 완화 ▷고용 안전망 개선 ▷지역·계층 불균형 해소 등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아니라 정치권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한 작은 뉴스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3월 9일 이래 난 우리나라가 조만간 다시 후진국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내 맛을 완전히 가게 한 뉴스는 새삼 윤석열 당선자나 그의 인수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 시장에 출마선언을 했고 박 전 대통령이 그의 후원회장을 맡기로 했다는 뉴스가 준 충격이다.

홍준표나 김재원이란 인물이 한 치라도 더 나을 것은 없다. 다만 부패하고 무능한 죄로 탄핵 당한 대통령이 사면된 지 몇 달도 안 돼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는 지역에 아랫사람을 심어 은혜를 베풀려는 그런 시도. 봉건시대에나 있음직한 일이지 결코 선진국의 풍경일 수는 없다.

이런 봉건의식이 결국 윤석열 당선자를 탄생시킨 배경일 텐데 이제 전 대통령의 가신을 그 지역의 시장으로까지 선출한다? 괴로운 시절이다.

「눈 떠 보니 도로 후진국」, 「허당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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