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치권의 ‘블랙홀’… 어쩌다 제1 야당의 ‘덫’이 됐나


‘친노무현(친노) 프레임’은 야당에서 유통기한이 가장 긴 논쟁거리다. 친노의 계파가 있는지 없는지 실체 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실체가 있든 없든 ‘친노’ 논쟁에 불이 붙으면 정치권을 집어삼킬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문제는 ‘친노 프레임’의 후유증이다. 친노 프레임은 (친노)패권주의로, 계파 갈등으로, 제1 야당 분열로 이어졌다. 친노 프레임은 어쩌다 제1 야당의 덫이 됐을까.

 

■ ‘외부’의 친노 프레임…제1 야당 분열

 친노 프레임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친노에 대한 의미부터 다양하다. ‘문재인 지지그룹’ ‘노무현정신을 따르는 사람들’ ‘노무현 지지세력에 의지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들’ 등 여러 갈래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친노는 보수언론이나 반대세력 측이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프레임”(2012년 6월12일 대선 출마선언 후 기자간담회)이라고 했다. 그러다 며칠 뒤엔 “나는 친노가 확실하고 딱지를 떼고 싶지도 않다”(6월27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고 번복했다.

친노 프레임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분리 전략이라는 것이 새정치연합의 인식이다.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는 “친노 프레임은 3당 합당 이후 개혁세력 재집결을 막는 한편 야권 구심 형성을 방해하는 기득권 세력의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친노 세력은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현재까지 야권의 1대 주주다. 하지만 번번이 새누리당의 친노 프레임에 말려 휘청거렸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아들 건호씨의 ‘돌직구 발언’이 나오자 보수세력은 일제히 친노 프레임을 덧씌웠다. ‘기획된 발언’ ‘정치적 발언’이라는 의혹을 던졌다. 새정치연합은 노씨 발언을 두고 내분에 휩싸였다.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로 치러진 18대 대선은 여권의 친노 프레임 전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폐족, 국정실패 세력’이라 공격했다. 문 후보는 ‘유신 독재의 잔재’라 맞받았다. 박정희 대 노무현 프레임은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새누리당이 구사한 친노 프레임은 문 후보와 민주통합당을 과거 세력 틀에 가뒀고, 승부처인 50~60대를 새누리당으로 유인하는 동력이 됐다.

2년 전 남북정상회담 때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과 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공방에도 친노 프레임이 작동했다. 당시 문재인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계를 은퇴하겠다”며 ‘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을 제안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정치공세에만 골몰한 구태정치는 친노그룹의 정략적 책략에서 비롯됐다”고 공격했다. ‘노무현 지키기’에 집중했던 문 의원 행보는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새누리당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당초 김한길 대표(당 지도부)의 ‘선 국정원 국정조사·후 회의록 공개’와 문 의원(친노)의 ‘선 회의록 공개’라는 간극을 ‘친노 프레임’으로 파고들었다. 김 대표는 문 의원 제안 직후 ‘선 회의록 공개’로 방향을 틀었다.

그해 말 국가기관 대선개입 정국에서 불거진 대선 불복 논란에도 친노 프레임이 등장했다. 새정치연합 장하나 의원은 개인 성명(12월3일)에서 “지난 대선은 국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총동원된 총체적 부정선거”라며 박근혜 대통령 사퇴와 대선 보궐선거를 촉구했다. 새누리당은 친노 프레임으로 응수했다. 유일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사태의 배후 조종자로 의심받고 있는 문재인 의원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장 의원이 한명숙 대표(친노 지도부) 체제에서 치렀던 19대 총선 비례대표임을 부각했다. ‘친노=강경파’라는 낙인으로 친노 고립, 비노 지도부 무력화를 꾀한 것이다. 친노 프레임은 단순히 제1 야당 분열용에 그치지 않았다. 2007년 대선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여야 모두 ‘노무현’을 정치적으로 동원했지만 야권은 대부분 패했다. 진보개혁 세력의 우군이었던 30대가 점점 등을 돌렸고, 선거는 이겼지만 정작 친노 후보들은 패한 경우(2010년 지방선거)도 있었다. 시민들이 친노 프레임을 통해 야권도 기득권 세력임을 꾸짖은 셈이다. 상대적으로 지지층 규모가 열세인 야권은 밀릴 수밖에 없다.

■ ‘내부’의 친노 프레임… 불신과 패권

 새정치연합의 끝없는 계파 갈등, 치열한 당권 투쟁의 맨 앞엔 늘 친노 프레임이 있었다. 제1 야당 역사부터 불신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개혁당부터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의 합당까지 수차례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합당의 역사는 호남과 친노 사이를 갈라놓았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과 문재인 의원의 ‘부산정권’ 발언이 발화점이다. 2006년 5월 민정수석을 마치고 나온 문재인 대표는 부산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APEC 정상회의와 신항 개발 등 부산을 지원했고,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현 정권을)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는 호남의 반발을 불러왔다.

친노 프레임은 사안마다 친노 대 비노 대립을 촉발시켰다. 이번 4·29 재·보선 패배를 둘러싼 내분도 마찬가지다. 선거 과정에서 한때 대표적 친노 인사였던 천정배 의원이 호남 기반 전국정당을 주장하며 탈당한 것이나 앞서 안철수 신당, 국민모임 등 대안 야당이 지속적으로 출현한 것도 연장선에 있다.

친노 측은 “친노 프레임은 비노 측이 당권을 잡았을 때 소수 지도부인 자신들을 위한 이데올로기다. 친노 강경파, 친노 486, 친노 종북이라는 말은 비노 지도부 시절 나왔다”(초선 의원)고 비판했다. 비노 측이 당원들의 지지로 당권을 잡은 게 아니라 친노 프레임에 기대 리더십을 확보하려 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비노 측은 “친노를 당내로만 한정하기 때문에 ‘친노는 없다, 친노 프레임은 허구다’라고 하는 거다. 정당 밖 친노 인사들까지 동원돼 당을 망쳐온 게 어디 한두 번이냐”(원외 인사)고 되받았다. 여기서 친노 패권주의가 나온다.

계파 갈등 핵심은 사실상 친노 패권주의다. 한쪽에선 “당내 친노 세력으로 분류할 만한 인사는 많아야 30명 정도다. 무슨 전횡을 행사한단 말이냐”고 항의한다. 정치적 낙인찍기라는 항변이다. 다른 한쪽에선 “안에서 골목대장만 하면 뭐하냐. 주류 세력으로 당권과 대권을 다 거머쥐고, 당 얼굴로 나선 선거란 선거는 다 지고, 그러고도 아무 반성 없는 자체가 패권 아니냐”고 맞선다. 한명숙 대표가 주도한 2012년 총선 공천과 이어진 이(해찬)·문(재인)·박(지원) 담합, 전당대회 룰 번복 논란, 18대 대선 (선거운동 과정의)의원 배제 등은 친노 패권주의로 거론되는 대표적 사례다. 최근 문재인 대표의 ‘당원에게 드리는 글’을 두고 “당 대표 기득권이 가장 큰 기득권인데 누구를 향해 기득권 척결을 요구하나. 정파 대표임을 자인하는 꼴”이라는 탄식도 포함된다.

친노 패권주의 논란은 친노 세력의 범위(정치·사회·문화계 등 다층적 구성),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응집성, 확대·재생산되는 유일한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매듭짓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더십 없는 정당, 정당 체질 약화 등도 친노 프레임이 야기한 후과다.

2011년 12월 등장한 민주통합당은 이듬해 1월 한명숙 대표를 선출한 이후 2013년 1월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등장할 때까지 1년 동안 당 대표가 7번이나 교체됐다. 무리짓기에 열중하느라 사회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한 중립성향 의원은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등 정책 경쟁이 선거의 쟁점이 되고 있다. 정작 우리 당은 권력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퇴행적 논쟁에 몰두하느라 민심도 당심도 다 잃는 것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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